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 주취자… 몸 사리는 소방-경찰
경찰, 위급한 상황 벌어질까 우려
귀가시켰다가 집앞서 숨지기도
소방은 폭행 등 난폭행위에 곤혹
지난달 22일 오후 10시쯤 서울 광진구의 한 파출소 앞. 경찰관 4명과 구급대원 3명이 이동침대에 누워 있는 주취자 A씨를 앞에 두고 고성과 삿대질을 해가며 다투고 있었다. 만취한 A씨를 누가 챙길지를 두고 경찰과 소방 관계자가 언쟁을 벌인 것이다.
1시간 전인 오후 9시쯤 소방서로 광진구 길거리에 20대 남성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소방 측은 출동하면서 경찰에 공동대응을 요청했다. 구급대원은 A씨를 단순 주취자로 보고 병원 이송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A씨는 파출소로 이송됐지만 파출소에선 A씨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구급대원은 A씨에 대해 “병원에 갈 정도의 응급환자는 아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경찰은 “뇌졸중이 있거나 파출소에서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면 어떡할 거냐”고 반박했다. 그렇게 구급차 뒷문을 연 채 20분간 대치하던 이들은 결국 A씨를 데리고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A씨는 첫 신고 이후 약 2시간 뒤인 오후 11시쯤에야 병원에서 보호자에게 인계됐다. 구급대원은 A씨를 경찰에 인계하고 현장에서 철수하려 했지만 2시간가량 파출소와 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경찰 또한 구급대원의 요구로 경찰관 2명이 상황 종료 시까지 병원에 머물러야 했다. 경찰과 소방 양측이 다투지만 않았어도 시간과 인력 낭비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처럼 경찰과 소방이 술 취한 사람을 서로 떠넘기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두 기관 모두 주취자 신고에 대한 행동요령이나 매뉴얼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응급환자를 판단하는 해석이 서로 달라 번번이 책임 공방을 벌이는 것이다. 양 기관은 주취자 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대응하는 업무협약까지 맺었으나 현장에선 여전히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A씨의 이송을 두고 소방과 경찰 모두 매뉴얼에 따라 행동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소방 관계자는 출동 당시 ‘119구급대원 현장 응급처치 표준지침’에 따라 맥박과 혈압 등 활력 징후를 검사해 주취자를 비응급환자로 분류했다고 전했다. 이어 단순 주취자는 병원 이송을 거절할 수 있다는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주취자를 경찰에 인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경찰은 주취자가 파출소에 도착했을 때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의식 상태였다고 주장한다. ‘경찰청 주취자 보호조치 업무 매뉴얼’은 만취자가 발생하면 구급대에 협조를 요청해 보건의료기관으로 이송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매뉴얼에 따라 소방 측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
주취자 처리 문제로 경찰과 소방이 갈등하는 건 처음이 아니다. 2021년 12월 서울 양천구 한 식당에서도 주취자를 놓고 경찰과 소방이 1시간 넘게 대치했다. 이들의 갈등은 급기야 온라인으로 번졌다. 지난해 5월 한 경찰은 익명 커뮤니티에 소방 측을 비난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주취자 신고를 받아 경찰에 공동대응을 요청하고도 본인들은 출동조차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이렇듯 양측이 주취자 보호 임무를 서로 떠넘기는 건 주취자를 맡을 경우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찰은 의료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언제든 응급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2022년 11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울 강북경찰서 경찰관이 주취자를 집 앞 계단에 앉히고 돌아갔다가 주취자가 야외 계단에서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서울엔 한파경보가 발령된 상태였다. 경찰관 2명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1월 경남 창원에서는 지구대에서 보호조치 중이던 주취자가 유리창에 머리를 찧어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그해 8월 경기 오산에서는 경찰의 보호조치를 받던 주취자가 귀가 중 도로 한복판에 누워 있다가 고속버스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반면 소방은 주취자의 난폭 행위를 우려한다. 지난 10일 충남 논산에서 만취 상태인 남성이 자신을 처치해주던 소방대원의 머리를 가격하는 일이 있었다. 폭행을 당한 소방대원은 뇌진탕 진단을 받았다. 지난 5월 제주에선 한 주취자가 현장에서 얼굴 상처를 치료해주던 구급대원의 얼굴을 때리는 사건도 일어났다.
실제로 주취자가 구급대원을 폭행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지난 4월 소방청이 발표한 ‘구급대원 폭행 현황’에 따르면 최근 8년간 구급활동 중 폭행 건수가 1713건에 달했다. 이 중 87.4%가 주취자에 의한 폭력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경찰과 소방 모두 주취자 대응을 꺼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앞서 경찰과 소방은 지난해 5월 두 기관 중 한 곳에 주취자 신고가 들어오면 상호 현장 출동하는 원칙에 합의했다. 같은 해 10월 행정안전부는 경찰과 소방이 공동대응해야 하는 경우 출동대원에게 상대 기관의 출동 차량명 등 정보를 문자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혼란이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경찰과 소방이 단순 업무협약을 맺는 데 그치지 말고 세부 조율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주취자 관련 경찰과 소방 간 현장 충돌 사례를 자세히 살핀 후 두 기관이 모두 수긍할 수 있는 통합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원준 기자 1j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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