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도 깜짝등장…'빚더미' 케냐, 미국이 국빈으로 모신 이유
미국이 '동아프리카의 맹주' 케냐에 공을 들이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에 각각 인프라 제공, 군사 지원을 약속하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친(親)미 성향이었던 케냐마저 중·러에 가까워지자 조 바이든 대통령은 케냐를 '비(非)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동맹국'으로 지정하고, 중국에 진 막대한 빚의 탕감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검은 대륙'에서의 영향력을 회복하겠다는 심산이다.
바이든, 임기 중 최대 규모로 케냐 환영
루토 대통령의 방미 마지막 날인 23일에는 백악관 마당인 사우스론에서 성대한 국빈 만찬이 열렸다. 정치·경제·스포츠·문화 등 각 분야 명사와 유명인 500명가량이 참석했다. 만찬장은 양국의 우호를 상징하는 미국 장미와 아프리카 난초로 장식됐고, 미국 쇠고기 갈빗살, 데친 바닷가재 등 3개 코스 요리가 준비됐다. AP통신은 이날 만찬이 바이든 대통령이 임기 중 주최한 백악관 국빈 만찬 중 최대 규모였다고 전했다.
이날 만찬엔 초청자 명단에 없었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깜짝 손님'으로 등장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케냐 출신 아버지를 두고 있어 케냐에 친밀감이 있다. 백악관은 이런 관계를 이용해 양국의 유대를 강조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실익도 많이 챙겨줬다.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미국은 케냐를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국가 중에서는 처음으로 '비나토 동맹'으로 지정했다. 이로써 케냐는 미국의 중요한 군사적 동맹국으로 인정받고, 군사 기술·훈련·장비 구매 등에서 혜택을 받게 됐다. 다만 나토 정식 회원국은 아니어서 집단방위조약 적용은 제외된다. 또 케냐 경찰청의 현대화를 위해 700만 달러(약 96억원)를 지원하고 경찰력의 훈련과 교육을 지원하기로 했다.
中 일대일로에 빚더미…반중 감정 고조
아프리카 국가들이 직면한 부채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나이로비-워싱턴 비전도 발표했다.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정책으로 대규모 빚을 진 케냐 등을 겨냥해 마련된 것으로 관측된다. 일대일로는 중국이 돈을 꿔주면 해당국이 도로·철도·항구 등을 짓고, 그 인프라 운영으로 돈을 벌어 중국에 갚는 방식이다.
케냐는 중국에 돈을 빌려 인도양 서안에 있는 몸바사항~수도 나이로비~나이바샤까지 약 600㎞ 길이인 SGR(표준궤도철도)를 건설했다. 2017~2019년에 순차적으로 개통했는데 막대한 적자운영으로 애물단지가 되면서 지난해 기준으로 중국에 약 63억 달러(약 9조원)의 빚을 지게 됐다. 이는 케냐 전체 대외 부채의 약 16%다. 결국 지난 1월부터 열차 운임을 약 50% 인상했다.
설상가상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식량과 에너지 가격까지 오르면 생활비 문제가 커졌다. 경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루토 대통령이 지난해 세금 인상을 단행하자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작년 1~9월까지 시위가 점점 격화하면서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폭력 사태가 발생해 최소 20명이 사망했다.
이처럼 사회적 갈등이 커지면서 케냐인들 사이에서 반중 감정이 생겨났다. 특히 철도 사업을 계기로 케냐에 진출한 중국 상인들이 위조품과 값싼 제품을 앞세워 케냐 상권을 위협해 경각심이 커졌다고 BBC방송은 전했다. 지난해 3월 나이로비에선 현지 시민과 상인들이 '중국 상인들을 쫓아내라', '우리는 중국의 식민지가 아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 미용기기를 수입해 판매하는 피터 시타티는 "중국 때문에 케냐의 많은 소상인이 가게를 닫을 것이고, 우리 경제는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美, 중·러 견제에 아프리카 영향력 회복 기회
다만 케냐는 여전히 중국과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루토 대통령은 지난 2022년 대선에서 반중 정서를 자극해 당선됐지만, 취임식에서 중국 특사단을 별도로 소개했다. 지난해 10월 중국 베이징 방문 때 철도 건설 마무리를 위해 10억 달러(약 1조4000억원) 차관을 추가로 요청했다. 또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해 5월 케냐를 깜짝 방문해 수만t의 비료를 기부하는 등 무역 및 경제 협력을 강화했다.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아시아-아프리카센터의 조준화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이번에 케냐를 극진히 대접하면서 이제 아프리카에 신경 쓰겠다는 것을 보여줬다"면서 "케냐는 미·중·러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가지 않고, 각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챙기면서 줄타기 외교를 하고 있는데 실제로 잘 이뤄질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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