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마오쩌둥 만수무강' 자개함, 文선물도 걸린 박물관
“지난 2019년 6월 시진핑(習近平) 동지가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가 선물한 자개 상감으로 장식한 그림입니다. 자연에서 색채가 풍부하고 다양한 모양의 조개껍데기를 정선해 일일이 손으로 제작한 공작 한 쌍으로 선물을 받는 이에게 아름다운 축복을 표현했습니다.”
지난 5일 찾아간 베이징 둥청(東城)구에 자리한 중국 중앙예품문물관리중심에서 안내원이 김정은 위원장의 선물을 낭랑한 목소리로 소개했다. 이곳은 역대 중국 국가지도자가 외교 활동 중 받은 선물을 한데 모아 전시한 일종의 '선물 박물관'이다.
안내원이 설명한 김 위원장의 선물은 은은한 비취색 배경에 마주 보는 공작새 암수 한 쌍과 온갖 꽃·나비·잠자리 등이 한 데 어울린 자개 그림이다. 작품 아래엔 “시 주석이 (김 위원장과) 평화로운 대화로 지역과 세계의 평화·안정·번영을 실현하기 위해 새롭고 더 커다란 공헌을 다짐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최근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긴장감이 높아진 한반도 정세와는 동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이 박물관은 중화인민공화국(1949년) 건국 이후 수집한 670여 건의 선물을 모아 지난 2021년 문을 열었다. 당시 중국공산당(중공) 창당 100주년을 기념해 올림픽공원에 문을 연 중공역사전람관과 비슷한 시기에 개관했다.
다만 개관 후에도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간헐적으로 공개됐고, 사전 예약자만 입장할 수 있어 외국인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요즘엔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참가국 또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의 외국인 단체팀, 공산당 당원 등이 주로 온다고 박물관 안내원은 전했다.
김정은이 선물한 공작 자개 그림이 있는 전시실에는 지난 2017년 12월 중국을 방문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건넨 선물도 전시돼 있었다. 작품 옆에는 “양국 정상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시종 건강하고 안정적이며 정확한 발전의 궤도로 추진하는데 동의했다”는 설명이 보였다.
한국 대통령의 선물로는 유일한 이 작품은 한자 통(通)과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궁즉변변즉통통즉구)”이라는 ‘주역’ 원문과 한글로 “변화와 소통이 생명입니다”가 적혀 있고 작가 신영복이 남긴 “서초 남골 쇠귀”와 낙관 “신영복 씀”, “쇠귀”가 찍혀있다.
북한 측 선물은 앞서 설명한 자개 그림 외에 김일성·김정일 3대에 걸친 다섯 작품을 전시 중이다. 가장 오래된 선물은 김일성이 마오쩌둥(毛澤東)에게 선물한 ‘만수무강’ 사각 자개함으로, 휴전 직후인 1953년 11월 김일성 당시 내각 수상이 중국을 방문해 선물했다. 사각 상자 뚜껑에는 한글로 '만수무강' 네 글자가 새겨있고 주위에 한글 모음 “ㅏ ㅑ ㅓ ㅕ ㅗ ㅜ ㅠ ㅡ ㅣ” 와 상자 옆으로 ㄱ부터 ㅎ까지 자음이 자개로 새겨 있었다.
김일성의 또 다른 선물로는 1987년 5월 덩샤오핑(鄧小平)에게 선물한 “금강의 달맞이” 자개 병풍 그림과 천윈(陳雲)에게 전달한 “금강산 삼선암” 자수화가 보였다.
김정일의 선물은 한·중 수교 이후 첫 비밀 방중이었던 2000년 5월 당시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에게 선물한 높이 2m의 초대형 청자였다. 중국 기록에 따르면 김정일은 당시 장 주석에게 “북한의 고려청자 전문가가 3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라며 “솔직히 말해 오는 내내 깨질까 걱정했다”고 말했다.
박물관에 전시된 한국 측 선물은 문재인 대통령의 선물 외에 하나가 더 있다. 2002년 4월 열린 제1회 보아오 포럼에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했던 이한동 당시 국무총리가 주룽지(朱鎔基) 총리에게 선물한 금장 꽃무늬의 둥근 은제 과일함이다.
유엔(UN)을 중시하는 중국 외교를 반영한 듯,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선물 두 건도 전시 중이다. 반 총장이 지난 2013년 중국을 찾아 선물한 자필 서예 “天地合同(천지합동)”, 2014년 5월 상하이에서 열렸던 아시아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에 방문하면서 전달한 유엔헌장이 눈길을 끌었다.
박물관에서 만난 시민들은 다양한 관람평을 내놓았다. 베이징 시민 장(張)은 “중동 국가들은 황금 공작새와 같이 금으로 만든 선물을 좋아하고, 유럽 국가는 자국의 대표 작가나 음악가와 관련된 선물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 추이(崔)는 벨기에가 선물한 '틴틴의 모험'을 가장 인상적인 선물로 꼽았다. 흰 도자기에 푸른 연꽃을 그리고 벨기에의 만화가 에르제의 유명 캐릭터 틴틴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벨기에와 중국을 상징하는 아이콘을 조화롭게 표현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지난 2021년 7월 이 박물관을 직접 찾아 전시 작품을 참관했다. 중국중앙방송(CC-TV)에 따르면 시 주석은 방문 당시 “국가 지도자가 외교 활동 중 주고받은 선물은 특수한 역사적 가치와 풍부한 인문적 내용은 물론, 중국 국민과 세계 각국 국민의 깊은 우정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박물관 1층에는 마오쩌둥·덩샤오핑·시진핑 세 시기를 각각 “독립자주·평화공존” “개방협력·평화발전” “대도동행·운명공동”을 주제로 전시하고, 2층은 “세계무대·대국담당”이란 제목으로 중국이 개최했던 다자 회의를 계기로 중국이 선물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한편 2층 전시실 한쪽에 지난 2017년 12월 베이징에서 개최했던 “중국 공산당과 세계 정당 고위 대화”에 참석했던 당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친필 서명도 찾아볼 수 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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