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 목사의 고백록] 임종 감독의 참회록

2024. 6. 8.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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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滿)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시인 윤동주가 쓴 참회록이다. 만 24세를 갓 넘긴 나이에 무어 그리 참회할 일이 있었을까. 나는 그보다 세 배 가까이 내다보는 길목에 섰다. 그러면서도 참회할 것 없이 살았다니…. 불쑥 염치(廉恥)없는 놈이란 생각에 몸서리쳤다. 심장을 베일 만큼 괴로워한다는 ‘참괴(慙愧)’는 아니라도 ‘수치(羞恥)’는 있어야 하겠다는 심정으로 펜을 들었다.

임종 감독으로 살아온 나의 유언을 담아낸 참회록이다. 하나, 죽었다고 바로 알리지 마라. 적어도 10시간은 지나서 알려라. 나도 ‘숨 좀 쉬자.’

아인슈타인은 “내가 죽은 후 8시간은 푹 쉬고 싶으니 그 후에 내 죽음을 알리라”고 했단다. 평생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휴식을 몰랐던 사람의 마지막 갈망이었다.

둘, 조의금은 꼭 받아라. 하지만 카톡으로 아무에게나 날리지는 말아라. 나도 힘들었다. ‘마음 표현할 곳(000-1234-0)’이라 쓰고 ‘돈 바칠 곳’이라 읽게 만들지 말아라. 나는 문해력이 부족해서 많이 헷갈렸다.

셋, 죽은 내 모습을 공개해라. 유리관(RESTel)이면 좋겠다. ‘대통령의 장례’를 맞이하고 싶다. 늘 밑바닥을 헤맸던 나지만 죽음에서만은 정상에 오르고 싶다. 나는 사람이었지 가축은 아니었으니 내 시신을 ‘시신 창고’에 처박아 두지는 말아다오. 대면장례가 답이다.

넷, 장례식장에서 내 흉을 보아서라도 세 번은 웃게 해라. 남기고 갈 것은 ‘웃음’이어서다. 그리스 트라우소이족은 자식이 태어나면 탄식하며 슬퍼했다. 세상의 수많은 고난을 염려해서다. 반면, 사람이 죽으면 웃고 즐거워하며 땅에 묻었다. 마침내 불행에서 벗어나 지복(至福)의 경지에 이르러서다.

다섯, 화장해라. 순교자들은 다 화형당하지 않았나. 죽음이나마 나도 ‘순교자’로 살고 싶다. 콘스탄츠공의회는 종교개혁가 얀 후스와 존 위클리프에게 이단의 누명을 씌운다. 화형하고 부관참시한다. 청교도혁명의 올리버 크롬웰은 무덤이 파헤쳐진 뒤 목이 잘렸다. 왕을 살해했다는 죄목이었다. 뮌처 크랜머 후퍼도 화형당한다. 틴들은 목 졸린 후 화형에 처해진다.

여섯, 나의 옷가지 등 소지품은 ‘새활용품’으로 널리 나누어 주어라. 장기 기증 대신이다. 내 부실한 몸을 누구에게 떠넘기고 싶지는 않다. 대신 옷가지나 사용하던 물건들을 ‘아바나다(아껴쓰고 바꿔쓰고 나눠쓰고 다시쓰고)’로 처리해 주면 좋겠다. 한국 땅의 나그네들로 살아가는 다문화가족들에게 신경 써라.

일곱, 장례식에 다녀간 분들에게 전해라. ‘오래 기다리지 않게 서둘러 오라’ 했다고. ‘호모 헌드레드(100세 인간)’, 너무 길지 않나. 여행은 짧을수록 좋다. 지구별 소풍을 연장해 보겠다고 설치지 마라. 남는 것은 빚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꼭 작성하고 살아야 한다.

윤동주는 분명 ‘한 줄’의 참회를 이야기했다. 야곱이 그랬다. 나이를 묻는 바로 왕에게 말한다. “제가 ‘나그네’처럼 세상을 살아온 세월이 130년입니다.” 이어 묻지도 않았던 일에 답한다. “(적어도) 제 조상이 받아 누린 세월에는 못 미치지만 ‘험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를 신학에서는 구원 서사라 한다. 구원 서사의 엔진이 참회다. 한 줄의 참회로 끄트‘머리’에 섰던 야곱!

그런데 나는 왜 이리 사족을 덧붙여야 하나. 웃픈 참회록을 붙들고 다시 윤동주의 시로 돌아선다.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젊지 않은 내가 젊은 나를 꾸짖는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라’고.

송길원 하이패밀리 대표·동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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