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취·파리떼 진동하는 ‘저장강박’ 이웃, 어떡하나요

최수진,이성훈 2024. 6. 9.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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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한 아파트의 저장강박·애니멀호딩 의심가구 현관 앞에 주민들이 작성한 항의문이 붙어있다. 최수진 기자


“아이가 친구들을 데리고 올 때면 냄새가 너무 심해서 밑에서부터 코를 막고 올라와요.”

지난달 31일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아파트 단지. 정문에 들어서자 배설물과 쓰레기가 함께 썩는 듯한 악취가 풍겨왔다. 단지에서 만난 주민 최모(45)씨는 냄새에 대해 묻자 “악취 때문에 일상 생활이 쉽지 않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경비원도 “얼마 전 한 주민이 왜 분뇨가 섞인 거름을 아파트 화단에 뿌리냐며 냄새가 심하다고 항의했을 정도”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악취, 바퀴벌레, 파리떼…4년째 고통받는 주민들
지난 5월 31일 방문한 경기 고양시 아파트 입구 쪽에 파리떼가 날아다니고 있다. 최수진 기자

이웃집에서 발생하는 악취와 바퀴벌레, 파리떼로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한 지 벌써 4년째. 해당 세대는 저장강박과 애니멀호딩까지 의심되는 상황이지만 현행법상 당사자 동의 없이는 해결 방법이 없어 주민 고통이 이어지고 있다.

현장을 확인해보니 냄새는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자 더욱 심해졌다. 이어서 발견한 문제의 건물. 주민들이 악취의 근원으로 지목한 A동이었다. 현관 입구에 서자 지독한 냄새가 풍겨나왔고, 계단 부근에서는 파리떼가 웅웅댔다. 날파리가 아니라 축사 인근에서나 볼 법한 수준의 파리떼였다. 마침 방문한 에어컨 설치 기사는 손부채질로 파리를 쫓은 뒤에야 간신히 계단을 올라갈 수 있었다.

냄새와 파리떼는 A동 1층의 특정 세대를 둘러싸고 유독 심해졌다. B씨(48)가 사는 집이었다. 둘러보니 B씨 집은 육안으로도 오염도가 높았다. 창문을 가린 흰 블라인드에는 까맣게 곰팡이가 피고, 여기저기 벌레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지난 5월 31일 방문한 저장강박·애니멀호딩 의심가구의 창문 블라인드에 곰팡이와 벌레들이 끼어있다. 최수진 기자.


주민들은 B씨 집에서 나오는 지독한 악취 탓에 창문도 열지 못한 채 생활하고 있었다. 관리과장은 “4층에 살고 있는 주민은 사비를 들여 집 안에 환풍시설을 설치했다”며 “환기를 시킬 수가 없으니 창문에 설치된 환풍기를 계속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원래 소독이 필요없을 만큼 깨끗한 아파트였다”며 “지금은 모든 동에 바퀴벌레가 나오고 있고 잠깐 집을 비우고 오면 집안에 바퀴벌레 사체들이 널려 있을 정도로 위생 상태가 나빠졌다”고 말했다.

B씨네 집 앞에 붙은 편지는 이런 상황을 웅변한다. 단지에 사는 한 초등학생이 지난해 썼다는 편지는 “저희 가족도 괴롭고 주변 이웃들도 고통스럽다”며 “다시 옛날처럼 이상한 냄새가 안 나면 좋겠다. 부탁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A씨는 “노력하겠다”고 답변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지난해 7월 저장강박·애니멀호딩 의심가구 현관 앞에 아이가 작성한 편지가 붙어있다. 독자 제공

저장강박, 애니멀호딩…악취와 벌레의 원인
현재까지 B씨 집 내부를 직접 확인한 사람은 친인척 C씨뿐이다. 이 때문에 B씨 집에서 풍기는 악취와 벌레의 원인을 단정하기는 어려운 상황. 하지만 C씨와 이웃 주민, 관리사무소 관계자 증언을 종합해보면, 집안 내부에 쌓여있는 쓰레기와 B씨가 키우는 여러 마리의 고양이, 여기서 나오는 분변 등이 처리되지 않은 채 썩어가면서 생긴 문제로 추측된다.

현장을 살펴본 뒤 내린 결론도 비슷했다. B씨 집의 열려있던 창문 사이로는 천장까지 쌓인 물건들과 쓰레기 더미, 고양이 여러 마리가 보였다. 지난해 하반기 집안을 본 게 마지막이라는 C씨는 “내부가 넓은데도 집 안에 택배 박스가 가득해서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없었다”며 “몸을 옆으로 돌려 상자를 피해 다녀야 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관리과장도 “상당히 큰 택배 박스가 매번 집 안으로 들어가는데 쓰레기가 분리수거장에 나와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며 “집안 내부에 박스와 쓰레기를 모아놓고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B씨에게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저장강박’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증언들이다.


더욱 심각한 건 B씨에게 능력 이상의 반려동물을 수집해 키우는 ‘애니멀호딩’이 의심된다는 사실이다. 애니멀호딩은 해외에서는 동물학대로 분류된다. 정확한 숫자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이웃들은 B씨 집에 대략 10여 마리의 고양이가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경비원에 따르면 B씨는 주 3~4회 고양이 모래·장난감·사료 등을 대량으로 주문한다. 정기적으로 사료 등을 급여하는 정황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만으로는 고양이들이 적절한 사육공간이 확보된 환경에서 위생 및 건강상의 문제 없이 지내고 있는지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2019년 발견된 서울 노원구의 저장강박증 환자 집 내부. 최민석 기자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2019년 발견된 서울 노원구의 저장강박증 환자 집 내부. 최민석 기자

이웃들은 몇년째 고통을 호소하고 있지만 해결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저장강박으로 인한 주거 위생 문제를 개선하려면 당사자 동의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저장강박의 상위 개념인 국내 강박장애 환자 수는 2015년 2만4446명에서 2022년 4만42명으로 7년동안 63.8% 증가했다. 가파른 상승세에 일부 지자체에서는 조례를 제정해 저장강박 의심가구의 주거환경 개선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본인 동의 없이는 진행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고양시 행정복지센터 사회복지팀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B씨가 도움 받을 의사가 없음을 스스로 피력했다”며 “본인 동의가 없다면 강제로 주거 침입을 할 수도 없고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도움을 주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관리과장 역시 해당 가구에서 발생한 민원철을 보여주며 “구청·주민센터·동물협회에 신고했고 모두 현장 방문을 했지만 B씨가 도움을 거절해 방법이 없었다”며 “B씨가 동의만 해준다면 관리사무소에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겠지만 쉽지 않다”고 답답해했다.

애니멀호딩의 경우에는 강제력을 사용하는 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동물보호법 10조에 따르면 최소한의 사육공간을 제공하지 않거나 위생·건강 관리를 하지 않는 행위도 동물학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련 규정이 동물 생산업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주거지에서 동물을 키우는 민간인 호더에게는 적용하기 어렵다.

해외에서는 가정에서의 애니멀호딩을 예방하기 위해 가구당 반려동물 수를 법으로 제한하고 있다. 호주 빅토리아주에서는 주거 형태에 따라 최대 2~3마리의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다. 만약 호딩 행위가 적발될 경우 담당 공무원이 개인 주거지에 진입해 구조 조치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캐나다 온타리오주도 가구당 키울 수 있는 강아지와 고양이의 숫자를 정해두고 있다.

국내에서는 당사자가 마음을 열도록 담당 공무원이 꾸준히 설득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지난해 11월 충남 천안의 아파트가 대표적인 사례. 담당 공무원은 악취와 고양이 울음소리를 해결해달라는 민원이 빗발치자 1년 4개월 동안 주 2회 해당 가구를 방문해 설득한 끝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당시 집 내부에서는 고양이 사체가 500구 넘게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공권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박주연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PNR) 공동대표는 “B씨가 고양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비위생적인 환경 등 동물학대가 의심될 경우 동물보호법에 따라 관할 공무원이 출입해 확인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분쟁 소지가 있어서 공무원이 해당 법 조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대표는 “4년 동안 이웃이 고통받는 건 심한 케이스”라며 “공동주택에서는 지나친 소리, 냄새로 피해를 줘선 안 되기 때문에 피해 상황이 발생했다면 행정력이 적극 개입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수진 기자 orca@kmib.co.kr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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