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조, 바둑리그 최초 ‘4지명 MVP’ 될까 [쿠키인터뷰]
20년 바둑리그 사상 첫 4지명 MVP 유력
절대강자 신진서 9단이 54개월 연속 랭킹 1위를 수성하고 있는 바둑계에서 요즘 가장 ‘핫 한’ 선수는 누구일까. LG배 16강에서 신 9단을 격침하고 생애 첫 세계대회 본선 무대를 8강으로 장식한 한상조 6단을 거론하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창단 2년 만에 바둑리그 정상에 오른 울산 고려아연 팀의 ‘4지명’ 한상조 6단이 MVP 후보에 올랐다. 챔피언결정전 진출 선수 중 승률 등 자격 요건이 충족된 선수에게 부여되는 MVP 후보는 이번 시즌 총 4명이다. 우승을 차지한 울산 고려아연에서 3지명 문민종과 4지명 한상조, 준우승에 머문 원익에선 주장 박정환 9단과 3지명 박영훈 9단이다.
20년 바둑리그 역사에 준우승 팀에서 MVP가 나온 건 딱 한 번이다. 주인공은 역시 신진서 9단인데, 해당 시즌에서 신 9단은 27전 27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전력 열세였던 팀을 혼자 힘으로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린 수훈을 인정 받은 결과였다.
일반적인 흐름대로 우승 팀에서 MVP가 나온다면, 4명의 후보 중 가장 유력한 인물은 역시 한상조 6단이다. 한 6단은 정규시즌 9승3패, 75% 승률을 기록하면서 맹활약했다. 울산이 2-1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한 챔피언결정전 1차전과 3차전에서 모두 팀 승리를 자신의 손으로 결정하는 최종 승점을 올렸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바둑리그 사상 최초의 ‘4지명 MVP’를 노리고 있는 한상조 6단이 쿠키뉴스와 만나 최근 상승세의 비결을 밝혔다.
‘노력하는 재능’ 타고난 승부사, 한상조
“계속해서 꾸준하게 해왔다. 특별히 더 열심히 해서 성적이 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소처럼 열심히 해 왔는데, 그게 올해 때를 맞으면서 잘 풀리는 시기인 것 같다.”
신진서 9단을 격침했던 지난 5월22일까지 한상조 6단은 올해 42전 27승15패를 기록하고 있다. 한 6단 이야기처럼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성적이다. 2017년 12월27일 제140회 일반인 입단대회를 통해 프로에 입문한 한 6단은 프로 데뷔전을 치른 2018년부터 매해 꾸준하게 조금씩 성적이 향상돼 왔다.
하지만 올해 더욱 만개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메이저 세계대회 본선 데뷔전을 치렀던 LG배에서 일본 이다 아쓰시, 디펜딩 챔피언 신진서를 꺾고 8강에 오른 것과 바둑리그 MVP 후보로 오를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뽐낸 것이 이를 증명한다.
한 6단은 “LG배에서 신진서 9단에게 승리하고 8강에 오른 후에 주변에서 축하를 많이 받았다”면서 “이렇게 인터뷰도 하니 더 실감이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한 6단은, 그러나 바둑리그 우승 또한 개인전 성과 못지 않은 기쁨이었다고 회상했다. 한 6단은 “LG배 8강과 바둑리그 우승은 결이 다른 기쁨”이라며 “둘 중 딱 하나만 고르기 어렵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소속팀 울산 고려아연을 우승시키는 마지막 승리를 거뒀을 때는 성취감도 컸지만 ‘다같이 이뤄냈다’는 감동이 있었다”면서 “같은 팀 선수들과 한 시즌 동안 함께 하면서 끈끈함을 많이 느꼈다”고 돌아봤다.
팬들과 소통하는 능력 갖춘 ‘스타 기질’
바둑팬들과 소통하는 한상조 6단은 벌써부터 ‘찐팬’도 생겼다. 30대 바둑팬 A씨는 한 바둑 행사에 참석했다 팬 미팅 당시 한 6단과 만남을 가진 이후 몇 년째 ‘1인 팬클럽’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상조 6단이 이번 바둑리그 정규시즌에서 맹활약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1라운드에서 패배를 당했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한 6단은 이때를 떠올리며 “중국 용병 양카이원 선수에게 첫 판을 졌고, 내용도 좋지 않았다”면서 “풀이 죽어 있었는데 팬 한 분이 검토실 밖에서 2시간이나 기다렸다면서 샴페인을 주고 가셨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이기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게 당연한데, 그날은 졌는데도 응원을 해주러 오신 거라 감사하면서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는 한 6단은 이후 7연승을 달리면서 울산이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해냈다. 한 6단은 “직접 와서 응원을 해주신 팬 분들의 응원이 큰 동기부여가 됐다”고 강조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한 6단은 인공지능 이전과 이후 가장 변모된 기사로 꼽힌다. 한 6단은 “인공지능이 나오기 전에는, 제가 입단은 할 수 있겠지만 성적을 내는 것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바둑은 재능의 영역이 너무 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보편화되고, 학습 용도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된 시점부터 프로기사의 필수 재능에 하나가 추가됐다는 게 한 6단의 생각인데, 그것은 바로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학습하는 능력’이다. 한 6단은 “저는 바둑 자체에 대한 재능보다 인공지능 이해력과 학습력에 더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인공지능으로 공부를 하면서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인공지능 만능이 아니라 바둑 팬들에게 ‘감동을 주는 바둑’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한 6단은 “방송에도 출연하고 팬 분들과 소통도 많이 해왔지만, 신진서 9단을 한 번 이긴 게 훨씬 더 큰 화제가 됐다”면서 “프로기사는 성적으로 본인을 증명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인공지능을 활용해 이기는 바둑을 두겠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감동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한 6단은 “축구나 야구가 팬이 없다면 ‘공놀이’에 불과하듯, 바둑 또한 응원해주는 팬이 없다면 ‘돌놀이’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
프로 데뷔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뜻깊은 한 해를 보내고 있는 한상조 6단은 오는 9월 중국 일인자 커제 9단과 물러설 수 없는 승부를 펼친다. 신진서 9단을 격침하고 오른 LG배 8강 무대다.
“신진서 9단을 이겼을 때 만감이 교차했다”고 운을 뗀 한 6단은 “세계대회 첫 출전이기도 하고, 상대가 워낙 강했던 만큼 부담 없이 편한 마음으로 승부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한 6단은 “신 9단을 이겼다는 것에 대해 팬 분들이 축하도 많이 해주시지만, 걱정하고 우려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라며 “그만큼 더 책임감을 갖고 잘 준비해 8강전에서 커제 9단을 꼭 이기겠다”고 당찬 포부를 전했다.
지난 5월 끝난 LG배는 9월 말과 10월 초에 8강전, 4강전을 치른다. 다른 종목에서 찾아보기 힘든 경기 운영 방식이라 지켜보는 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회에 임하는 선수들도 ‘김이 샌다’고 종종 지적해왔던 일정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한 6단에겐 호재가 될 수 있다. 한 6단은 “아직은 제가 초일류 기사들에 비해 실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라며 “남은 기간 동안 각고의 노력을 해서 저를 더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 6단은 스스로에 대해 “승부사로서 늦게 꽃을 피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한국 나이로 스물여섯에 처음 세계대회 본선에 올랐으니 ‘대기만성형’ 같다”며 웃었다.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 제가 더 노력하고 성장해서 활짝 개화하게 된다면 그게 훨씬 더 아름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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