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코어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스타일리시하며 일상에서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웨어를 꼽으라고 하면 에디터는 망설임 없이 테니스 웨어를 선택할 거다. 그래서인지 패션 디자이너들도 이 어여쁘 룩을 디자인에 즐겨 이용해왔다. 그렇게 우리는 코트에 서지 않더라도 이 매력적인 룩을 일상에서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오늘날 셀린느와 같은 럭셔리 메종들까지 테니스 라인을 론칭할 정도로 테니스 룩은 패션계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화이트가 귀족을 상징하는 컬러였고, 테니스가 귀족의 전유물임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윔블던의 엄격한 의복 규정에 항의하는 진보적인 선수들도 더러 있었다. 1985년 앤 화이트는 몸에 밀착되는 라텍스 소재의 편안한 전신 보디슈트를 입고 경기에 나섰지만 다음 날 윔블던 측의 권고로 그들이 원하는 얌전한(?) 유니폼으로 갈아입어야 했고, 코트의 패션모델로 불린 안드레 애거시는 1988년부터 1990년까지 대회 출전을 포기하며 보이콧을 선언했다. 2014년 나오미 브로디는 차라리 속옷을 안 입겠다며 노브라로 출전하기도. 테니스 황제 세레나 윌리엄스는 2010년과 2012년 윔블던 대회에서 핫 핑크와 퍼플 컬러의 속바지를 입었는데, 이게 발단이 돼 앞서 말한 속옷 컬러 규정이 생긴 것이다. 이처럼 테니스 룩의 역사는 여성 선수들의 인권과 그 궤도를 함께한다.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여성 테니스 선수들은 긴소매 상의와 치마를 입고 코트 위에 섰다. 19세기엔 신발까지 덮는 긴 길이의 코르셋 드레스를 입어야 했다. 이후 점차 스커트 길이가 짧아지고 상의도 간소화됐고 1920년대에 들어 비로소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여성 테니스 룩의 형태가 처음 등장했다(물론 이 시대에 패션 선구자 가브리엘 샤넬은 팬츠를 입고 테니스를 즐겼다!). 프랑스의 테니스 선수 수잔 렝글렌은 슬리브리스 블라우스와 미디 길이의 플리츠스커트를 입고 윔블던에 처음 출전했다. 장 파투가 디자인한 이 룩은 곧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당대 최고의 테니스 선수였던 수잔 렝글렌의 스타일은 곧 모든 여성 테니스 선수의 스타일을 재정의하기에 이르렀다. 긴 시간이 흘러 1940년대에 이르러 여성 선수들은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짧은 치마와 쇼츠를 입기 시작했는데, 물론 세상이 이 짧은 스커트를 허용했던 것은 아니다.
1949년 미국 테니스 선수 거시 모란은 윔블던 대회에서 짧은 치마와 영국 디자이너 테드 틴링이 디자인한 레이스 장식의 속바지를 착용했는데, 이 룩은 당시 영국 의회에서 논의될 정도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1950년대엔 카디건에 타이트한 허리의 상의, 플리츠스커트를 매치한 룩이 유행했고(오드리 헵번과 같은 당시 여배우들의 테니스 룩을 보라!), 1960~1970년대에 들어서야 테니스 룩이 보다 다채롭게 진화했다. 모즈 룩과 디스코의 열풍으로 스트라이프·깅엄·그래픽 패턴이 프린트된 테니스 룩이 등장했고, 보다 선명한 채도의 컬러가 사용됐다. 이때부터 일상복처럼 보이는 디자인이 대거 등장했고, 우리가 오늘날 레트로 감성의 테니스 룩이라 생각하는 스타일이 생겨났다. 1980년대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가볍고 통기성 좋은 기능성 소재가 적용되기 시작했고, 윔블던을 제외한 대회에서 주로 밝은 네온 컬러와 파스텔 톤의 유니폼을 선수들이 착용했다. 2000년대 이후 여타 다른 스포츠웨어에서 볼 수 있는, 폴리에스테르와 나일론 같은 땀 흡수력과 내구성이 좋은 소재로 만들어진 스포츠웨어 스타일과 스트리트 룩의 영향을 받는 등 다양한 테니스 룩이 선보여지며 오늘에 이른다.
그렇다면 테니스 룩의 역사에 획을 그은 패션 아이콘들은 누가 있을까? 앞서 언급한, 현대적인 여성 테니스 룩을 최초로 선보인 수잔 렝글렌, 폴로셔츠를 테니스 웨어로 처음 입기 시작한 르네 라코스테, ‘테니스 브레이슬릿’이란 단어를 탄생시킨 크리스 에버트, 클래식 애슬레저 룩의 아이콘 다이애나 비 그리고 이 시대 최고의 테니스 선수 세레나 윌리엄스가 있다. 특히 세레나 윌리엄스는 건강 문제 때문이긴 했지만 금기를 깨고 경기 중 블랙 컬러의 캣 슈트를 착용하거나 트렌치코트 형태의 유니폼을 입는 등 진보적인 테니스 룩을 선보여왔다. 하이패션 신에서 인상적인 테니스 코드를 선보인 디자이너는 누가 있을까? 2010 S/S 시즌, 에르메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장 폴 고티에는 런웨이를 테니스 코트로 변신시켰다. 테니스 웨어의 모든 카테고리를 디자인에 응용했다 할 수 있을 만큼 다채로운 하이엔드 테니스 룩이 런웨이에 쏟아져 나온 것. 알렉산더 왕은 2015 S/S 시즌 스포티즘을 하이엔드 스타일과 믹스한 룩으로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는데, 그중 테니스 드레스가 큰 주목을 받았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2022 S/S 컬렉션에서 1960년대풍의 니트 소재 화이트 테니스 드레스에 진주 귀고리와 니하이 부츠를 매치한 우아한 테니스 룩을 소개했고, 2022 F/W 시즌 미우치아 프라다는 자신이 즐겨 디자인한 폴로셔츠를 메인으로 동시대 여자들이 환호할 만한 매력적인 테니스 룩을 선보였다. 그렇다면 테니스 룩을 상징하는 브랜드들은? 테니스 스타 라코스테가 자신의 이름을 따 1933년 설립한 라코스테, 또 다른 테니스 스타인 영국의 프레드 페리가 1952년 만든 동명의 브랜드, 그리고 폴로셔츠를 상징하는 또 다른 브랜드 폴로 랄프 로렌이 대표적이다. 특히 폴로 랄프 로렌은 오늘날 전 세계 4대 테니스 대회 중 3개 대회의 공식 의상을 후원하고 있기도. 최근엔 원마일 웨어의 부흥 속에 테니스 코드의 의상을 선보여 전 세계 패션 피플들의 사랑을 받으며 테니스 룩 열풍에 불을 지핀 스포티앤리치와 카사블랑카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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