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였던 번역 공부를 그만 뒀다 #여자읽는여자

라효진 2024. 6. 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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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세계를 완벽히 연결하는 일, 내게 가능할까?

안식년을 결심하고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번역 학원에 등록하는 것이었다. 번아웃 때문에 안식년을 결심한 사람이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의문이지만, 번역 공부는 나의 오랜 버킷리스트였다. 왜 다들 그런 꿈 하나쯤 있지 않은가. 관짝 들어가기 전까지 ‘아, 그거 했어야 했는데'라고 되뇌일 듯한 부채의식처럼 남아있는 꿈. 내게는 그것이 ‘번역 공부해야 하는데'였다. 자매품으로는 ‘대학원 가야 하는데'가 있다.

영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두 개의 세계가 비로소 나란히 연결되는 느낌이 좋았다. 뿌옇던 세계가 선명하고 정갈해지는 느낌을 동경했다. 한편으로는 오만한 마음도 있었다. 번역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번역에서는 한국어 실력이 더 중요하다고. 나는 10년 넘게 한국어로 글 쓰고 편집하는 일을 해왔으니 이미 어느 정도 자격을 갖춘 게 아닐까. 번역은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진입할 수 있을 것 같은 세계였다.

착각이 깨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0여 년 전 기자 시험 준비를 했던 곳과 같은 학원 건물에서 3개월 동안 번역 수업을 들었다. 매주 토요일 수업을 위해 일주일 내내 과제와 씨름했다. 그렇게 제출한 과제에는 빨간펜 피드백이 빽빽이 달렸다. 내가 했던 번역이 ‘좋지 않은 번역'의 사례로 지적될 때면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한때 이 세계를 만만하게 생각했던 과거의 내가 우습고 민망했다. 20년 경력 번역가인 강사는 말했다. 버티기만 한다면 실력은 오르겠지만 버티는 시간이 쉽지 않아서 많은 사람이 번역을 포기한다고. 그럼 어떻게 해야 버틸 수 있을까. 강사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어갔다.

“이것밖에 할 게 없다는 생각이 있어야 버텨요.”

번역 학원의 기억을 떠올린 것은 줌파 라히리가 쓴 책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때문이었다. 벵골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인도계 미국인 줌파 라히리는 1999년 발표한 첫 소설집 〈축복받은 집〉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다. 그런 그가 2012년, 앞으로는 이탈리아어로만 글을 쓰겠다고 돌연 선언한다. 2015년 나온 이 책은 그가 이탈리아어로 쓴 첫 산문집이다.

작가는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번개에 맞은 듯 이탈리아어에 매료된다. 이탈리아어에 대한 갈망은 여행을 마치고 일상에 돌아와서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에서 이탈리아어 공부를 이어가던 라히리는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로 이주하기로 결심한다. “인생의 길을 바꾸기 위해, 이탈리아어를 붙잡기 위해". 그곳에서 라히리는 자신에게 작가로서의 명성을 안겨다 준 영어 대신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는 삶을 살아가기로 한다. 영어라는 퇴로를 차단하고 자발적 망명을 선택한 것이다.

책에는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작가가 겪은 좌절감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그에게 이탈리아어는 “열심히 쓰지만 완성할 수 없는 책"이며, 이탈리아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갖은 애를 써도 실패"하는 일이다. 라히리는 자신이 쓴 이탈리아어 글이 “밋밋한 맛의 빵" 같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는 이탈리아어로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책을 읽을수록 궁금해진다. ‘왜 이렇게까지 할까?’ 아마 작가 스스로 수없이 던졌던 질문일 것이다.

왜 불완전하고 빈약한 이 새로운 목소리에서 매력을 느끼는 걸까? 이렇게 부서지기 쉬운 피난처에서 노숙자나 다름없이 살기 위해 훌륭한 저택을 포기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창작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안정감만큼 위험한 것은 없기 때문이리라. - 줌파 라히리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중에서

영한 번역을 공부하면서 내가 느꼈던 핵심적인 감정은, 아무리 노력해도 한국어와 영어 두 개의 세계를 완벽히 연결하지 못하리라는 무력감이었다. 영어라는 막막한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시간을 견디기 어려웠고, 그렇게 해서 도달한 목적지가 초라하고 허름한 곳일까 겁났다. 자꾸만 한국어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라히리는 오히려 이러한 불완전함이 자신을 살아있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완전해질 수 없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끝없는 성장의 가능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영어라는 능숙하고 해묵은 장비를 버리고 투박하고 불안한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면서 라히리는 어린 시절 느꼈던 글쓰기의 순수한 기쁨을 맛본다. 그는 영어로는 결코 쓰지 못했을 글을 이탈리아어로 써나간다. 완전하지 못해도 지금까지와는 분명 다른 글을. 라히리는 말한다. “무언가가 변화하는 전이의 순간들이 우리의 척추를 만든다"라고.

결국 나는 3개월 만에 번역 공부를 포기했다. 번역이 내게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수확이라는 자기 위안을 하면서. 하나의 길을 택한다는 것은 다른 길을 포기해야 함을 의미한다. 익숙하고 안온한 세계에서 내가 지켜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효율성과 가성비라는 이름으로 지금껏 내가 흘려보낸 가능성이 얼마나 많을까. 라히리는 그 후로도 꾸준히 이탈리아어 소설집과 산문집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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