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청년 마음의 문턱을 넘어라…'해결사'로 나선 기술은 무엇[청년고립24시]

정현진 2024. 6. 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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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면 공포 큰 고립·은둔 청년, 온라인 익숙
앱으로 미션 달성-상담 진행 → 회복 도움
日선 밤시간 상담 가능한 온라인 창구 운영

편집자주 - 퇴근 후 혼자 끼니를 때울 때,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는 수백개지만 힘든 일이 있어도 마음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을 때, 아프거나 돈이 없는데 도움을 요청할 수 없을 때... 아시아경제가 만난 20·30대 청년들은 이럴 때 고립감을 느꼈다고 털어놨습니다. 혹시 당신의 이야기는 아닌가요?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와 같은 단어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왔다면 이제는 고립·은둔을 다시 제대로 바라볼 때입니다.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 현장으로 나오게끔 하는 게 가장 어려워요. 매주 나오게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전화해서 독려해볼까 싶다가도 그 자체가 부담스러울까 봐 망설이는 경우가 많아요."

외부활동이 쉽지 않은 고립·은둔 청년들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어도 현장으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어렵다. 일종의 '마음의 문턱'이 작용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청년고립24시] 취재 중 만난 장보임 공감인 사무국장은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으로 이를 언급했다.

밤 늦은 시각 서울의 한 카페에서 한 청년이 혼자 앉아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밖으로 나가는 걸 꺼리는 고립·은둔 청년들은 온라인 생활에 익숙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 10명 중 7명 이상은 외부활동이 적은 만큼 대부분 온라인을 통해 외부정보를 인지한다. '돈을 덜 들이면서 시간 소요가 가능한 온라인 활동에 하루의 많은 시간 의존한다'는 응답률은 38.8%로 높았다.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보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몰입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러한 고립·은둔 청년의 특성을 적극 반영한 비대면 지원 방안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IT 기술 발전이 20·30대 청년의 대인관계 어려움을 강화한 측면이 있지만, 오히려 이를 활용해 비대면 환경에 익숙한 청년들의 고립·은둔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다. 핵심은 고립·은둔 청년이 갖고 있는 마음의 문턱을 넘어 비대면 활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사회 복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미션 완수" 온라인서 단계적으로 성취감 회복

2020년부터 고립·은둔 청년 지원 정책을 펼쳐온 서울시는 올해 하반기 중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자기주도형 온라인 플랫폼을 마련해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지난 3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고립·은둔 청년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처음 지원을 받기 위해 관련 센터로 나오는 데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라는 점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이동건 서울시 미래청년기획단 청년사업반 청년활력팀장은 "대면상담의 경우 모든 고립·은둔 청년에게 제공하기에 일부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온라인으로 더 많은 청년이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턱을 낮추면서 보다 많은 청년이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플랫폼을 만들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고립·은둔 청년 온라인 활동 예시(사진출처=서울시)

서울시는 청년들이 원할 때 시공간 제약 없이 온라인으로 접속해 비대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서 점차 오프라인 지원 현장인 청년기지개센터 등으로 나올 수 있게끔 과정이 단계적으로 진행한다. 햇볕 쬐기, 방 청소하기, 스트레칭하기, 은둔 극복 사례집 읽기 등 집에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부터 동네 한 바퀴나 한강을 산책하고 둘레길을 걸으며 서울시 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이동하는 미션까지 집 밖으로 나가는 프로그램까지 다양하게 갖춰질 예정이다.

고립·은둔 청년이 상태 개선 의지가 있더라도 꾸준히 프로그램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를 보완하기 위한 시스템도 마련된다. 미션에 성공할 때마다 점수를 획득해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끔 하고, 플랫폼에 소통 시스템을 구축해 참여자가 서로 댓글을 달아주고 응원하게끔 마련할 계획이다. 이 팀장은 "시범운영 해보고 개선사항을 꾸준히 반영해 나가려 한다"며 "오프라인보다는 훨씬 많은 인원이 참여 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에 앞서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 '두더지땅굴'을 먼저 만든 사단법인 씨즈도 온라인 공모전이나 챌린지를 만들어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성취감을 느낄 만한 창구를 마련해뒀다.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곳이나 안 가본 곳을 가본 뒤 인증사진과 장소 소개를 올리는 등 비교적 가벼운 듯 보이나 고립·은둔 청년에게는 성취감이 큰 프로그램으로 구성한다. 이은애 씨즈 이사장은 "(고립·은둔 청년을 돕는 과정에서) 맨 처음엔 대면 상담을 하려 했는데 은둔 청년의 특징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이후 지원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온라인에 관련 정보를 얻는 창구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두더지땅굴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바다에 떠 있는 페트병 잡는 기분" 앱으로 고립 해소

스타트업 등 민간 기업이 제작한 정신건강 관련 서비스가 고립·은둔 청년의 소통 창구가 되기도 한다. 도움이 필요하지만 병원, 상담 센터를 직접 방문하기 쉽지 않은 20·30대 청년들이 비대면 방식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출신 의사들이 만든 온라인 마인드케어 애플리케이션(앱) 마인들링이 그 중 하나다. 마인들링은 이용자의 성향을 분석한 뒤 '엄격이'(완벽주의), '콩콩이'(불안), '버럭이'(분노), '고독이'(고립), '물렁이'(자존감) 등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석해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중 고립·은둔 문제에 놓인 이용자를 위한 프로그램이 '고독이 프로그램'이다. 기본적으로 본인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고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으며 타인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길 꺼리는 특성을 반영했다.

온라인 마인드케어 애플리케이션(앱) 마인들링의 고립 취약층을 위한 '고독이 프로그램' 설명 화면(사진출처=마인들링 홈페이지 캡쳐)

대부분 20·30대인 유료 이용자 3만명 중 30% 정도가 고독이 프로그램 이용자다. 취업준비생과 대학생의 이용 비중이 높고,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마인들링 운영사인 포티파이의 문우리 대표는 "남성이 여성보다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커서 앱으로 해결해보려는 경향이 큰 듯 보인다"며 "고독이 프로그램 이용자가 다른 유형보다 가장 우울 정도 심하고 정서적으로 제일 어려움이 큰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램 초반에는 고립·은둔 성향이 있는 이용자의 상황을 타자화해 캐릭터로 상황을 보여주며 자신의 행동과 사고 패턴을 깨닫게 하고, 이후 인간관계에서 발생할 여러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제시, 그 과정에서 본인이 힘들 때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만들도록 돕는다. 문 대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엘사'도 사실 고독이 아니겠나. '당신에게 멋있는 부분이 있다. 스스로 그걸 발견해보자'며 도움을 주려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고독이 프로그램을 이용한 한 대학생이 기업 인턴 생활을 하면서 이를 활용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자신만의 안전장치를 잘 활용해 무사히 인턴 생활을 마쳤다고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고 한다. 문 대표는 "마인들링 이용자가 '바다에 빠졌는데 페트병 하나를 잡고 있는 느낌'이라고 표현한 적 있다"며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우울 정도가 낮아질 뿐 아니라 자기 효용감이 높아지는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밤 시간이 취약" 日 24시간 365일 비대면 상담 서비스 제공

한국보다 먼저 '히키코모리' 문제에 관심을 보여온 일본에서도 온라인을 활용한 고립·은둔 청년 지원 방안이 마련돼 있다.

일본 '아나타노이바쇼' 플랫폼 소개 모습(사진출처=아나타노이바쇼 홈페이지 캡쳐)

일본 '아나타노이바쇼'라는 플랫폼은 일본 내 고립·은둔 위험에 놓인 사람들이 24시간 365일 무료로 익명 상담을 할 수 있는 창구를 운영한다. '당신이 머물 곳'이라는 뜻의 '아나타노이바쇼(あなたのいばしょ)'라는 표현을 플랫폼 명칭으로 사용해 고립·은둔 상태에 빠진 취약자들이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2020년 3월 개설된 이 플랫폼은 2년 만엔 2022년 3월까지 30만건 가까운 상담을 진행했고 이후에도 빠르게 이용자가 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고립·은둔 등 취약 문제를 다루는 상담 센터에 인력이 부족해 근무 시간 이외에 상담이 어려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한다. 이 플랫폼은 홈페이지에 "자살이 가장 많은 시간대가 자정부터 이른 아침이고 이 시간에 상담이 가장 많이 이뤄진다"며 "이 시간대 상담원을 확보하기가 어렵고 상담 창구를 24시간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 항상 과제가 돼 왔다"고 소개했다. 온라인 상담이지만 1년 이상 연수를 받아야 상담원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상담원 교육에도 공을 들인다고 플랫폼은 설명했다.

아나타노이바쇼는 정부를 비롯해 행정기관, 일본 내 학교, 기업까지 다양한 곳과 협업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나라현 이코마시 등 지자체와 5월에는 레노버 등 기업과도 협약을 맺고 고립·은둔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 확대에 나서고 있다. 히키코모리 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오오조라 코우키 아나타노이바쇼 이사장은 플랫폼 개설, 확대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정부에서 고독·고립대책담당실 홈페이지 기획위원회 위원, 고독사·고립 실태 파악에 관한 연구회 회원 등을 맡기도 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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