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애기봉'에서 바라본 북녘 고향... "함께 평화롭게"

이혁진 2024. 6. 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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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애기봉에서 선열과 조상을 추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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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진 기자]

 애기봉비석
ⓒ 이혁진
    
지난 6일 현충일, 김포에 있는 애기봉을 찾았다. 정확한 이름은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이다. 김포시는 2017년 공사를 시작해 2020년 애기봉을 새롭게 재탄생시켰다.

공원 착공 수년 전 방문한 이후 근 10년 만이다. 애기봉은 말끔히 단장된 모습이다. 전쟁과 실향의 상흔보다는 이름 그대로 '평화'와 '생태' 나아가 남북의 '미래'를 조명하는 곳으로 변모했다. 

'평화생태전시관'에서 '조강전망대'로 이어지는 '흔들다리'와 공원 산책로는 과거 애기봉의 삭막한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조강전망대와 주변의 애기봉 비석, 평화의 종 등은 북을 향해 평화를 기원하는 모습이다. 

새롭게 단장한 애기봉, 전쟁보다 평화를 노래하다

전망대 망원경으로 애기봉 앞을 흐르는 조강 건너 북녘은 손에 쥘 듯 가깝다. '개풍군'과 그 멀리 '개성 송악산'이 눈앞이다. 저곳이 전쟁 전 만해도 남한땅이었다니 고향을 둔 실향민들의 애달픈 심정은 오죽하랴 싶다. 

애기봉은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 1번지에 있는 154미터의 야트막한 봉우리다. 예전에는 '쑥갓머리산'으로 불렸다. 군사요충지로 남북이 휴전을 맺을 때까지도 한 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전투가 치열했던 곳으로 '154 고지'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도 '해병대'가 이곳을 지키는 이유이다.

애기봉이 주목받은 것은 196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고지 현지를 방문해 병자호란 당시 '애기'에 얽힌 전설을 듣고 애기의 한이 ' 실향민'의 한과 비슷하다고 해 산 이름을 애기봉이라 지은 후다. 비석의 애기봉 글씨는 박 전 대통령 친필이다.

이처럼 애기봉은 실향의 한을 상징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곳을 지켜낸 구국용사들의 희생이 서려 있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이들 선열들의 고귀한 애국심과 평화통일 염원을 잠시 기리며 묵념을 올렸다. 

무엇보다 애기봉은 아버지 고향 개풍군을 바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40여 년 전 아버지와 함께 처음 이곳에 들렀을 때 아버지는 육안으로 보이는 고향집을 가리키며 추억들을 전해주었다. 개풍군은 지금 북한 선전마을과 김일성기념전시관이 있는 곳이다.

애기봉만큼 개풍군 실향민들이 자주 찾는 곳도 드물다. 김포를 포함해 인근 강화도 사람들은 6.25 전쟁 중 이곳으로 잠시 피란했다. 곧 귀향할 거라 믿었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곳을 자신의 제2의 고향으로 치부할 정도로 애정이 각별하다.

'조강'은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강물과 바다가 접하는 곳이다. 개풍군민들은 조강을 조상 대대로 고향을 품어온 강으로 신성히 여기고 있다. 강 따라 상조강리, 하조강리로 마을과 집성촌이 형성됐다. 

필자가 방문한 날 조강은 평온을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 충돌과 교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곳이다. 이곳 해상에는 말뚝으로 이루어진 군사분계선이 없기에 위험과 평온이 상존하는 셈이다. 

또한 조강은 밀물과 썰물의 차가 심한 곳이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썰물 때 김포나 파주로 헤엄쳐 오갔다고 한다. 갯벌에서 참게, 방게, 농게를 줍고 장어를 잡았던 일화들을 수도 없이 들려주었다.

개풍군 조강리에 고향을 둔 한 실향민은 전후 애기봉을 매일 찾았다고 한다. 숨어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런 향수와 가족의 그리움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막을 수 없었다. 대를 이어 자손들이 지금도 이곳을 찾아 차례를 지내고 함께 고향의 봄을 부르며 목놓아 울고 있다. 
 
 조강전망대로 이어지는 '흔들다리'
ⓒ 이혁진
   
 조강전망대 전경
ⓒ 이혁진
 
 
 조강 건너 개풍군이 보인다.
ⓒ 이혁진
   
 네팔 관광객들이 조강전망대에서 개풍군을 망원경으로 살피고 있다.
ⓒ 이혁진
 

애기봉의 애환, 반복되서는 안돼

내가 아는 많은 이산가족들이 김포와 강화에 살고 있다. 뿌리내린 후손들은 부모들처럼 통일과 귀향을 바라고 있다. 이들의 애향과 평화통일의 염원은 김포 실향민들이 2002년 11월 당시 애기봉에 세운 비석에 고스란히 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눈앞에 보이는 산천은 의구하기만 한데 지척의 고향은 세상 어디보다 멀기만 합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기슭에서 자맥질을 하면 금방이라도 유도(留島)를 지나 내 고향에 닿을 듯하고 마근포, 조강포에서 배를 띄우고, 뱃소리 한가락 마칠 쯤이면 마중해서 뛰어나오는 혈육들을 볼 수 있을 듯한데 닫힌 뱃길 버려진 포구는 50년이 지난 오늘도 잠을 깨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충일을 맞아 애기봉을 찾아 북한땅을 바라보는 가족과 실향민들도 많았다. 교육관에서 조강을 배경으로 전하는 북한상황 해설에 귀를 쫑긋하는 초등학교 학생들도 여럿 보였다. 
 
 애기봉 트리가 있던 자리에 모형이 방문객을 맞고 있다.
ⓒ 이혁진
 
 
 평화교육관에서 애기봉 해설을 하고 있다.
ⓒ 이혁진
 
 
  조강전망대에 설치된 평화의종
ⓒ 이혁진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은 파주 ' 오두산통일전망대'만큼 알려지지 않았다. 김포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접경지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은 한국관광공사 주관으로 '2023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됐다. 

지금 남북이 엄중한 상황이다. '전쟁의 문이 열리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북한의 '오물풍선'으로 우리 측의 대응이 강화되자 이곳 방문도 어렵지 않을까 예상했다. 이럴수록 평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애기봉은 한치 땅이라도 내주지 않기 위해 우리가 끝까지 지켜낸 곳이다. 전쟁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교훈도 상기하는 곳이다. 현충일에 이곳을 찾아 평화를 떠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애기봉의 애환이 반복되서는 결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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