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원 생기면...'악덕' 임금체불 사업주, 사라질까 [전민정의 출근 중]

전민정 2024. 6.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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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TV 전민정 기자]

"우리 사회도 이제 노동법원의 설치가 필요한 단계가 됐습니다."

지난달 14일, 윤석열 대통령이 49일만에 민생토론회를 다시 시작하면서 내놓은 깜짝 발언입니다.

윤 대통령은 노동 약자 보호를 위한 '노동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가정법원, 특허법원처럼 노동분쟁을 전문적으로 다룰 노동법원 설치를 적극 검토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임기 중에 노동법원 설치 관련 법안 제출도 공식화했는데, 소관 부처인 고용노동부와 법무부는 최근 노동법원 설치 협의에 착수한 상황입니다.

● 30년 숙원 된 '노동법원' 설치 다시 '화두'로 '노동법원'. 언뜻 듣기엔 생소하지만 관련 논의의 첫 시작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노태우정부 시절인 1989년. 한국노총이 노동법원 설치를 국회에 입법청원을 하면서 정부는 권리분쟁 조정 업무를 전담할 노동법원 설립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2004년 노무현정부 시절에는 노동법원 설치안이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기도 했고요.

지난 정부인 문재인 정부에서도 법원행정처와 법원노조가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법원 설치 추진을 약속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지난 대선 공약으로 노동법원 설치를 내걸기도 했죠.

국회에서도 줄곧 비슷한 요구가 있었습니다. 제18대부터 21대까지 빠짐없이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됐는데요. 다만 본격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고 국회 임기가 만료돼 폐기됐습니다.

지난해 4월에도 최강욱 전 민주당 의원이 노동법원을 설치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정식으로 논의되지는 못했고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된 상황입니다.

● 노동 분쟁 절차, 사실상 '5심제'

노동법원에 대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던 건 노동 관련 분쟁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현재 노동 관련 분쟁은 독립적인 준사법기관인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를 거치게 되는데, 당사자가 조정이나 심판에 불복할 땐 소송으로 이어져 사법 기관인 사건이 행정법원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이후 고등법원, 대법원까지의 절차를 거치면 사실상 '5심제'로 운영되는 거죠.

피해 보상을 위한 민사소송은 또 별도인데요. 노동법원이 생기면 3심제로 끝낼 수 있고, 민사까지 같이 다룰 수 있어 신속한 해결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도 나옵니다.

또 노동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노동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관이 직접 사건을 맡을 경우 판결의 전문성을 높이는 효과도 있죠.

노동사건을 전담할 '노동법원' 신설 입법이 공론화되는 것에 대해선 일단 노동계는 숙원 과제 였던 만큼 환영의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법조계에서도 신속하고 효율적인 노동 분쟁해결을 도모할 수 있어 노동 법원 설치에 대한 공감대는 이미 충분히 형성돼 있는데요. 인사 적체를 해소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내심 반기는 분위기도 감지됩니다.

● 뿌리 뽑히지 않는 '임금체불'…노동법원이 대안 될까

그런데 윤 대통령이 '노동법원 설치' 화두를 꺼낸 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임금체불’과 같은 근로자들의 실질적인 권리 구제를 위해선 노동 분쟁 전문 법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컸던 겁니다.

임금체불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엄단 의지에도 올해 1분기 임금체불은 ‘사상 최대’ 였던 지난해보다도 40% 이상 늘었습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3월(1분기) 체불임금 발생액은 5,718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075억원보다 약 40%나 늘었습니다. 이대로라면 임금체불액은 올 상반기에만 1조 원을 웃돌아 연말이 되면 '역대 최대'를 기록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도 나옵니다.

매년 임금체불액이 늘며 '임금체불'이 근절되고 있지 않은 만큼 근본적인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는데요.

임금 요구는 당연한 권리지만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직원으로서 사장이나 점주에게 강하게 요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퇴사한 후 법의 힘을 빌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퇴직한 근로자가 체불 임금 지급을 요구하면 고용노동부가 사업주를 대신해 체불 임금을 지급하는, 즉 국가가 밀린 임금을 대신 주고 나중에 고용주에게 받아내는 '대지급 청구' 제도가 있지만 돈을 다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석달간 월급을 못 받았다면 최대 700만원까지, 퇴직금을 못받은 경우 퇴사전 3년까지의 퇴직금 정산을 기준으로 최대 700만원까지 받을 수 있죠.

또 지방고용관서가 사업주들에게 체불 임금 지급을 지시하거나 시정명령을 내려도 제때 지급하지 않고 잠적해버리거나, 폐업 후 배우자 등의 명의로 다시 회사를 만드는 '악덕 사업주'들도 많습니다.

이 때문에 민사소송을 제기해 체불 임금의 지급을 독촉하기도 하는데요, 시간이 오래걸릴 뿐만 아니라 승소하더라도 재산을 빼돌리는 방식에 실제 집행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임금을 체불한 사업주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는데요. 그러나 해당 사안이 법원으로 넘어갈 경우 징역형을 선고하는 경우는 전체의 20%도 되지 않습니다.

특히나 임금체불의 경우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에 근로자가 합의해준다면 사업주가 처벌 받지 않아 울며 겨자먹기로 합의해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임금체불을 일삼는 악덕사업주가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이처럼 형사로든 민사로든 고질적은 '임금체불'이 해결되지 않고 있기에 '노동 법원'이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기도 합니다.

● 다소 성급한 논의?…"정부 의지 중요"

다만 노동계 등 일각에서는 '노동법원 설치'가 임금체불에 관한 신속한 권리구제 방편으로서 성급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사실상 윤 대통령의 깜짝 발표 전까지 해당 부처의 실무 담당자들조차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고 노동계와의 사전 협의도 없었습니다.

한국노총은 노동법원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동의하면서도 "노동사건의 특수성을 반영해 노사대표가 재판에 참여하는 참심형 노동법원이 바람직하다"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는데요.

이는 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재판을 받는다'는 헌법 제27조와 충돌하면서 위헌 논란이 생길 수 있는 부분입니다.

막대한 재원 마련도 걸림돌입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1대 발의된 노동법원 설치 법안에 대한 비용을 계산한 결과, 5개 고등노동법원과 8개 지방노동법원 등 13곳 노동법원 설치를 가정했을 때 2025년부터 5년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재정은 최소 118억원에서 최대 1조1,387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오히려 노동법원을 통하면 '신속한 권리구제'가 어려울 것이란 의견도 있습니다.

중앙노동위에 따르면 지난해 노동위 판정 사건 중 3.4%만이 소송으로 이어졌다. 나머지 96.6%는 노동위에서 종결됐습니다. 실제로 소송까지 가는 사건이 많지 않았다는 얘기죠.

또 법원까지 까지 않는 노동위 절차는 노무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저렴합니다. 노동법원이 도입되면 모든 노동 분쟁 해결에 변호사를 써야 하면서 근로자들의 비용부담만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그동안도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또 새로운 국회 회기가 시작될 때마다 노동법원 설치 문제가 언급돼 왔지만 흐지부지 됐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민주당도 '노동법원'을 적극 추진하려다가 경영계 등 이해관계자들의 반대에 좌초된 선례가 있는 만큼, 노동계와의 대화가 쉽지 않은 이번 정부에서 임기 내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도 많은데요.

정부가 얼마나 강력한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지, 지켜봐야 할 대목입니다.


전민정기자 jmj@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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