부주지 스님 문자로 해고한 사찰…법원 "근로기준법 위반"
한 사찰의 부주지스님을 문자해고한 종교재단에 대해 법원이 “스님도 근로자로 볼 수 있고, 문자해고도 위법하다”라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최수진)는 최근 재단법인 D문화원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청구를 기각했다고 9일 밝혔다. 이 사건은 2021년부터 서울시 양천구의 한 사찰에서 부주지스님으로 일했던 A씨가 2022년 6월 사찰을 소유한 D문화원으로부터 ‘문자해고’ 통보를 받으면서 비롯했다.
" 〈귀하를 부주지 및 주지직무대행으로 임명하였으나 2022년 6월 9일 사찰을 양천구에 인도하였고, 재단의 퇴거명령에 불응하고 욕설 등 스님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하였으며 또한 재단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므로 부주지 및 주지직무대행에서 해임하오니 즉각 사찰에서 퇴거하시기 바랍니다〉 "
2020년부터 시행된 공원일몰제를 이유로 용왕산 근린공원을 조성한다며 양천구가 사찰의 부지를 사들였는데, 이 매각 이후 재단과 갈등을 빚던 A씨에게 재단이 보낸 문자다. 이 문자를 받은 A씨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로 달려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지만 ‘스님은 사용-종속 관계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며 기각됐다. 그러나 A씨가 불복해 진행된 중노위 재심에선 “종교 업무와 병행해 재단과 합의한 행정‧관리업무를 수행했고, 그 과정에서 재단의 지휘‧감독을 받았다”며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가 맞고, 해고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아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재심을 인용하고 부당해고 이후 임금 합계 1500만원도 지급하라고 했다.
法 “재단이 절의 지출·인사 관여… 지휘·감독 맞다”
재단은 이에 불복해 법원으로 달려갔지만, 법원의 판단도 중노위와 같았다. 서울행정법원은 “2021년 1월 새 주지‧부주지를 임명하며 사찰의 운영‧종무 등 업무를 수행하게 하려는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2021년 10월부터 A씨가 주지 직무대행까지 맡으면서 책임이 더 커졌고, 재단 전무이사에게 업무 관련 내용을 보고하고 전무이사가 이에 대한 지시나 검토요청을 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또 종무이사가 사찰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일일 현급출납부와 지출결의서 등을 직접 보고받기도 한데다 절의 사무국장 및 공양주(식당 근무자)를 직접 채용하는 등 인사업무에도 개입했다고 했다. “2021년 6월부터 재단 이사장의 개인 계좌를 본각사 계좌로 사용하는 등 절의 재정관리권도 재단에 강하게 귀속됐다”고도 봤다.
A씨는 매달 300만원 내지는 200만원을 지급받았는데, 법원은 “보시금(사찰 또는 스님에게 감사의 의미로 공양하는 돈) 형태라고 하더라도, 재단이 정한 업무를 수행한 대가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A씨의 근무 시간‧장소에 자율성이 있었다고 해도 근로자성을 부정할 만큼은 아니라고도 봤다. 법원은 근로자로 볼 수 있는 A씨에 대해 문자로 해고통보를 한 것은 근로기준법이 정한 ‘서면 통지’에 해당하지 않아 위법한 해고라고 판단했다..
재단 측은 “A씨가 주지 경력이 없어서 부주지로 임명한 것일뿐, 사찰행정 업무를 목적으로 임명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절의 지출 등을 관리한 것도 “사후 보고받은 것이기 때문에 업무지시가 아니다”라고 항변했지만 역시 기각됐다.
종교시설에 근무하는 종교인의 활동은 대개 자발적 활동 내지는 종교적 봉사, 수행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지만, 종교인을 ‘근로자’로 볼 수 있다는 판결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2년에도 동국대학교 학내 사찰 스님이 중노위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아, 동국대가 행정소송도 냈다가 패소로 종결된 적이 있다. 다만 이번 사건의 경우 D문화원이 항소해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이 진행될 예정이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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