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가게에 웬 농구대?…100만명 줄서게한 '이 남자 수완' [비크닉]
■ b.피셜
「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 “브랜드 150주년을 맞아 프로젝트를 기획하려고 했을 때였어요. 가장 먼저 한 일이 ‘하지 않을 것(Not to do list)’을 정하는 일이었죠. 그래서 ‘샴페인’ ‘갈라 디너(만찬)’ ‘브랜드 책’ 세 가지 하지 말 것을 정했어요.” "
지난 2020년 서울 성수동에 ‘침대 없는 팝업 스토어’를 열어 대히트를 친 김성준(47) 시몬스 브랜드전략부문 부사장의 얘기다. 당시 약 150만원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낸 11.5㎡(3.5평) 작은 철물점은, 단번에 시몬스를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가장 뜨거운 브랜드로 만들었다.
이후 몇 년간 시몬스는 국내 마케팅 트렌드를 견인해 오고 있다. 상품이 아니라 브랜드의 메시지를 담았던 시몬스의 팝업 스토어는 이후 업계의 ‘표준’이 됐을 정도다.
지난 2018년 경기도 이천에 문 연 ‘시몬스 테라스’도 마케팅의 본보기가 된 또다른 프로젝트다. 오프라인, 그것도 교외에 만든 공간이 5년 만에 누적 방문객 수 100만 명을 돌파한 것. 김 부사장은 이곳에서 ‘소셜 아트 전시’를 열 때도 ‘사모님 아트’는 하지 말자는 원칙을 정했고, 장 줄리앙 등 히트 전시를 이어갔다. 문화 불모지였던 지역에 온기를 불어넣으면서 처음으로 ‘로컬(local·지역)’을 트렌드의 수면 위로 올렸음은 물론이다.
애플·나이키·파타고니아·샤넬….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이 기라성 같은 브랜드들은 늘 브랜드를 만드는 이들의 찬사를 받으며 참조(레퍼런스)의 대상이 돼 왔다. 아쉬운 점은 이들이 모두 해외 브랜드라는 것. 그래서 시몬스의 사례는 귀하다. 우리 실정에 맞고, 실제 지금 우리에게 효과가 있는 브랜딩 방식을 증명해왔다는 점에서다.
이런 이유로 김 부사장이 이달 초 출간한 책 『소셜 비헤이비어』는 주목할 만하다. 책에서 김 부사장은 시몬스 팀이 그동안 만들어온 성공 사례 이면의 ‘작동 방식’을 공개했다. “소비자의 심리가 아니라 행동을 관찰하면 답이 보인다”고 말하는 김 부사장을 지난 5일 서울 논현동 소재 시몬스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소셜 비헤이비어’라는 제목이 어렵다
A : 직역하면 ‘사회적 행동(social behavior)’이라는 의미다.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바뀌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시기 일상이 집 안에 묶이면서 지역의 가치가 올라갔고, 온라인 접속이 늘면서 인플루언서라는 새로운 계급이 탄생했다. 사람들의 변화하는 행동 양식을 어떻게 관찰하고, 이것을 마케팅에 녹여낼 것인지를 정리한 책이다.
Q : 요즘 사람들의 ‘소셜 비헤이비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A : 현재 스마트 폰은 이미 몸 밖의 ‘부착된 뇌’가 됐다. 이를 통해 온·오프라인을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생활하고 있다. 이 거대한 변화가 우리 행동을 결정짓고 있다고 본다. 특히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마케팅 전략을 세울 때, 이제는 어떤 콘텐트를 만들지 아니라 어떤 플랫폼을 활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게 더 중요하다.
Q : 시몬스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잘 활용했다.
A : 젊은 세대들은 SNS에 수시로 자신들의 일상을 올린다. 온라인에서 그들이 활발히 소비할 수 있는 콘텐트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모난 화면 안에서 소비될 수 있는 명확한 콘셉트의 이미지를 오프라인에 설계한 이유다.
Q :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경험 설계라는 건가.
A : 온라인에 탐닉할수록, 오프라인의 실물 가치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른바 ‘휴먼 터치(human touch·인간의 온도와 감성)’다. 또한 오프라인은 고객과의 관계를 구축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찾아오게 하고, 무엇보다 단돈 1000원이라도 쓰게 하면 브랜드와 소비자 간의 끈끈한 ‘관계’가 생긴다.
Q : 사고 싶고, 올리고 싶은 콘텐트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데.
A : ‘유스 컬처(Youth culture·청년 문화)’를 활용하려고 한다. 마케터 입장에서 청년 문화는 거의 ‘마르지 않는 샘’이다. 샤넬의 칼 라거펠트는 “내 소명은 샤넬 재킷의 명성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살아있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브랜드를 계속 살아있게 하려면 젊은 문화 안에서 끊임없이 ‘서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시몬스가 해 왔던 오프라인 공간 콘텐트들에 꼭 ‘농구 문화’가 들어간다. 하드웨어스토어, 그로서리 스토어에 모두 농구대와 농구공이 있다. 브랜드 이름이 안 보여도 농구대 하면 시몬스가 떠오르게 이미지적인 잔상을 남긴 셈이다. 이런 청년 문화는 한때 청년이었던 중장년층에게도 추억과 재미를 환기한다는 점에서 꼭 가져가야 할 요소다.
김 부사장은 타고난 감각가다. 침대 업계로 오기 전 패션 업계서 경력을 쌓았다. 미국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에서 디자인 경영학을 공부한 뒤 이탈리아 남성복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에서 패션 MD로 활약했다. CJ오쇼핑 브랜드 컨설턴트를 거쳐 지난 2015년 시몬스에 합류했다.
Q : 어떻게 항상 젊은 감성을 유지할 수가 있나.
A : 당연히 할 수 없다. (웃음) 동시대에서 문화로서 체험해온 젊은 실무자들만큼 직관적으로 청년 문화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콘텐트를 만드는 일은 1980~90년대생 현업에 맡긴다. 저는 이들이 일을 잘할 수 있게 예산을 따오는 역할이다. (웃음) 지난 하드웨어 스토어는 1984년생 팀장들이 주축이 됐다. 이후 그로서리 스토어, 제페토 메타버스 프로젝트 같은 것들은 1990년대생 직원들로 올라왔다. 어떻게 보면 우리도 변화하는 시류에 맞춰서 끊임없이 진화해 온 것 같다.
Q : 지금 겸직으로 있는 시몬스 디자인 스튜디오가 그 진화의 결과인가.
A : 보통 침대를 잘 팔면 가구나 리빙 제품을 더 내서 거대한 가구 기업으로 발전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침대를 잘 팔게 된 ‘브랜딩 기술’을 팔아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왕이면 돈도 벌고, 좋은 일도 해보고 싶다.
Q : ‘ESG’ 브랜딩이라는 테마를 잡은 이유가 있나.
A : 이제 젊은 세대를 설득하려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요소가 없어서는 안 된다. 이들이 뛰어나게 윤리적이어서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광장(플랫폼)’을 손에 쥐고 태어났다. 자기 의견을 너무도 쉽게 개진하고, 퍼트릴 수 있다.
Q : 앞으로의 계획은.
A : 얼마 전 경기도 이천에 다시 문을 연 그로서리 스토어의 F&B(식음료) IP(지식재산권)를 발전시켜볼 계획이 있다. 카페로 시작했는데 정작 핫도그가 인기가 많아서 핫도그 집으로 기획해볼 작정이다. 또 ESG 브랜딩 회사로서의 시몬스 디자인 스튜디오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유튜브 IP 확보 등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도전인데, 3년 안에 자리를 잡는 것이 목표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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