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고 훑고 폭발시킨 임윤찬…'흔한' 곡에 대한 파격적 해석
‘난쟁이’ 그림을 묘사한 음악은 시작하자마자 긴 시간 동안 멈췄다. ‘1월의 난롯가’를 표현한 음악도 중간에 갑작스럽게 끊어졌다. 악보에 쓰인 것보다 긴 휴지(休止)였고, 그동안 이 음악 작품들에 대한 연주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20)의 7일 독주회는 기존의 관행에 대한 ‘참고’가 없는 연주로 이어졌다. 임윤찬은 7차례 전국 독주회의 첫 공연으로 이날 서울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올랐다. 멘델스존의 무언가 두 곡(Op.19-1, Op.85-4)으로 시작해 차이콥스키가 열두달을 표현한 ‘사계’ 12곡, 이어 2부에서 30여분짜리 작품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했다.
임윤찬의 해석은 독특했다. 메인 프로그램이었던 ‘전람회의 그림’은 수없이 많은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곡이다. 임윤찬의 ‘전람회’는 이전의 해석과 상관이 없었다. 1곡 ‘난쟁이’에서 악보보다 긴 멈춤으로 우선 자신의 해석을 드러냈다. 페달을 바꾸지 않아 음들을 모두 섞어버리기도 했다. 보통 귀엽고 신나게 표현하는 5곡 ‘병아리 분장의 아이들’에 대한 임윤찬의 해석은 전례없이 무겁고 그로테스크했다.
연주에 앞서 임윤찬은 ‘전람회의 그림’을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편곡한 버전으로 연주한다고 공지했다. 호로비츠가 화음을 두텁게 하고 악보의 빈 부분을 채워 넣어 피아노의 효과를 끌어올린 편곡 판이다. 하지만 임윤찬은 이날 호로비츠의 버전대로만 연주하지도 않았다. 4곡 ‘소가 끄는 수레’에서는 호로비츠가 바꿔놓은 왼손의 꾸밈음을 지우고 원곡대로 연주했다. 9곡 ‘죽은 이와의 대화’에서도 호로비츠가 바꿔놓은 오른손을 16분음표 대신 원곡의 트레몰로로 연주했다. 10곡의 마녀 ‘바바야가’가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장면에서는 원곡에도 호로비츠 버전에도 없는 강렬한 글리산도(건반을 손등으로 훑는 것)를 사용했다.
원곡과 호로비츠의 버전을 적절히 채택하면서 임윤찬은 자신의 목소리를 강하게 드러냈다. 무엇보다 속도와 음량 면에서 극단을 실험했다. 7곡 ‘시장’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달려나갔고 10곡 ‘바바야가’는 두려움 없이 질주하는 임윤찬의 시그니처 그대로였다. 마지막 ‘키예프의 대문’에서는 악기의 한계에 도전하는 듯 극단적으로 큰 음량을 들려줬다. 러시아 교회의 종소리를 경건하게 표현하고는 했던 피아니스트들의 연주와는 완전히 다른 해석이었다.
이처럼 작품에 대한 전통적인 문법과는 거리가 있는 연주였다. 차이콥스키의 ‘사계’도 마찬가지였다. 각 달에 어울리는 시구를 표현한 표제적 음악이다. 임윤찬은 여기에서 나아가 곡마다 들어있는 감정의 변화를 극적으로 표현하며 하나의 ‘환상곡’으로 해석했다. 12곡은 각각 중간 부분에 음악적 악상이 변화하는데, 임윤찬은 이 변화의 순간마다 극적으로 차이점을 드러내면서 감정 변화의 폭을 키웠다.
임윤찬의 ‘전람회의 그림’은 독주회 한 달 반 전에 변경된 프로그램이다. 본래 쇼팽의 연습곡 27곡을 연주할 예정이었던 그는 4월 중순에 연주곡 변경을 공지했다. ‘전람회의 그림’은 임윤찬이 무대에서 처음으로 연주한 곡이다.
이번 독주회 투어는 9일 천안, 12일 대구, 15일 통영, 17일 부천, 19일 광주를 거쳐 2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끝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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