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일했더니 하늘이 준 선물" 이랬다가 수천만원 날린 노인들
지난해 6월 이모(74)씨는 사회복지관에서 알게 된 이웃 박모(65)씨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인천 서구에 있는 한 회사에 투자하면 한 달 안에 2배로 불려준다”는 말이었다. 이혼 뒤 노후 걱정에 밤잠을 설쳤던 이씨는 박씨를 따라 직접 투자 설명회에도 참석했다. 해당 업체가 개발한 투자 앱에 소액을 넣으니, 하루 만에 수만 원이 이자로 들어왔다. 이씨는 공사장 등에서 궂은일을 마다치 않고 평생 모은 돈 7030만원과 대출금 6000만원을 합쳐 1억 3030만원을 투자금으로 이체했다.
그러나 한 달 뒤, 약속했던 이자는 들어오지 않았고 투자한 원금을 회수할 길도 막혔다. ‘사기당했다’고 깨달았을 땐 이미 업체 대표가 잠적한 뒤였다. 이씨는 4000억원대 유사수신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난 불법 다단계 업체 아도인터내셔널의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이씨는 대출이자 월 40만원을 갚지 못해 살고 있던 빌라 반지하 방을 세 주고 나와 비닐하우스에서 1년째 살고 있다. 그는 자식에게 부끄럽고 미안해 사기를 당한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다고 한다. 이씨는 “3~4년 동안 친하게 붙어 다녔던 사람의 말이어서 믿었다”며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더는 살아갈 의욕이 없어 여러 번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사기 범죄는 노후파산을 야기하기 쉽다. 피해자 대부분은 평소 신뢰하던 가까운 지인의 꾀임에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8일 경찰청에 따르면, 60대 이상을 대상으로 한 사기 범죄 건수는 지난 2021년 3만 6367건에서 2022년 4만 6046건으로 약 1.3배 늘었다.
고령의 피해자들은 속은 자신을 원망한다. 서울에 사는 윤모(76)씨도 지난해 3월 친한 친구가 소개해준 지인으로부터 “155만원만 투자하면 한 달에 20~25만원이 나온다”는 다단계 투자 정보를 들었다. 15년 차 요양보호사였던 윤씨가 건강 문제로 일을 잠시 쉬고 있던 차였다. 윤씨는 ‘평생 열심히 일했더니 하늘이 선물을 줬다’고 여겼다고 한다. 노후자금 4000만원을 건넸지만, 이자는커녕 원금도 모두 날렸다. 윤씨는 무릎이 아프지만 암 투병 중인 남편 병원비를 벌기 위해 요양보호사로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성격이 헐렁해서 문제였다”며 “사람을 잘못 보고 당했다”고 자책했다.
디지털 약자로도 분류되는 노인들을 노리는 사이버 사기 범죄도 크게 늘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사이버 사기 피해자 중 60대 이상은 2019년 대비 4배 늘어 지난해 1만1435명에 달했다. 사실상 소득절벽 상태인 노인이 사기 피해를 보고 파산하는 경우도 급증했다. 서울회생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개인 파산 신청자 가운데 60대 이상이 47.5%로 가장 많고, 이 중 주식·코인 등 투자 실패로 파산한 비율은 최근 3년 새 4.5배 늘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범죄 취약성이 큰 노인 대상 사기는 사회적 살인과 같다”며 “양형기준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사기 피해를 줄일 수 없고 예방 교육 등 미연에 방지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돈을 투자하기 전에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등 최소 3명에게 물어보고 행동에 옮기기를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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