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잘알X파일]10년째 이 가격 '착한 간식'…식품사는 공개를 꺼린다

임온유 2024. 6. 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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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속 10년간 가격동결한 제품 찾아보니
오리온, 남양유업, CJ제일제당 등 소수 있어
남양유업 특수분유 케토니아 23년째 2000원

편집자주 - [맛잘알 X파일]은 먹거리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파헤칩니다.

"간식이 먹고 싶어 오랜만에 사봤어요. 어릴 땐 400원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 1000원이나 하네요. 포장에 비해 양도 적고요."

동네 슈퍼에서 오리온 '초코송이'를 구매한 한 블로거가 올린 글입니다. 과대포장에 비싼 가격을 질타 중이네요. 공감하시나요?

그런데 이 글의 작성 시점을 들으시면 아마 놀라실 겁니다. 무려 10년 전에 쓰인 글이거든요. 초코송이의 가격은 여전히 1000원. 1만6000원짜리 후라이드 치킨이 2만3000원으로 오른 시간 동안 같은 가격을 유지했으니, 고물가 시대 몇 안되는 착한 간식이라고 이름붙여도 되겠지요. 특히나 최근 코코아 시세가 요동치면서 초콜릿이 들어간 과자의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있으니까요.

4월 총선 이후 식품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정부 압박이 느슨해진 틈을 타 '이때다!' 하며 치킨이며 김밥, 사이다까지 안 오르는 게 없죠. 원재료 값부터 인건비, 전기료 등 모두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알지만 1분기 호실적을 기록한 업체들까지 '비용 증가'를 호소하며 가격을 인상하니 어쩐지 얄미운 마음입니다.

역발상으로 이것저것 다 오르는 통에 오랫동안 같은 가격을 유지해주는 고마운 간식거리들을 찾아봤습니다. 과자를 만드는 오리온, 농심, 크라운제과, 롯데웰푸드, 삼양식품과 유업계인 서울우유, 매일유업, 남양유업 그리고 CJ제일제당, 오뚜기 등 10개 회사에 물었습니다. "가장 오랫동안 같은 가격을 유지해온 제품은 어떤 걸까요?"

우선 과자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농심이나 삼양식품은 특별히 가격을 올리지 않은 제품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제품의 가격을 인상하면 보통 전 품목에 적용한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오리온은 다른 답변을 줬습니다. 10년 동안 가격을 올리지 않은 제품이 오징어땅콩, 초코송이, 브라우니, 마이구미 등 17개나 된다네요. 오리온은 2013년과 2022년 제품 가격을 올렸는데, 17개 제품은 2022년 인상 품목에 포함되지 않은 것들이라고 합니다. 오리온 관계자는 "맛있는 제품을 합리적 가격에 공급하는 게 기본 방침"이라면서 "내부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가 상승이 부담되는 제품만 가격을 올리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오리온만 가격 인상 방어노력을 한 건 아닙니다. 농심은 가격 동결은 아니지만, 가격 인상폭을 조정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새우깡인데요. 2022년 새우깡 가격을 1500원으로 올렸지만 정부가 '국제 밀 가격 하락'을 앞세워 압박을 가하자 지난해 7월 1400원으로 내렸습니다.

유업계에서 눈에띄는 답변은 생각지 못하게도 남양유업에서 나왔습니다. 홍원식 전 회장 일가의 오너 리스크와 갑질 이슈로 오랫동안 불매의 대상이 됐다가 최근 주인이 바뀐 바로 그 기업 말입니다.

남양유업에는 무려 22년 동안 가격을 2000원으로 동결한 제품이 있었는데요. 바로 뇌전증 환아를 위한 특수분유 '케토니아'였습니다. 뇌전증 환아들은 경련과 발작 증상 완화를 위해 약물 치료와 함께 지방, 단백질, 탄수화물의 비율을 정확히 나눈 식단이 필요한데요. 케토니아가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매출이나 수익성을 고려해서 만든 제품이 아니다 보니 남양유업은 가격을 유지함으로써 '특별한 손해'를 보고 있다고 하네요.

이외에 서울우유는 협동조합의 목적상 원유가 포함되지 않은 신제품 생산이 어려워, 가격이 오르지 않은 제품이 없다고 합니다. 원유의 가격이 매년 생산비 증가분을 반영해 새로 결정되기 때문이죠.

매일유업은 유아용 과자나 음료의 가격을 10여년 동안 동결했는데요. 요미요미 쌀과자는 2013년부터 3900원, 요미요미 유기농주스는 2014년 이후 3900원이라고 합니다.

이외에 오뚜기는 2016년 출시한 용기죽 가격을 지금까지 대형마트 기준 판매가 3980원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요. 간편식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는 데다 소비자 물가 안정에 기여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CJ제일제당은 2009년 출시한 '밥이랑' 제품을 가장 오래 가격 변동이 없는 제품으로 꼽았는데요. 밥이랑은 야채, 김, 깨 등을 건조한 것으로 주먹밥이나 유부초밥에 넣어 먹는 제품이랍니다. 15년간 2490원에 판매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조사를 하다 알게 된 뜻밖의 사실이 있는데요. 일부 식품사들은 수년간 가격이 동결된 제품을 널리 알리기를 원하더라고요. 이후에 가격 인상 결정을 할 때 오히려 이런 뉴스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곧 가격을 올릴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려 한편으로는 씁쓸했습니다. 물론 기업의 목적은 사회공원이 아닌 이윤추구인 만큼 가격 인상은 어쩔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소비자의 부담을 낮추기 위해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한 적극적 노력이 필요해보입니다. 소비자가 없으면 기업도 없으니까요.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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