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록도 찜했다…‘클린 에너지 리테일러’ 꿈 [천억클럽]
전 세계 기후 위기로 신재생에너지 시대가 도래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기존 전력원과 비교해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 생산성이 보장되지 않다 보니 국내 기업들은 선뜻 이 시장에 뛰어들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런 틈새를 파고들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으로부터 수천억원을 유치한 스타트업이 있다. 태양광 발전 전문기업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BEP)다.
LG이노텍과 REC 매매계약 눈길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는 태양광 발전소를 직접 개발, 인수해 운영하는 민간발전회사(IPP)다. 올 4월 기준 전국 300여곳 태양광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한국전력에 판매한다. 이를 통해 얻은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기업에 판매해 수익을 얻는 구조다.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를 창업한 김희성 대표는 전 세계 재생에너지 시장이 커지지만 국내에 대형 태양광 발전 사업자가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에서는 대형 태양광 IPP가 넘쳐나는데, 우리나라는 개인들이 영세한 규모로 태양광 사업을 하는 독특한 시장 구조다. 김희성 대표는 “국내 태양광 발전소를 모두 동원해도 삼성전자 한 곳이 연간 구매해야 하는 양조차 충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영세사업자가 난립한 상황에서 투자, 개발, 시공, 관리 등 전문성을 갖춘 플레이어가 필요한 만큼 태양광 시장 판을 바꿔보고 싶었다”고 포부를 밝힌다.
김 대표는 한화자산운용, 현대차증권, 미래에셋증권을 거쳐 한화그룹 태양광 모듈 업체인 한화큐셀 전략금융팀장을 역임한 에너지, 자본 시장 전문가다. 글로벌 태양광 시장 성공 스토리를 눈여겨본 후 2020년 회사를 설립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 태양광 시장에서 발전 사업을 운영해온 전문가를 대거 영입했다.
업력이 길지 않지만 성과도 속속 내는 중이다. 최근 LG이노텍과 84.7㎿ 규모의 REC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재생에너지 시장에서 단일 REC 계약 발전용량 기준 최대 규모다. LG이노텍은 이번 REC 매매계약으로 연간 100GWh 재생에너지를 조달할 계획이다. 4인 가구 기준(월평균 전력소비량 약 350㎾h)으로 2만3809가구가 1년 내내 사용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전력량이다.
REC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량 인증서다. 이를 구매하면 온실가스 배출 감축 실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는 지난해에도 LG화학과 REC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대기업뿐 아니라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다국적 IT 기업으로부터도 러브콜이 쏟아진다.
여세를 몰아 인허가가 완료된 태양광 발전 사업이나 현재 운영 중인 태양광 발전소를 시장 최고가 조건으로 매입하는 중이다. 고금리로 상당수 태양광 사업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이른바 태양광 사업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겠다는 속내다. 업계 관계자는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는 과감한 베팅으로 전국 태양광 자산을 쓸어 담으면서 덩치를 키우고 있다. ‘규모의 경제’ 효과를 노리기 위한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REC 계약을 잇따라 따내며 ‘성장성 높은 사업 모델’로 인정받자 글로벌 투자자들도 이를 눈여겨봤다. 블랙록은 2021년 1300억원에 이어 2022년에도 1700억원을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에 투자했다. BNK벤처투자, 브리즈인베스트먼트 등 주요 벤처캐피털까지 합하면 3300억원 넘는 투자를 유치했다.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가 단기간에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것은 글로벌 재생에너지 흐름을 눈여겨보고 다른 기업이 뛰어들지 않은 틈새시장을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찰리 리드 블랙록 아시아태평양 기후인프라 공동대표는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의 전문성에 블랙록의 자본력이 더해져 한국 태양광 투자에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향후 블랙록 고객 자금이 지속 투자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워터’ 브랜드로 급속 충전기 보급 속도
태양광 사업 실력을 인정받은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는 사업 다각화에도 나섰다. 2022년 11월 전기차 급속 충전 브랜드 ‘워터’를 선보이고 전기차 충전 인프라 사업에 전격 뛰어들었다.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의 전기차 충전 사업은 경쟁사들과 조금 다르다. 급속 충전에 집중하면서 충전 뒤 정차한 방향 그대로 빠져나가는 ‘드라이브 스루’ 방식을 적용했다. 최근 선보인 ‘오토차지’ 서비스는 충전 시간을 더 줄인다. 최초 1회 충전을 했다면 다음부터는 복잡한 준비 과정 없이 커넥터만 연결하면 바로 충전을 시작할 수 있다. 충전이 끝나면 모바일 앱에 등록된 카드로 곧장 결제가 진행된다. 일반 전기차 운전자는 물론이고 충전이 잦은 화물 전기차 운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중이다.
최근에는 쟁쟁한 대기업들을 제치고 경기도 고양특례시와 전기차 충전시설 구축·운영 협약을 체결했다. 올해 전국 지자체 급속 충전시설 구축 공모 중 최대 규모 사업이다. 고양시 도심 곳곳에 200㎾ 급속 충전기 58기, 100㎾ 급속 충전기 56기를 설치할 예정이다. 이를 비롯해 내년 말까지 급속 충전소 100곳, 급속 충전기 400기로 늘려 태양광 발전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구상이다. 김희성 대표는 “태양광 발전소와 전기차 충전 사업을 연계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한전을 통하지 않고 민간 전기 판매가 가능한 시장이 열리면, 태양광에너지를 생산한 후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저장, 전기차 충전소에서 판매할 계획”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통해 신재생에너지 기반의 ‘클린 에너지 리테일러’로 도약하는 것이 김희성 대표의 꿈이다.
태양광 규제 풀어야 재생에너지 시장 커져
A. 국내 태양광 시장은 사실상 중소업체가 견인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양광 신규 설치 실적만 봐도 대기업 비중은 5%에 불과하고 나머지 95%는 중소업체나 개인사업자 몫이다. 대기업이 개인과 협상해 태양광 발전소를 장기 운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탄탄한 역량을 갖춘 플레이어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런 점에서 국내 최초로 ‘중소 태양광 기업형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Q. 태양광 사업 관련 규제가 만만찮은데.
A. 태양광 사업을 해보니 가장 시급한 것은 이격거리 규제 완화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만 있는 규제다. 우리나라 국토 전역에 도로가 거미줄처럼 포진된 걸 감안하면 도로 주변에 짧게는 200m, 길게는 1㎞까지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설 수 없다. 결과적으로 보면 엄청난 규모의 국토를 태양광 발전 용도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의미인데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
국민연금, 교직원공제회 등 대형 연기금이 재생에너지 기업에 거의 투자하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운 단면이다. 세계 각국 연기금은 재생에너지 기업 투자를 계속 늘리는데 우리는 정반대로 가는 양상이다. 대형 연기금 자금이 들어와줘야 국내 재생에너지 사업이 더욱 성장할 수 있다.
Q. 향후 목표는.
A. 우리가 보유한 태양광 발전소 규모는 평균 1~3㎿ 수준이다.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만큼 200㎿급 이상 대형 발전소를 늘려 향후 3년 내 1GW 규모 태양광 발전소를 보유하는 것이 목표다. 1GW 발전용량은 원자력 발전소 1~2기 정도에 해당하는 용량이다.
국내 기업들이 미국, 유럽 등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탄소 감축을 이끌어내려면 REC 거래가 훨씬 더 많아지고 시장도 더 커져야 한다. 하지만 기업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 수급 불균형이 심각하다. 국내에 설치된 태양광, 풍력 발전원의 전력을 모두 공급해도 대기업 수요를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기차 충전 시장에도 진출한 만큼 재생에너지 생산뿐 아니라 재생에너지 전력의 저장, 판매를 아우르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2호 (2024.06.05~2024.06.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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