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가서 운전 연습? 웃음이 나질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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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숙 기자]
제주도의 길은 제각각 독특한 맛이 있다. 조붓조붓한 마을 길, 숲길, 작은 어촌 마을 곁 바닷길 등 곳곳이 생생한 즐거움을 준다. 걷는 길뿐 아니라 차로 드라이브하면서 만나는 길도 그러하다.
그중 으뜸이 한라산을 넘어가는 516도로이다. 매일 한라산을 넘어 제주시로 출근하는 남편은 눈 쌓인 날, 꽃 핀 봄날엔 길 영상을 찍어서 보내준다. 산남(山南)에서 짧은 운전만 하던 나도 제주시로 넘어가기 전에는 살짝 들뜨기도 한다.
서홍동 집에서 터덜거리며 6분 올라가서 1115번 도로를 만나면 그때부터 차는 자유를 얻는다. 구간 단속이 있고 차도 많지 않아, 천천히 가면서 도로변 나무와 먼바다를 곁눈질하기 좋다.
도로는 자주 보수해서 노면이 매끈하고 시야는 넉넉하다. 서귀포에 처음 이사 왔던 때부터 나는 이 도로를 편애했다. 시내를 관통하기보다 무조건 위로 올라와서 이 제2산록도로를 타고 가다 1131번 516도로를 만난다.
도로의 초입에 커브를 틀면 시야가 확 트이는 지점이 있다. 구름도 미세먼지도 없는 날 감질나게 숨던 한라산이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내면 탄성이 터진다.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오래 잔상이 남았다. 찰나가 영원이 된다.
▲ 크라우드 픽에서 구입한 제주 도로 지도 |
ⓒ 크라우드 픽 |
5월 한 달간 제주시에서 교육 받느라 매일 그 길을 넘어 다녔다. 아침 8시. 제주시로 출근하는 차량은 서귀포로 출근하는 차량보다 수가 적다. 제주시에 살면서 서귀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본격적으로 산길로 접어들면서 도로는 2차선이 된다. 옆 차선을 살피지 않아도 되어서 나는 숲길이 더 편안하다. 구부러진 길목마다 굳이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되도록 미리 속도를 조절한다. 그 시간은 하루 중 가장 도로에 차량이 많은 시간이라 저절로 속도 제한 40~50km에 맞춰가게 된다.
나야 516도로를 한 200번 정도 다녔지만, 3년 넘게 출근한 남편은 800번쯤 넘나다녔고, 집이 제주시인 한 약사 아저씨는 이십 년 가까이 출퇴근했으니 만 번 가까이 다녔다. 길 구석구석까지 익숙한 운전자들이다.
그런데, 출근 차량이 대부분인 그 도로에 간혹 30km를 못 넘는 렌터카들이 있다. 한 번은 굽이굽이마다 브레이크를 꼬옥 밟은 채 핸들을 감고 커브를 도는 렌터카를 본 적이 있다. 길에는 곧 차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열 대, 스무 대. 대개 그런 차량은 뒤를 살피지 못한다. 갓길에 잠시 정차하여 밀린 차들을 보낼 줄도 모른다. 결국 갓길 없는 숲 터널은 차들이 나란히 줄지어 30km로 서행하게 된다. 출근길 운전자들은 차 안에서 한숨만 포옥 쉬고 있을 게다.
▲ 전국 17개 시도별로 차량 교통사고에서 렌터카가 차지하는 비율이 제주도는 10.9%다. |
ⓒ 제주지방경찰청 제공 |
저속보다 과속은 더 큰 사고를 부른다. 재작년 한 렌터카가 제한 속도가 60km인 남조로를 시속 173km로 질주하다 적발됐다. 또 2021년 제주지방경찰청이 적발한 초과속 위반차량 45대 가운데 렌터카는 27대로 60% 정도를 차지해 렌터카의 속도위반이 심각했다. 제주도로는 아우토반 아닌데.
516도로는 전체 길이 40.5km이고 긴 내리막길이 지속된다. 처음 이 길을 오는 운전자나 초보 운전자는 계속 브레이크를 밟게 된다. 운전 미숙으로 인해 브레이크가 과열되고, 커브에서 제동력을 잃어 사고가 난다. 며칠에 한 번은 도로 구석에 처박힌 차량을 목격한다.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수악교 부근은 특히 악명 높다. 한 견인 차량 기사가 이 구간에 하루에만 15번 이상 다녀간 적도 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2023년 말 제주의 등록 렌터카는 총 112업체에 29,785대이다. 전국 17개 시도별로 차량 교통사고에서 렌터카가 차지하는 비율이 다른 지역 평균 2.5%보다 3~4배 높다고 한다. 작년에는 전체 교통사고에 대한 렌터카 사고 비율은 10.9%를 차지한다.
작년의 경우 8월에 가장 사고가 많았다. 또 20대 이하 운전자의 사고 비율이 높다. 그러니, '여름휴가 오는 20대의 렌터카 초보 운전자'들은 다가오는 여름 제주도에서 절대 과속하지 마시기를 당부한다.
▲ 4월 10일경 516도로의 모습. |
ⓒ 한영숙 |
서울 사는 한 젊은이가 말했다.
"이번에 제주 여행 가서 운전 연습 좀 해보려고요."
그 말을 듣고 웃지 못했다. 솔직한 주민 심정이다. 손님의 운전이 서툴다고 주민이 나무라서도 안 되겠지만, 주민을 배려한 렌터카의 성숙한 운전 태도도 필요하다.
제주도는 절대 운전 연습할 만한 도로가 아니다. 도리어 위험하다. 서울에 없는 원형 로터리가 많고, 구간 단속이나 속도 제한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 운전자들도 많다. 주차도 돈 내고 잘 안 한다. 서귀포 6차선 대로 1차선에 경운기가 가기도 한다.
차가 드문 시간 바닷가 길쯤이면 초보 운전자가 기분 내서 운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제주시와 서귀포를 잇는 대표적인 도로- 516도로, 평화로, 1100도로-에서는 운전을 삼가자. 적어도 초보 운전자는 아침 8~9시 출근 시간만이라도 피하는 배려를 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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