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사도광산 등재 시도에…한국 "강제징용 안 담으면 합의 막겠다"

박현주 2024. 6. 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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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말 일본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최종 결정을 앞두고 정부가 "조선인 강제 노역을 포함한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full history)'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면 등재를 위한 컨센서스(전원 합의)를 막아설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 자문 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가 일본에 "전체 역사를 알리라"고 권고한 상황에서 한·일 간 치열한 막판 외교전이 예상된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선광장(캐낸 광석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장소). 연합뉴스.


"투표까지 갈 수도…日 하기 달려"


외교부 당국자는 7일 기자들과 만나 일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 시도와 관련해 "우리 입장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끝까지 컨센서스를 막고 투표로 갈 것"이라며 "투표까지 가는 상황은 최대한 피하면서 한·일 합의를 이루려는 것이 양국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일본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도 말했다. 정부는 사도광산에서 조선인 강제노역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일제강점기를 포함한 전체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음달 21∼23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WHC) 회의에서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WHC 위원국 3분의 2의 찬성이 있을 경우 사도광산의 등재가 최종 결정된다.

통상 세계유산 등재는 표결 대신 컨센서스로 결정되는 게 관례다. 그런데 한국이 막아설 경우 "장시간 힘든 협상을 계속하고 굉장히 상황이 어려워진다"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일본이 전체 역사 반영을 거부하고 한국이 등재 반대에 나서 결국 투표에 부치는 상황 자체가 양국 관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日, '보류' 권고에도 등재 낙관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 등재에 이코모스가 '보류'(Refer, 일본은 '정보 조회'로 번역) 권고를 한 것에 대해 추가 자료를 보완할 경우 최종 등재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코모스의 권고안은 등재(Inscribe), 보류, 반려(Defer), 등재불가(Not Inscribe) 등 4가지로 분류되는데, 실제로 지난해 보류 권고를 받았던 8건 모두 최종 등재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위원국들도 자국에 등재를 희망하는 유산이 많다보니 상당히 후하게 등재를 결정시켜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사도광산을 대표하는 아이카와 금은산에서 메이지시대 이후 건설된 갱도. 연합뉴스.


"전체 역사 알리라" 또 권고


그러나 주목되는 건 이코모스가 '보류'를 결정하면서 부대 권고를 통해 "모든 시기를 통한 전체 역사를 현장에서 포괄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시설을 갖출 것을 권고한다"고 했다는 점이다. 관련국인 한국의 입장을 반영한 대목이다.

2015년 일본이 하시마(端島) 탄광(일명 군함도) 등의 근대산업시설을 등재 시도했을 때도 이코모스는 '등재'를 권고하면서도 “전체 역사를 알게 하라”는 부대 권고를 달았다. 그런데 이번엔 당시보다 이코모스의 권고 등급이 한 단계 후퇴했을 뿐 아니라 '전체 역사를 알리라'는 부대 권고가 또 나왔다는 점에서 한국 측에 협상의 레버리지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015년 하시마 탄광 등재 당시 일본은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많은 한국인 등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against their will)' 동원돼 가혹한 환경하에서 '강제로 노동한(forced to work)' 사실이 있음을 인식한다"며 "해당 시설에 정보센터 등을 세워 희생자들을 기리겠다"고 약속했다.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점기 한국인 강제징용이 있었다고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건 사실상 처음이었다. 컨센서스로 등재가 결정되긴 했지만 '한국이 외교적으로 승리했다'는 평가까지 나왔던 이유다.
일본 사도광산 갱도 유적 내부에는 에도(江戶)시대 광산 노동자들의 모습이 마네킹으로 재현돼 있다. 이영희 특파원.


약속 안 지켰던 日…韓 "이번엔 달라야"


하지만 일본은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군함도가 있는 나가사키가 아니라 도쿄에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설치했다. 또한 강제징용 관련 역사를 왜곡하는 내용을 버젓이 전시했다. 이에 WHC는 2021년 7월 일본의 후속 조치 미이행에 대해 이례적으로 '강한 유감(strongly regret)'을 표명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다른 회원국도 일본의 (약속) 불이행 문제를 인식하고 있으며 그런 전력이 있으니 이번에는 우리도 일본을 막연히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며 "일본이 제대로 이행할 방안을 찾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밖에서 요란해 보이지 않더라도 물밑에선 2015년과 같은 문제 의식을 갖고 치열하게 협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개선된 한·일 관계를 감안해 갈등을 표면화 하진 않지만, 전방위로 여타 회원국을 접촉하며 외교전을 펼치고 있단 설명이다.

그러나 2015년 군함도 등재 당시 강제징용 사실을 인정한 것을 두고 '외교적 패착'이라고 인식하는 일본이 이번 사도광산 등재에선 쉽게 뜻을 굽히지 않을 거란 지적도 있다. 2015년에도 등재 결정 직전까지 한·일 대표단이 최종 결정이 하루 미뤄질 만큼 치열한 협상을 진행했다. 당시 한국 측 공동수석대표는 조태열 외교부 장관(당시 2차관)이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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