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나락보내자”…유튜버들의 위험한 ‘정의구현’ [D:이슈]

장수정 2024. 6. 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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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바깥에서 ‘나쁜 놈’들을 응징하며 카타르시스를 안기는 범죄 드라마가 안방극장의 인기 장르가 됐다. ‘모범택시’ 시리즈부터 ‘국민사형투표’, ‘플레이어2: 꾼들의 전쟁’, ‘힘쎈여자 강남순’ 등 TV 드라마는 물론, 넷플릭스 ‘더 글로리’, ‘살인자ㅇ난감’, 디즈니플러스 ‘비질란테’ 등 OTT 작품들까지. 범죄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의 ‘사적 복수’를 통해 장르적 재미를 배가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특정 인물 또는 사건을 연상시키는 현실적인 에피소드로 분노를 끌어내기도 하지만, 주인공들의 활약을 ‘시원하게’ 담으며 장르적 재미를 주곤 한다.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사적 제재가 우려스럽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하지만,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대리만족을 선사한다며 호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유튜브상에서는 이를 현실로 옮기는 유튜버들이 등장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004년 경남 밀양에서 44명의 남학생이 여자 중학생 1명을 1년간 집단으로 성폭행한 사건이 다시금 화제가 되면서 유튜브 채널 ‘나락 보관소’가 ‘가해자들의 신상 공개’에 나선 것이 계기가 되고 있다. 약 49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이 채널은 ‘고소당할까 봐 떨지 않고 할 말 다 하는 채널’을 표방, 하이브와 어도어의 갈등, 제주도에서 터진 비계 삼겹살 논란 등 대중들의 이목이 쏠리는 사건이나 이슈를 설명하는 콘텐츠를 게재했었다.

지금은 관련 영상을 모두 내렸지만 지난 1일부터 밀양 사건의 가해자들을 순차적으로 공개하며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피해자 가족과 합의해 가해자 44명의 신상을 모두 알릴 예정”이라고 밝힌 그는 가해자들의 사진 및 직업, 근황 등을 공개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신상이 드러나 직장에서 해고당한 이도 있다고 알려졌다.

시청자들은 ‘나락 보관소’에 지지를 보냈다. ‘성폭력 가해자가 멀쩡하게 일상을 영위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응원의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관련 콘텐츠들은 모두 200만 조회수를 훌쩍 넘기며 관심을 받았었다.

그러나 ‘좋은 의도’라고 하더라도, 한 개인이 직접 누군가를 응징하는 것을 응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반발도 존재한다. ‘나락 보관소’가 밀양 사건의 가해자 신상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한 네일샵 사장이 가해자의 여자친구로 추정된다는 글을 남겼지만,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엉뚱한 피해자를 낳게 되는 등 심각한 부작용 또한 보여줬다.

무엇보다 ‘피해자 측에 허락을 받았다’고 말한 것이 거짓으로 드러나 빈축을 산 끝에 결국 영상을 모두 삭제하는 등 ‘나락 보관소’에 대해 이슈가 생기면 관련 영상을 자극적으로 생산해 내며 수익을 창출하는 ‘사이버 렉카’와 다름없다는 반응도 이어지고 있다.

‘정의구현’을 목표로 보는 이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채널들이 적지 않다. 120만이 넘는 구독자들의 선택을 받은 ‘카라큘라 탐정사무소’는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다 인도로 돌진해 20대 여성에게 중상을 입힌 가해자에 대해 취재해 정보를 전달하고, 전청조의 과거를 파헤치는 등 공론화가 필요한 사건, 사고들을 다뤄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외에도 불법촬영하는 성범죄자를 잡아 경찰에 넘기는 ‘감빵인도자’, 교통법규를 위반한 오토바이배달대행 기사들을 신고하는 ‘딸배헌터’ 등이 있다.

한국공인탐정협회 소속의 탐정으로 신변 위협을 받고 있음에도 남다른 사명감으로 채널을 이어나가는 유튜버 카라큘라를 비롯해 신고 및 경찰 인도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감빵인도자’, ‘딸배헌터’ 등 긍정적인 의도를 부각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도 없진 않다.

다만 최근 유튜브 플랫폼의 영향력은 커지지만, TV 플랫폼만큼의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여러 논란들이 이어지는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 같은 흐름이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부적절한 언행을 그대로 담아 논란을 일으키는 등 기본적인 선조차 지키지 못해 빈축을 산 피식대학이 대표적인 예다. 많은 유튜버들이 콘텐츠를 신중하게 제작하고는 있겠지만, 여러 전문 인력들이 함께 방송을 제작하는 것은 물론 문제가 될 법한 부분들을 걸러내는 가이드라인이나 심의팀까지. 긴 시간 동안 철저하게 구축한 절차를 밟는 방송국의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사건·사고를 다루는 시사·교양프로그램의 역할까지 유튜버들이 시도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주의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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