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루프의 만화경에 포착된 집의 표면
첫 시작은 친구의 카메라였다. 1974년 16세가 되던 해, 토마스 루프(Thomas Ruff, 1958)는 친구의 35mm 필름카메라로 함께 사진을 찍었고, 문득 자신의 카메라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실내를 그린 회화’라는 뜻의 인테리외르(Interieur, 1979~1983)는 그로부터 5년 후에 제작된 토마스 루프의 첫 번째 사진 시리즈다. 루프는 당시 그가 지내던 뒤셀도르프의 아파트와 독일 남서부의 검은 숲(Black Forest)에 있는 부모님의 집, 고향 친구와 친인척의 방 풍경을 기록했다. 그의 세대가 나고 자란 집 안 환경을 세밀하고 실제에 가깝게 그리고 친밀하게. 이 시리즈는 20세기 중후반, 독일 소시민 가정의 전형적인 인테리어 양식을 보여준다. 사진 속 가구와 소품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위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독일의 황금기(1950~1960)에 생산된 제품으로 유려한 동시에 소박하고 기하학적이면서 따뜻한 손길이 느껴진다. 루프는 촬영할 때 대상에 개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가구 배치와 자연광을 따랐다. 방 안 분위기와 에센스가 드러나는 방향으로 사진 프레임을 조정했다. 따라서 ‘인테리외르’는 객관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이면서도 작가의 주관적 관점을 넌지시 드러낸다. ‘인테리외르’는 대형 카메라로 촬영됐다. 루프는 필름을 확대 · 인화하지 않고도 실제에 가까운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1970년대 말 독일에서 컬러 사진은 예술보다 광고나 저널리즘 분야에 한정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루프는 학교가 아닌 상업적인 암실에서 이 사진 시리즈를 컬러로 인화했다. 흑백이 아닌 천연색의 ‘인테리외르’ 시리즈를 바라보고 있자면 먼 과거가 시차를 넘어 눈앞에 당도해 있는 것 같다. 1983년 들어 대부분의 가정 환경이 유행에 맞게 현대화되자 루프는 이 시리즈를 중단했다. 이제 ‘Interieur’는 한 시대의 단면이자 누군가의 추억이 됐다.
장예란(PKM갤러리 전시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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