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범죄, 재정적자, 미국...멕시코 사상 첫 女대통령의 과제
멕시코 대선에서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61) 당선인의 앞에는 과제가 산적하다. ‘마초의 나라’로 불리는 멕시코에서 유리천장을 깨고 새 역사를 쓴 것이 무색하게도 선거 직후 현직 여성시장이 피살되며 불안한 치안 상황이 재차 부각된데다, 금융시장에서는 커진 불확실성에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멕시코와 국경을 맞댄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 불법이민을 막기 위한 행정조치를 단행했다. 이는 모두 멕시코와 셰인바움 당선인이 직면한 난관이 무엇인지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평가다.
멕시코 대통령 선거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일(현지시간)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로 승리한 좌파 집권당 국가재생운동(MORENA·모레나) 소속 셰인바움 당선인은 오는 10월1일 취임식을 갖고 6년 임기를 시작한다. 멕시코에서 여성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1924년 연방정부 수립을 규정한 헌법 제정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셰인바움 당선인은 ‘모두를 위한 통치’를 강조하고 ‘투자자 친화적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산적한 과제...범죄·치안부터 해결해야
신임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는 단연 범죄와의 전쟁이다. 당장 연간 3만명 이상이 살해당할 정도로 불안한 치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도 곳곳에서 폭력, 유혈 사태가 잇따랐다. 컨설팅회사 인테그랄리아에 따르면 선거 캠페인이 시작된 작년 9월 이후 230여명이 살해됐고, 이 중 30명 이상이 후보로 파악됐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 취임 후 5년여간 공식 통계로 취합된 살인 규모만 17만5000명을 넘는다. 실제 발생한 살인사건은 이를 훨씬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셰인바움 당선인은 정치적 멘토인 오브라도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마약 카르텔 등 범죄집단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면서도 폭력의 동인을 해결하는 이른바 ‘총알이 아닌 포옹’ 전략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대신 멕시코시티 시장 재임 시 효과를 봤던 일부 정책들을 통해 범죄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실제 처벌까지 받게끔 국가 범죄 조사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연방경찰 방위군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당선 직후 "(범죄, 폭력의) 원인을 해결하고 처벌받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구체적인 실행방안과 실효성에는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CNN방송은 멕시코시티 시장 시절 경찰의 근무조건을 개선하고 정보수집을 강화한 셰인바움 당선인의 정책이 시 범죄율을 낮추는 데 여파를 미쳤다면서도 "범죄 집단이 세력을 넓히고 있는 전국 단위, 인구 1억2600명 이상인 멕시코 31개주에서 재현될 수 있을까" 반문했다. 싱크탱크 에발루아에 따르면 멕시코에서는 매년 발생하는 범죄의 98%이상이 처벌 또는 해결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윌슨센터는 "최악의 경우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실패한 안보 전략을 복제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美 대선 중요해...재정적자도 우려
국경을 맞댄 미국과의 관계 역시 풀어나가야 할 주요 현안이다. 멕시코 공공연구센터의 카를로스 페레즈 리카르트 교수는 "멕시코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가 11월5일(미국 대선일) 치러진다"고 의미를 강조했다. 누가 선출되느냐에 따라 멕시코의 정책에까지 여파가 불가피해서다.
특히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는 유권자의 최대 관심 중 하나인 불법이민, 마약밀매 등과 관련해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멕시코 대선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멕시코 국경으로 들어오는 불법 입국자들의 망명을 받지 않는 사실상의 국경 봉쇄조치를 발표한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게다가 멕시코는 2026년 미국, 캐나다와의 3자 무역협정인 USMCA 재협상도 앞두고 있다. 셰인바움 당선인은 취임 이후인 올 연말부터 이를 위한 준비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앞서 그는 뉴욕타임즈(NYT)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는 후보와 불법이민 문제 등에서도 협력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는 재정적자 이슈가 해결해야할 과제로 꼽힌다. 시장조사기관 스타티스타 등에 따르면 올해 멕시코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5.9%를 기록할 것으로 추산된다. 멕시코의 재정적자는 2008년부터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올해 적자 비율은 24년래 최대 수준이 될 전망이다. 내년 성장률이 1%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멕시코의 대표 국영 석유회사인 페멕스의 적자 역시 국가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셰인바움 당선인은 과세 대신 탈세 단속 등을 통해 국세 수입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과세 없이 공약했던 복지 프로그램 확대가 가능하냐는 의문표가 쏟아진다. 멕시코 경제 및 국제관계 전문가인 이시드로 모랄레스는 "재정개혁이 필요하다"면서 멕시코 석유 수입 등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개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셰인바움 당선인의 손이 묶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임 그림자 벗어날까...일당 독재체제 경계감도
이와 함께 셰인바움 당선인은 취임 말기에도 60%의 지지율을 유지 중인 전임자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그림자를 벗어나야만 한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셰인바움 당선인이 정치권에 뛰어들어 대권주자로 올라설 수 있도록 도운 정치적 멘토이자 지지자다. 이번 대선에서도 그의 지지가 큰 영향을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로 인해 주요 외신들에서는 "야당 전문가들은 셰인바움 당선인을 꼭두각시로 여긴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사실상 당의 정치 전략가로 남을 것"이라는 평가도 잇따르고 있다. AP통신은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나는 도덕적 지도자, 최고 보스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임기를 마치면) 나무와 대화하고 새와 함께 살겠다"면서도 대선 직후 주가가 출렁이자 현 재무부 장관을 다음 행정부에도 유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정치리스크 컨설팅회사인 EMPRA는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적어도 (셰인바움 당선인의) 임기 전반부 동안에는 정부에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셰인바움 당선인은 NYT에 자신이 멘토인 오브라도르 대통령과 유사한 정책을 추구할 것이라면서도 "자신과는 우선순위가 다른 사이"라고 말했었다.
일각에서는 대선과 함께 치러진 이번 총선에서 집권당이 헌법 개정이 가능한 의석을 확보하면서 멕시코가 과거 20세기 제도혁명당(PRI)과 같은 일당 독재체제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앞서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고안한 개헌안에는 판사 직선제, 의회 축소, 독립적인 선거관리 기구 해체 등의 내용이 담겼다.
워싱턴포스트(WP)는 ‘셰인바움의 당선 이후 멕시코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오피니언 기사를 통해 "대통령에게 국가 헌법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멕시코 미래에 대한 정당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AQ는 "리스크는 민주적 퇴보"라고 경고했다. ABC뉴스는 "지속적인 폭력 카르텔에 대한 광범위한 불안, 민주주의 제도 약화, 투자자들의 우려 등에도 불구하고 포퓰리즘 전임자(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정치 노선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면서 "헌법 개정 가능성으로 인해 멕시코의 리스크 균형이 약화하고 자본 이탈 우려를 야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멕시코에서는 선거 다음날인 지난 3일 주가가 6%대 급락하고 페소화 환율이 약세를 보이는 등 ‘검은 월요일’ 장세가 확인됐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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