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만성의 아이콘' 주민규의 뒤늦은 전성시대

이준목 2024. 6. 8.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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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외국인 감독들이 외면했던 주민규, 월드컵 출전 가능할까

[이준목 기자]

'대기만성의 아이콘' 주민규가 프로무대에 이어 국가대표로서도 뒤늦은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주민규는 지난 6월 6일 열린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C조 5차전인 싱가포르전에서 자신의 'A매치 최고령 데뷔골' 기록을 포함하여 도움 해트트릭(1골 3도움)을 기록하는 맹활약으로 팀의 7-0 대승을 이끄는데 기여했다.

스트라이커로 선발출전한 주민규는 이날 팀이 기록한 7골중 4골에 관여하며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주민규는 최전방에 머물지 않고 내려와 수비를 끌고 공간을 만들어줬고 정확한 패스로 도움을 올리면서 원톱으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주민규의 활약에 힘입어 한국축구는 조 1위로 3차예선 진출을 조기에 확정지을수 있었다.

주민규는 현재 K리그 최고의 토종 골잡이로 꼽힌다. 최근 3년간 득점왕만 2번(2021, 2023시즌)이나 수상했다. 2022시즌에도 득점은 조규성(17골, 당시 전북)과 동률이었지만 경기출전 수가 더 많다는 이유 때문에 득점왕을 놓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3년 연속 리그 최다 득점자였다.

올시즌도 4골(9위) 3도움을 기록하며 리그 3연패를 노리는 소속팀 울산의 선두 질주에 기여하고 있다. 외국인 공격수들이 강세를 보이는 K리그에서 주민규의 꾸준함은 더욱 돋보였다.

하지만 K리그에서의 꾸준한 활약과 별개로, 대표팀과는 그동안 이상하리만큼 인연이 없었다. 놀랍게도 주민규는 올해 이전까지만 해도 연령대별 대표팀 경력조차 전무했다.

이는 주민규가 비교적 늦게 빛을 발한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선수였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주민규는 미드필더 출신으로 프로에 처음 데뷔했고 간간이 공격수로도 뛰긴 했지만 주포지션은 아니었다. 20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철저한 무명에 가까웠던 주민규는 2015년 서울 이랜드 FC로 이적하면서 본격적인 공격수로 포지션을 전향하여 자리 잡았고, 뒤늦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주민규가 1부리그에서 처음 활약하기 시작한 것은 군복무 시절인 상주 상무(현 김천)에서 뛰던 2017시즌부터로 당시 20대 후반이었다. K리그1에서 득점왕급 스타로 거듭난 것은 사실상 30대가 넘어선 이후였다.

주민규가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이어가면서 A대표팀 발탁에 대한 가능성도 조금씩 거론되기 시작했다. 주민규는 2010년대 중반 울리 슈틸리케 시절에 국내파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동아시안컵 예비 엔트리에 두 차례 포함된 적이 있다. 하지만 모두 최종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는 데는 실패하며 끝내 단 한 번도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물론 당시의 주민규 역시 국가대표팀에 발탁될 정도로 완성된 선수는 아니었다.

정작 주민규가 30대가 되어 K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전성기에 접어든 시기에는, 파울루 벤투와 위르겐 클린스만 등 외국인 감독들이 연이어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주민규에게는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당시 A대표팀에는 황의조-조규성-오현규라는 확실한 공격수 3인방이 존재했고, 윙어지만 유사시 최전방까지 소화가능한 주장 손흥민까지 있어서 주민규가 파고들 틈이 없었다. 

하지만 2024년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황의조가 사생활 파문으로 국가대표 자격을 사실상 박탈당했고, 오현규는 셀틱 이적 이후 성장이 정체되며 대표팀 주전경쟁에서도 밀려났다. 주전 공격수였던 조규성도 아시안컵 전후로 대표팀에서 슬럼프와 부상에 허덕이며 입지가 불안정해졌다.

클린스만의 뒤를 이어 A대표팀의 지휘봉을 잠시 이어받은 황선홍과 김도훈, 두 국내파 '임시 감독'들은 무주공산이 된 국가대표 주전 스트라이커 자리에 34세의 베테랑 주민규를 과감하게 발탁했다. 그를 최초로 선발한 황선홍 감독은 "3년간 리그에서 주민규보다 더 많은 골을 넣은 선수는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더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하다"라며 주민규에 대한 강한 신뢰를 드러내기도 했다.

주민규는 황선홍호 체제에서 치러진 태국과의 2연전에서 비록 골은 넣지 못했지만 무난한 활약을 선보이며 국제대회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을 불식시켰다. 이어 김도훈호 체제에서는 첫 경기인 싱가포르전에서 대량득점을 이끌어낸 주역으로 활약하며 손흥민-이강인 등 유럽파 윙어들과도 좋은 호흡을 선보여 기대에 부응했다. 

하지만 주민규의 A대표팀 내에서의 입지가 아직 확고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주민규를 발탁했던 황선홍 감독에 이어 김도훈 감독이 9일 중국전을 끝으로 임시 감독으로서의 역할을 마무리한다. 다가오는 9월 3차예선부터는 새로운 정식 감독이 지휘봉을 잡을 예정이고 또다시 외국인 감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새 감독이 국내파 감독들처럼 계속 주민규를 대표팀에서 중용할지는 미지수다.

공격수로서 주민규의 강점은 뛰어난 피지컬을 바탕으로 몸싸움과 헤딩, 포스트플레이등 신체를 활용하는 플레이에 능하고 골문 앞에서의 집중력이 빼어나다는 것이다. 당초 의구심을 자아냈던 국가대표팀에서 2선 공격수과의 연계능력 역시 나쁘지 않았다. 주민규는 미드필더 출신이라 공격수치고는 패스에도 능한데다, 대표팀에서는 본인의 욕심을 버리고 동료들을 살려주는 이타적인 플레이에 치중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반면 단점은 느린 스피드와 좁은 활동반경이다. 주민규가 A매치 3경기에서 상대한 팀들은 모두 아시아에서도 약체로 꼽히는 태국과 싱가포르 뿐이었다. 이런 팀들을 상대로는 주민규의 단점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아시아권 강팀들을 상대해야하는 3차예선, 더 나아가 세계적인 강호들과 경쟁하게 될 월드컵 본선무대에서도 주민규가 얼마나 통할지는 장담하기 힘들다.

또다른 걸림돌은 주민규의 나이다. 한국축구가 북중미월드컵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본선이 열리는 2026년이면 주민규는 어느덧 36세가 된다. 그때까지 주민규가 에이징 커브없이 기량을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데다, 기존의 조규성-오현규에 오세훈, 이영준 등 젊은 공격수들과의 경쟁구도를 넘어서야 한다.

주민규는 다음 경기인 9일 중국전에서도 출전이 유력하다. 중국은 강팀은 아니지만 이전에 상대했던 싱가포르나 태국보다는 전력에서 우위인 데다 소림축구로 불리는 거친 피지컬적인 플레이에 강점이 있는 팀이다. 주민규가 중국전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면, 새 감독체제에서도 국가대표로서의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는 확실한 임팩트를 남길 수 있다. 불가능을 넘어 대기만성을 꿈꾸는 늦깎이 국가대표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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