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빠르게 가'가 석유를 만나 '좋아 빠르게 파'?
[박성우 기자]
▲ 7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경북 포항 영일만 심해에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 미국 액트지오(Act Geo)사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의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기자실 회견 장면을 시민들이 시청하고 있다. |
ⓒ 권우성 |
추정과 가능성.
윤석열 대통령의 깜짝 '석유·가스 국정브리핑' 이후 전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동해 심해 가스전 탐사 자료 심층분석 미국 자문업체 '액트-지오(Act-Geo)'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의 기자간담회는 이 두 단어로 정리할 수 있었다.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은 영일만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에 대해 "20%의 성공 가능성은 높은 수치다. 동시에 80%의 실패 가능성도 있는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최대 매장 가능성 140억 배럴의 가치는 삼성전자 총 시총의 5배 정도다. 그중 3/4가 가스, 석유가 1/4로 추정된다"는 3일 대통령·정부 발표 내용과는 다소 온도 차이가 있었다.
7일 오전 10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비토르 아브레우 액트-지오 고문의 기자간담회는 "동해 유망 구조의 (석유·가스) 매장량은 35억~140억 배럴 정도로 추정된다"라는 가능성을 다시 한 번 발표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는 "동해 심해층 3개의 시추공 데이터를 통해 탄산가스 등 석유·가스전이 존재할 때 나타나는 특성을 발견했다"라면서도, 다만 "그 지역에 경제성이 있는 탄화수소가 누적돼 있다는 사실은 찾지 못했다"고 실패 요인 또한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는 과거 사례도 언급했는데, 가이아나 앞 바다 리자에서 40억 배럴의 석유 잠재량을 발견했을 당시 성공율이 16%였다는 점을 소개했다. 아브레우 고문은 "프로젝트의 유망성은 상당히 높다"며 "왜냐하면 저희가 분석해 본 모든 유정이 석유·가스의 존재를 암시해 주는 제 요소가 갖춰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국정브리핑과 7일 아브레우 고문 기자간담회 사이의 나흘간 '포항 영일만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을 두고 여론이 들썩였다. 특히 액트-지오를 두고 윤 대통령이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 기술 평가 전문기업"이라고 평가하면서 기대치를 높인 것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 경북 포항 영일만 심해에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 미국 액트지오(Act Geo)사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이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김병기 |
액트-지오를 둘러싼 논란 중 가장 크게 회자된 건 미국 텍사스주에 위치한 액트-지오의 본사 주소가 현지 부동산업체에 매물로 나온 일반 가정집이라는 점이었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 누리꾼은 직접 액트-지오의 본사 주소를 방문해 임대 입간판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했다.
또한 <뉴스버스>는 미국 인구조사국에 등록된 액트-지오의 기업 정보를 인용해 2016년 설립된 액트-지오의 직원 숫자는 1명이고, 연방 정부에 보고된 연평균 매출은 약 2만7000달러(약 3680만 원)에 지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액트-지오가 텍사스 주정부와 세무국에 '직업훈련과 관련 서비스'를 주업종으로, '지리 컨설팅'을 부업종으로 신고한 점도 다뤘다.
아브레우 고문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본사 주소가 자신의 집 주소라는 것을 인정했다. 또한 회사 규모에 대한 설명도 내놨다. 그는 "전세계적으로 석유 매장량이 줄어들면서 석유 회사들이 인력 감축을 실시하고 있다. 이 의미는 유능한 인재들은 큰 회사에 속해 있지 않아도 외부에 많다는 이야기"라며 "우리는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카메라만 있으며 업무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계 각지에 액트-지오의 전문가들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음을 설명하며 "우리끼리 농담으로 '액트-지오는 해가 지지 않는 회사다'란 말을 한다. 전세계에 우리와 일하는 전문가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중 한 명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최근 영국에 지사를 설립했는데 영국 지사 주소도 함께 일하는 르네 박사의 주소라고 부연했다.
또한 아브레우 고문의 성공률에 대한 설명도 아리송한 대목이다. 그는 '20%의 시추 성공률'에 대해 "5개의 유망구조를 대상으로 해서 시추를 해본다면 하나의 유망구조에서는 석유를 찾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독립시행인 시추 성공률에 맞지 않는 계산으로 보인다. 20%의 시추 성공률이라면 5개의 시추공 모두에서 석유가 발견되지 확률은 약 33%에 이른다(실패확률 80%, 즉 0.8의 5제곱).
액트-지오의 분석 결과가 합당한가에 대한 것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지난 5일 <시사IN>은 2007년부터 15년 동안 영일만 일대를 탐사해 온 호주 최대 석유개발회사인 '우드사이드(Woodside Energy)'가 영일만 일대 개발을 두고, 2022년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결론 내린 뒤 영일만 탐사에서 철수한 사실을 보도했다.
2022년 기준 직원 수 약 5000명, 연매출 23조 원가량의 규모를 가진 업체가 '가망이 없다'며 손을 뗀 영일만에 가정집을 본사 주소로 둔 사실상 1인 기업의 '가능성 높다'는 분석을 믿고 큰 예산을 들여도 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뒤따른다.
이에 대해 아브레우 고문은 "우드사이드는 조기철수로 탐사자료를 심층분석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며 "탐사 자료해석은 지구물리학과 지질학적 접근을 병행해야 하는데 액트-지오는 이 둘을 균형 있게 수행해 유망구조 도출에 성공했다"고 반박했다.
▲ 윤석열 대통령은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에서 동해 석유·가스 매장과 관련해 발표했다. 사진은 이날 브리핑에서 공개된 유망구조 도출지역이 표기된 이미지. |
ⓒ 연합뉴스 |
그럼에도 액트-지오라는 자문업체의 전문성을 어느 정도까지 신뢰해야 할지는 의문이 따른다. 시추는 하나에 1000억 원 이상의 큰돈이 드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년 상반기까지 뚫겠다고 밝힌 시추공은 최소 5개인데, 단순 계산하면 5000억 원이 든다. 시추 작업을 해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추가로 시추를 할지 말지 결정한다고 한다.
추정과 가능성의 영역 속에서 결국 시추 필요성이 강조되는 상황이다. 아브레우 고문은 7일 기자간담회에서 "실제 이를(석유·가스 매장) 입증하는 방법은 시추하는 것 뿐이다"라며 "유망 구조에 석유와 가스의 잠재적 존재가 있다는 점은 판별했지만 시추하지 않으면 리스크(실패 요인)를 없애는 것이 불가능한 만큼 마지막으로 남은 방법은 시추"라는 입장을 내놨다.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밀어붙였던 '좋아 빠르게 가' 구호가 2024년엔 석유·가스를 만나 '좋아 빠르게 파'가 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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