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스토어 성지’ 성수동 현실… ‘폐기물 폭탄’ 신음

이다연 2024. 6. 9.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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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1.2t→ 2022년 518.6t 10배
환경 위해 기업 자체 노력·시민 감시 필요
서울 성동구 성수동 한 팝업스토어 앞. 국민일보


서울 성동구 성수동은 ‘팝업스토어 성지’로 불린다. 최신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팝업스토어가 넘쳐난다. 트렌드에 민감한 2030세대, 소위 ‘힙한’ 이들의 아지트가 된 지 오래다. 기업들은 마케팅 수단으로 팝업스토어를 적극 활용하고 있고, 트렌드에 민감한 2030세대는 오픈런(개점 질주)마저 즐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려한 팝업스토어의 무시할 수 없는 이면도 있다. 잠시 설치됐다 철거되는 팝업스토어에서 나오는 폐기물이 어마하다. 대기하는 이들의 소음 등도 이웃들을 자주 불편하게 만든다. 팝업스토어가 만들어내는 쓰레기와 소음에 대해 고민할 때다.

지난 5일 오후 3시 성수역 3번 출구. 거리는 평일 낮인데도 팝업스토어를 찾아다니는 20~30대와 외국인들로 가득했다. 팝업스토어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연무장길 거리에는 팝업스토어만 10개가 넘었다. 송강호 주연의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삼식이 삼촌’의 배경인 ‘사일제과’, 농심의 ‘새우깡 어드벤쳐 인(in) 고래섬’ 등 골목마다 팝업스토어들이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골목길은 대기하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각인데도 사전 예약자가 아닌 현장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은 물건을 구입할 수 없어 발길을 돌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팝업스토어는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떴다가 사라지는 ‘팝업창’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짧게는 하루, 통상 3개월 내에 문을 닫는 임시매장 개념이다. 입소문 마케팅에 유리하고, 소비자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하면서 브랜드의 특징을 알릴 수 있어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된 마케팅 수단이다. 의류, 캐릭터, 영화, 웹툰뿐만 아니라 금융업계까지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날 연무장길 곳곳에서 ‘팝업 단기 임대’ 팻말을 찾아볼 수 있었다. 성수동 인근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A씨는 “팝업스토어의 경우 10평대 공간을 일주일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임대료가 500만원 정도고, 20평대는 1600만원대”라고 말했다. 이처럼 비싼 임대료에도 기업들은 팝업스토어를 선호한다. 브랜드 홍보와 매출 상승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케팅을 하고자 하는 기업과 최신 트렌드를 소비하고 싶어하는 젊은 세대의 수요가 만들어낸 팝업스토어의 번성은 어두운 그림자도 갖고 있다. 팝업스토어가 사라진 자리에는 수많은 폐기물이 쌓인다. 한시적으로 열리는 팝업스토어의 특성상 일회용 플라스틱과 같은 폐기물이 대량으로 배출될 수밖에 없다. 한 팝업스토어 관계자는 “폐기물의 경우 계약을 맺은 전문 폐기물 처리 업체가 직접 철거하고 있다”고 했다.

팝업스토어를 설치하고 철거할 때 나는 소음도 만만치 않다. 팝업스토어가 만들어지고 없어질 때마다 주민은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 이 일대 인근에 거주하는 40대 남성 A씨는 “밤에는 항상 뭔가 부수고 없애는 작업이 한창”이라며 “고작 1~2주 운영하자고 가벽을 짓고 부수는 일이 반복된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팝업스토어를 평소 즐겨찾는 이지윤(23)씨는 “체험과 증정을 중시하다 보니 굳이 안 써도 되는 종이나 플라스틱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팝업스토어 문의 안내판. 국민일보


팝업스토어 열풍과 함께 성수동이 위치한 성동구의 폐기물량도 늘었다. 환경부에 따르면 서울 성동구의 일반폐기물 양은 2018년 51.2t에서 2022년 518.6t으로 5년 사이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팝업스토어가 활성화되면서 영향을 미쳤다는 진단이다. 업계에 따르면 33㎡(10평) 내외의 팝업스토어에서 약 1t의 폐기물이 발생한다.

폐기물은 주로 패널(건축용 널빤지), 가벽이나 현수막, 플라스틱 위주다. 허혜윤 서울환경연합 자원순환팀 활동가는 “폐기하는 패널이나 용품들 자체도 대부분 한 번 쓰고 버려져 문제가 심각하다”며 “팝업스토어 매장이 우후죽순 늘어나며 행사 종료 후에 발생하는 폐기물도 최대 수십 톤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거의 상시적으로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는 백화점업계도 폐기물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젊은 세대가 관심 가질만 한 브랜드를 선점해 경쟁적으로 팝업 스토어를 운영하는 분위기인데 (팝업스토어) 폐기물이 어마하다”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기조에 역행하기 때문에 어떻게 이를 줄일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팝업스토어 폐기물 처리 기준은 명확히 없다. 건설 폐기물의 경우 재활용 촉진을 위한 법률이 존재하지만 팝업스토어에서 나오는 폐기물에 대한 처리기준은 딱히 없다. 관련 기업과 업체에 자율적으로 맡길 수밖에 없다. 대다수의 팝업스토어가 저렴한 합판을 목공용 스테이플러로 고정하는 방식을 쓰기 때문에 해체할 경우 파손이 불가피해 재활용은 불가능하다. 이에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친환경, ESG 경영을 말하면서도 뒤로는 재사용할 수 없는 폐기물들이 무한 생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폐기물 문제뿐만 아니라 인파가 몰리면서 발생하는 소음에 고통을 호소하는 주민도 많다. 전국 소음 민원 건수와 성동구의 소음 민원 건수를 비교한 결과, 성동구가 전국 대비 약 6배 많았다. 2017년과 비교해 2022년 서울 성동구의 전체 소음 민원 건수는 1207건에서 2916건으로 약 2.5배 증가했다.

성수역 근처에 사는 30대 조모씨는 “대형 팝업스토어 공사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불만을 표했다. 인근에서 직장을 다니는 조하영(30)씨는 “골목이 좁은데 팝업스토어는 대기줄이 있다보니 시끄럽기도 하고 차도와 인도 구분없이 줄을 서 있어 위험해 보였다”고 했다.

소음·진동관리법에 따라 사업장이나 공사장 등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일정 기준을 넘으면 법적규제를 받는다. 하지만 팝업스토어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각 팝업스토어마다 발생하기 때문에 해당 법령을 적용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기업의 자체적 노력과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시민들의 감시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ESG 경영을 앞세우는 기업들이라면 단순히 소비자를 모으는 데 골몰하는 것이 아니라 홍보나 마케팅에서도 환경적인 면을 고려해야 한다”며 “기업이 먼저 나서서 쓰레기 없는 팝업스토어를 운영하고, 이런 사례가 퍼지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이다연 기자 id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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