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에 반기든 위험한 우향우
경제 불황·관대한 이민정책 불신… 진보에 불만
보호무역·강경한 이민정책 어필
극우·중도우파 다수당 지위 관측
독일 동부 지역에 거주하는 인쇄소 견습생 에릭 리베구트(18)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열렬한 지지자다. “기성 정당들은 다 똑같아요. 구호는 그럴싸하고 장밋빛 미래를 그리지만 암울한 현재를 해결해줄 능력은 없어요. 이제는 우리 정당이 정답입니다. 조국이 바로 미래!” 리베구트의 마지막 말은 AfD가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 내민 공식 구호다. 리베구트 같은 청년층은 독일뿐 아니라 이웃 국가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에서도 많이 눈에 띈다. 남쪽의 스페인, 북쪽의 스웨덴, 중앙의 오스트리아, 동쪽의 헝가리까지 유럽 전역에서 젊은층의 우경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유럽의 정치 분석가들은 6일(현지시간) 시작돼 9일까지 실시되는 유럽의회 선거의 최대 관전 포인트로 ‘극우 돌풍’을 지목했다. 2014년, 2019년 선거에서 꾸준히 지지 기반을 넓혀온 극우 세력이 이번 선거에선 ‘변방’에서 ‘주류’로 격상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27일 발표된 유럽 일렉트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 유럽의회 제1당인 중도우파 성향의 유럽국민당(EPP)은 이번 선거에서 21.3%로 전체 의석(720석) 중 180석을 확보해 다수당 지위를 지킬 것으로 예측됐다. 중도좌파 사회당(S&D)은 제2당 자리는 지키되 의석수는 현재 140석에서 138석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EPP, S&D와 함께 주류 정치 그룹으로 분류되는 중도 리뉴유럽은 102석에서 86석으로 쪼그라들 것으로 예상된다.
강경 우파와 극우는 선전할 것으로 예견됐다. 이탈리아에선 유럽의회 내 강경 우파 그룹 ‘유럽 보수와 개혁(ECR)’의 일원인 이탈리아형제들(Fdl)의 압승이 예상되고 프랑스에선 국민연합(RN), 네덜란드에선 자유당(PVV)이 선전 중이다. RN과 PVV는 유럽의회에서 ECR보다 더 극우로 평가되는 ‘정체성과 민주주의(ID)’ 소속이다. 전체적으로 ECR 의석수는 현 68석에서 75석으로, ID는 59석에서 68석으로 늘어날 것으로 관측됐다. 다른 여론조사에선 두 정치 그룹이 각각 80~90석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소속 의원의 ‘나치 친위대 옹호’ 발언으로 ID에서 퇴출당한 AfD는 16석, 정치 그룹에 속하지 않은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피데스’는 11석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라면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차기 유럽의회 의석수는 전체의 4분의 1로, 제2당인 S&D와 맞먹게 된다. 향후 유럽연합(EU) 회원국 전체에 적용되는 법안 처리 과정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는 셈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유럽 전역의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이 젊은 세대를 사로잡고 있다는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 RN, AfD, PVV, 스페인 복스당 등 서유럽 선진국의 극우 정당들이 경제 불안과 이민자 대거 유입으로 불안에 떠는 젊은이들 사이에 파고들며 지지세를 광범위하게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FT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18~24세 프랑스 청년층의 36%가 RN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RN은 지난 프랑스 대선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 이어 2위를 차지한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다. 독일 젊은층의 AfD 지지율은 22%, 네덜란드 청년층의 PVV 지지율은 33%로 조사됐다. PVV는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원내 제1당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스페인에서 오래 집권해온 사회당 등 진보정당을 ‘진보 독재’로, 지구 온난화 등 기후변화 우려를 ‘기후 광신론’으로 규정하는 복스당은 극단적 자국 우선주의와 스페인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원내 제3당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젊은층이 진보좌파가 아닌 보수우파, 극우 포퓰리즘에 경도되는 가장 큰 원인은 전 유럽을 횡행하는 경제 불황과 지나치게 관대했던 이민정책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결같이 자유무역보다는 보호무역, 지금보다 더 강경한 이민정책을 내세우는 우파 세력이 ‘이민자 수용의 고통 감내’ ‘환경 보호’ ‘글로벌리즘’ 등을 옹호하는 좌파 세력보다 훨씬 더 즉각적이고 효과적으로 젊은층에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포르투갈·스웨덴 총선 등 유럽 각국 선거에서도 이민자 유입, 일자리 부족, 주택가격 상승 등의 이슈가 젊은 유권자층을 움직여 우파 정당 지지율을 급등시켰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달 28일 여론조사업체 유로바로미터의 자료를 근거로 15~24세 유럽 청년층에서 ‘이민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답한 비율이 2019년 32%에서 지난해 35%로 증가했고, 25세~34세 유권자층은 38%에서 42%로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젊은층이 유럽에서의 극우 약진에 결정적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 이 같은 경향은 더 짙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진보좌파가 지난 10여년간 ‘성장보다는 친환경’ ‘현재보다는 먼 훗날의 지구’ 같은 비현실적 어젠다를 택하는 사이 유럽 극우 세력은 실업과 실질임금 하락에 허덕이는 젊은층을 야금야금 파고들어 이젠 주류 핵심에 근접하게 됐다는 것이다. 진보좌파가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하지 못하자 극우 세력이 ‘과거의 영광을 돌려주겠다”는 말 한마디로 젊은층을 끌어당겼다는 진단이다. 하지만 이 같은 극우 약진은 퇴행적이어서 유럽의 미래에 엄청난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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