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치전쟁 10년, 결국 졌다…괴물쥐 영토확장, 다음 타깃은 포항

천권필 2024. 6.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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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유역에 설치된 포획틀 주변을 뉴트리아 두 마리가 서성거리고 있다. 사진 조영석 대구대 교수

4일 경북 영천시 금호강변. 강줄기를 따라 커다란 포획틀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이른바 ‘괴물쥐’로 불리는 뉴트리아를 잡기 위해 전날에 설치한 덫이다. 포획틀 안에는 고구마가 미끼로 들어 있었다.

“뉴트리아는 쥐약을 먹어도 죽지 않기 때문에 저렇게 당근이나 고구마같이 뉴트리아가 좋아하는 채소로 유인해서 포획하는 방법을 주로 씁니다.” 동행한 김규철 대구대 박사가 포획틀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경북 영천까지 나타난 뉴트리아 “강 따라 북상”


경북 영천시 금호강변에 설치된 뉴트리아 포획틀. 천권필 기자
영천시가 괴물쥐와 전쟁에 나선 건 지난해부터 뉴트리아가 출몰했다는 신고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영천시청 관계자는 “금호강 주변을 산책하는 주민 등으로부터 뉴트리아가 나타났다는 민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며 “작년에는 직접 덫을 설치해 6마리를 잡았고, 올해부터는 뉴트리아를 퇴치하기 위해 전담 인력을 고용했다”고 말했다.

뉴트리아 개체군을 조사한 대구대 연구팀에 따르면, 이 지역은 뉴트리아의 예상 서식권역을 벗어난 곳이다. 김 박사는 “이렇게 북쪽으로 올라온 건 처음”이라며 “뉴트리아가 강을 따라 조금씩 북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1985년 수입됐다가 버려져…10년 퇴치 전쟁에도 생존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지난 4월에 포획한 뉴트리아. 사진 낙동강유역환경청
뉴트리아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세계 100대 악성 외래종으로 원래 고향은 남미 아열대 지역이다. 몸길이는 최대 63㎝, 꼬리 길이는 42㎝에 이르고 앞니가 주황색인 게 특징이다. 국내에는 1985년에 모피와 식용 목적으로 처음 도입됐다. 하지만 경제성이 떨어지자 사육 농가는 문을 닫았고, 강가에 버려진 뉴트리아는 낙동강 하류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했다.
김영옥 기자

이후 낙동강유역환경청은 2014년부터 뉴트리아 퇴치 전담반을 꾸려 10년 동안 대대적인 퇴치 작전을 벌였고, 3만 8000여 마리를 제거하는 성과를 거뒀다. 퇴치 작전의 효과로 초기에는 뉴트리아 개체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2018년 이후에는 포획되는 개체 수가 2000여 마리 수준으로 정체됐고, 최근 3년은 오히려 증가했다. 포획 작전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따뜻해진 겨울에 유일한 천적 ‘추위’ 사라져


이렇게 뉴트리아의 북상을 막지 못하고 전쟁에서 지고 있는 건 기후가 점점 뉴트리아에게 유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천적이 없는 뉴트리아의 가장 큰 위협은 추위다. 그동안 뉴트리아가 낙동강 하류에 머문 것도 겨울 추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2017~2018년 겨울에는 강력한 한파가 찾아오면서 뉴트리아 개체 수가 급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대부터 따뜻한 겨울이 이어지면서 추위에 적응한 뉴트리아가 점차 대구·경북 등 북쪽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낙동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추위가 일주일 이상 유지되면 개체 수가 확 줄어들 수 있을 텐데 요즘에는 3~4일 정도 추웠다가도 금세 따뜻해지다 보니 포획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기후변화로 낙동강 수계·남해안 따라 확산”


김주원 기자
문제는 앞으로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겨울의 길이는 점점 짧아지고 평균 기온도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뉴트리아의 북상 속도도 더 빨라질 수 있다.

조영석 대구대 생물교육과 교수팀이 기후변화에 따른 향후 뉴트리아 분포를 분석한 결과, 뉴트리아 개체군이 낙동강 수계와 남해안 해안가 일대를 따라 확산할 것으로 예측됐다. 서쪽으로는 전남 장흥의 해안 습지 일대까지 출현할 수 있으며, 동쪽으로는 포항과 울산 지역까지 확산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조 교수는 “유전적으로 추위에 적응하면서 토착화하는 과정을 겪고 있는데 기후변화로 인해 따뜻한 겨울이 되면 뉴트리아는 더 쉽게 퍼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바닷가를 따라 전남 광양을 거쳐 서쪽 지역으로도 이동할 수 있다”고 했다.


영국만 유일하게 박멸…“연구 기반의 포획 시스템 필요”


경남 창녕군 우포늪에서 적외선 드론을 통해 포착한 뉴트리아들의 이동 모습. 사진 조영석 대구대 교수
뉴트리아는 국내에서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된 38종 중 유일한 포유류다. 식물 뿌리를 닥치는 대로 갉아먹어서 습지 파괴자로도 불린다. 굴을 파는 습성이 있어서 둑이나 제방을 파괴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여름철에 홍수 위험을 높이는 주범으로도 꼽힌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등 다른 국가들도 뉴트리아와 전쟁을 벌였지만, 박멸에 실패했다. 미국 역시 유도 불임이나 수렵 등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고 있지만, 일부 주에서는 완전 박멸을 포기한 상태다. 유일하게 영국만이 1981년부터 1989년까지 대대적인 제거 작업을 통해 뉴트리아를 완전히 퇴치하는 데 성공했다.

전문가들은 연구를 통해 포획 제도를 더 정교한 방식으로 개선해야 뉴트리아와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뉴트리아는 번식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불규칙적으로 이뤄지는 포획으로는 말 그대로 지속가능한 퇴치 작전밖에 안 된다”며 “연구 기반의 포획 작업으로 퇴치에 성공한 영국처럼 상시적이고 집중적인 포획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영천=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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