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조국 대표에게 실망한 이유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지난달 17일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 당선인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2대 국회에서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설치와 제7공화국 개헌에 담아야 할 개정사항 7가지를 제안하고 있다. |
ⓒ 유성호 |
제9차 개헌의 결과물인 '1987년 체제'를 바꾸자는 지금의 개헌론은 두 유형의 개헌론 중에서 나쁜 쪽에 가깝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의 역대 개헌 중에서 1960년 제3차 및 제4차 개헌과 1987년 제9차 개헌은 시민혁명을 반영한 반면, 나머지 여섯은 그렇지 않았다.
이 세 차례 개헌에서는 대중의 의사가 비교적 많이 반영됐다. 4·19혁명 직후의 제3차 때는 이승만 장기집권에 대한 반발로 내각책임제 개헌이 이뤄졌다. 1960년 6월 15일의 내각제 개헌은 보수 정당인 민주당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독재자 치하에서 '못 살겠다! 갈아보자!'를 외친 대중적 정서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해 11월 29일의 제4차 개헌은 3·15 부정선거 주모자들과 4·19 시위대 살상자들에 대한 처벌 근거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역시 4·19시위대의 입장을 상당 부분 반영했다. 6월항쟁 직후의 제9차 개헌은 박정희·전두환 독재를 가능케 한 대통령 간선제에 대한 반성에 입각했다. 이는 6월항쟁의 최대 구호를 반영한 개헌이었다.
이 세 개헌이 완벽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국민들의 의사와 동떨어진 나머지 여섯 개헌보다는 나았다. 이승만 집권을 위한 제1차·제2차 개헌, 박정희 집권을 위한 제5차·제6차·제7차 개헌, 전두환 체제를 위한 제8차 개헌보다는 분명히 나았다.
시민혁명 직후냐 아니냐, 국민이 주체가 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개헌의 결과가 위와 같이 달라진다. '촛불혁명으로부터 8년이나 뒤'에 '대중보다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지금의 개헌론이 '나쁜 쪽'에 속한다는 말은 결코 과하지 않을 것이다. '촛불혁명과의 시간적 간격'을 메울 만한 '국민들의 높은 참여도'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개헌론은 국민보다는 정치권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쉽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지금의 개헌론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고 있지만, 대중과 괴리된 지금의 개헌론이 갖는 한계는 해소되지 않는다.
그리스 이와니나대학에서 역사고고학박사와 의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그리스 직접민주정을 연구해 온 최자영 한국외대 겸임교수(전 부산외대 교수)는 이번 총선 때 9번을 찍었다. 조국혁신당이 권력기관의 힘을 빼는 검사장 직선제를 공약하는 모습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 총선 후에 조국 대표가 4년 중임제 개헌론에 집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다.
▲ 화상으로 발표하는 최자영 교수. |
ⓒ 김종성 |
6일 저녁에 줌(ZOOM)으로 진행된 '1987년 체제와 대한민국 국가' 토론회에서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최자영 교수는 단임제냐 중임제냐에 매몰되면 대통령과 국가를 강화하는 쪽으로 개헌론이 흘러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민을 강하게 하려면 권력을 지방으로 분산시키고 권력기관의 힘을 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5년 단임제를 바꾸자고 주장하는 이들은 중임 보장을 통해 대통령의 책임을 강화하고 레임덕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 교수는 대통령들이 책임 의식이 없는 게 대한민국의 문제가 아니라, 그 권력이 너무 과도해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누르는 게 진짜 문제라고 인식한다.
윤석열 대통령 같은 캐릭터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게 예방하는 게 급선무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윤석열을 악마로 만들지 않는 방법은 아주 간단해요"라며 "그가 갖고 있는 과도한 권력을 뺏으면 돼요"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과도한 권한을 갖지 않게 하고, 대통령이 선을 넘으면 즉시 끌어내리는 시스템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발언이다.
최 교수는 지금의 개헌론에 시사점을 줄 만한 인물로 그리스 정치가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를 추천했다. 폴리스들의 자립을 촉구한 데모스테네스는 시민들을 향해 "속지 않는 법을 배우고, 또 우리 권리를 뺏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속인 자를 벌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 강효백 명예교수. |
ⓒ 강효백 |
전직 외교관인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명예교수는 현행 헌법상의 국가권력 구도가 너무 과도하다고 몸서리를 쳤다. 두 번째 발표자인 그는 그냥 통령으로 부르면 될 것을 그 앞에 '대'자까지 붙이는 것부터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의 권한을 억제하기보다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옥상옥을 만드는 총리제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대통령제와 어울리지 않는 총리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그는 대통령 직무대행 1순위자를 총리로 규정한 헌법 제71조가 민주주의나 국민주권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민주국가의 정통성은 국민의 투표에 의해 생성되므로 정통성이 더 나은 국회의장을 놔두고 총리가 국가원수직을 대행하게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헌법과 관련된 각종 왜색도 언급했다. 우리 헌법이 대통령 밑에 총리를 두는 것은 일왕(천황) 밑에 거의 유명무실한 태정관(태정대신)이 있었던 것을 연상시킨다는 게 그의 말이다.
우리 헌법에 일본어 어투가 너무 많은 점도 그는 지적했다. 그런 어투가 헌법 첫 구절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에 들어간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역사가 유구하고 빛나는 전통을 가진'이라고 해야 우리 문법에 맞는데도 '에'나 '에게'를 뜻하는 일본어 조사 니(に)의 냄새를 풍기는 그 구절이 헌법 첫 문장에 나오는 것이 불편하다고 그는 말했다.
강 교수는 조국 대표가 즐겨 사용하는 '제7공화국' 표현에서도 왜색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일곱 번째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민국 일곱번째 정치체제'를 수립하자는 것이므로 제7공화정으로 불러야 하는데도, 1958년 이후의 프랑스 정치체제를 제5공화정이 아닌 제5공화국으로 호칭하는 일본 학계를 연상시키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강 교수는 아쉬워했다.
▲ 화상으로 발표하는 김갑년 교수. |
ⓒ 김종성 |
세 번째 발표자인 김갑년 고려대 독일어학 교수는 헌법체제하에서 국민 혹은 시민의 권리가 제약되는 현상을 극우세력의 준동이라는 측면에서 조명했다.
김갑년 교수는 뉴라이트라는 표현 자체가 이들의 본색을 은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독일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우파 급진'의 의미가 담긴 레히스라디컬(rechtsradikal) 혹은 네오나치(신나치)로 지칭함으로써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고 한 뒤, 한국에서는 '새로운'의 의미가 붙은 뉴라이트로 부름으로써 실체를 왜곡하고 위험성을 가려주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극우세력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 중 하나로 김 교수가 거론한 것은 사유의 억압이다. 극우의 준동이 대중의 합리적 사고를 억압하고 저해하는 무사유 상태를 조장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스실이 딸린 열차라는 아이디어를 낸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은 오로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를 보고 사상가 한나 아렌트는 '순전한 무사유'로 진단했다. 윤 정권하에서 극우가 더 강해지면 대중이 합리적 사고를 못 하는 무사유 상태가 확대될 수 있다고 김 교수는 우려했다. 극우의 준동에 의한 무사유의 범람이 헌법질서 파탄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인식이다.
▲ 화상으로 진행된 '1987년 체제와 대한민국 국가' 토론회의 포스터. |
ⓒ 김종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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