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비는 골프장 국뽕 안 통한다 [정현권의 감성골프]

2024. 6. 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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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칼럼을 쓰는 필자에게 간혹 지인들이 부킹을 부탁한다.

평소 이용하는 서울 인근과 여주, 그리고 포천 골프장 등을 예약한다. 급할 때는 직접 전화로 하지만 대부분 인터넷 회원 가입을 유도해 해결한다.

얼마 전 친구들과 저녁 자리에서 술김에 사흘 뒤 골프를 하자며 바로 휴대폰을 꺼냈다. 골프장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자마자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빼곤 대부분 빈자리였다. 7시 이전에는 그린피도 2만원 정도 싸기에 얼른 예약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 달에 6번 횟수를 이젠 2번으로 줄였어요. 너무 오른 물가 때문에 부담스러워 아예 그만둘 마음도 있어요.”

퇴직 후 골프로 시간을 보내던 대기업 임원 출신 지인도 최근 골프 횟수를 확 줄였다. 띄엄띄엄 가다 보니 샷이 예전 같지 않아 저조한 점수에 스트레스를 받고는 또 가기 싫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토로했다.

누구보다 골프에 진심이었던 그는 요즘 평일에는 서울과 지방의 문화예술 공간이나 유적지, 휴양림, 둘레길 등을 주로 찾는다. 이름난 맛집에서 음식도 즐기고 건강을 챙긴다.

일본과 태국, 필리핀 같은 외국으로 빠지는 골퍼들도 줄을 잇는다.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해외 골프투어를 간다는 소식이다.

척추협착이니 회전근개 같은 전문용어까지 들먹이며 아프다더니 틈만 나면 골프 백을 싸 들고 인천공항으로 나간다. 태국 치앙마이 일주일, 일본 후쿠오카 4박 5일, 삿포로 4박 5일 등이 부지기수다.

대부분 한 끼 식사 포함해 18홀에 10만원 정도다. 평일 우리나라 골프장보다 절반 이하다.

“요즘 제주도에 누가 골프 하러 가나요. 10만원을 훨씬 웃도는 비행기표에 갈치 한 마리 10만원이 말이 되나요. 그린피는 그대로인 데다 이틀에 한 번은 비와 바람으로 골프를 하기 힘든 기상 여건이죠.”

종종 제주도를 찾았던 지인의 말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엄청난 폭리에 분노했던 그는 이후 제주 골프를 끊었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콧대 높던 골프장이 텅 비어간다. 제주도 골프장들은 지자체에 세제 지원 등으로 살려달라고 아우성친다.

보통 한 달 전에 사이트를 열자마자 없어졌던 예전의 부킹 경쟁은 완전히 사라졌다. 하루 전에도 마음만 먹으면 사이트에서 예약 가능하다.

당연히 내장객 수도 감소 일로다. 스마트스코어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내장객 규모 상위 250개 골프장의 연간 내장객 분석 데이터 조사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코로나 사태가 한창이던 2021년 250개 골프장에 방문한 내장객은 약 2856만명으로 전년 대비 13.3%(334만명) 증가했다. 역시 2022년에도 약 2907만명이 방문해 전년 대비 1.8%(50만명) 늘어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엔데믹에 접어든 2023년에는 약 2640만명이 골프장을 찾는 데 그쳐 전년 대비 9.2%(267만명)가량 감소했다. 내장객 감소 1위는 단연 제주(-18.8%)였고 전라(-15.4%), 경상(-10.3%) 순이었다.

올해는 역대급 엔저와 고물가로 1분기에만 내장객이 10% 이상 줄었다. 평일에는 골프장에서 따라오는 뒷 팀을 찾아보기 힘들다.

제주도 골프장 내장객은 1분기에만 무려 12.3% 감소했다. 도민보다 도외와 외국인 내장객 감소가 더 심했다.

급기야 제주도는 골프장 업계와 최근 간담회를 열고 도민 할인제, 계절 할인제, 고향사랑기부자 골프장 이용료 할인 등을 제시했다. 그렇다고 마음이 떠난 골퍼들의 발길을 돌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 상황이 코로나 특수를 끝내고 일반 수준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면 골프장에는 큰 걱정이 아니다. 코로나 특수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많은 전문가가 현 상황을 일시적 호황을 끝낸 데에 그치지 않고 골프장 장기 불황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진단한다는 점이다. 사실 코로나 팬데믹 이전만 해도 골프장들은 손님 모시기에 바빴다.

당시 대중골프장 평일 그린피도 10만원 안팎인 데가 흔했고 부킹도 아주 쉬웠다.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맞은 호시절을 끝내고 이제는 그 이전보다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강하다.

고물가 저성장 국면이 고착화하는 데에도 소득은 그대로여서 골퍼 비용을 대기가 무척 버겁다. 그런데도 골프 비용은 여전히 높다. 높은 그린피와 카트비, 15만원에 달하는 캐디피에 등을 돌리는 골퍼들이 줄을 잇는다.

일본만 해도 그린피 말고는 부대비용이 없다. 갈수록 빈자리가 늘어나는 국내 골프장은 극히 일부를 빼곤 개선될 조짐조차 없다.

그나마 자타가 인정하는 코스 관리와 진행 서비스, 아니면 거품을 확 뺀 골프장을 빼곤 이탈하는 골퍼들의 발길을 잡지 못할 것이다. 골프에선 국뽕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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