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비트코인이 돈을 대신한다, 자동차가 말을 대체했던 것처럼
화폐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어
비혼주의 등 인류의 삶에 큰 영향
법정통화, 정부에 권력만 보탤뿐
"주판이 문제가 있어서 계산기로 다시 컴퓨터로 대체된 것이 아니다. 말도 문제가 있어서 자동차로 대체된 것이 아니다. 컴퓨터와 자동차의 장점이 부각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비트코인은 그 장점 때문에 계속 세력을 확장해갈 것이다. 달러가 붕괴하지 않고 계속 일정한 힘을 유지하더라도 비트코인은 계속 성장할 것이다. 비트코인은 그 자체가 가진 장점 때문에 부상할 수밖에 없다."
사이페딘 아모스 레바논 아메리칸 대학 경제학 교수는 비트코인의 미래를 이같이 요약했다. 그는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엘살바도르 정부에 투자 자문을 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엘살바도르 비트코인 전략청 고문에 임명됐다. 그는 비트코인을 가장 깊이 연구한 학자 중 한 명이다. 2018년 출간한 ‘더 비트코인 스탠더드(The Bitcoin Standard)’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은 ‘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터닝포인트)’라는 제목으로 같은 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아모스 교수는 비트코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2021년 ‘더 피아트 스탠더드(The Fiat Standard)’를 출간했다. 다산북스가 지난달 같은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 출간했다. 그는 비트코인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법정화폐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고, 비트코인은 법정화폐 체계를 이해하는 데 좋은 도구가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모스 교수는 비트코인과 비교했을 때 법정화폐는 굉장히 복잡하고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아모스 교수는 최근 책 출간을 계기로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 1일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강연을 앞둔 그를 만났다. 아모스 교수는 지난해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엘살바도르 정부가 비트코인을 계속 모으면 5~10년 안에 부채를 갚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엘살바도르의 정부 부채는 2022년 기준 267억달러다.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로 보인다. 비트코인 가격이 지난해 10월 이후로만 2.7배 가량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비트코인은 여러 차례 폭등과 폭락을 반복했다. 그래서 현재 비트코인 가격의 과열을 우려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아모스 교수는 "장기적으로 비트코인은 계속 오른 반면 달러는 하락 추세를 보였다"며 "길게 봤을 때 어쩌면 달러가 비트코인보다 훨씬 더 위험한 자산이 아닐까"라고 반문했댜. 책에서 아모스 교수는 법정통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절하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법정통화의 경우 금이나 비트코인과 달리 공급량이 무한정으로 늘 수 있기 때문이다.
아모스 교수는 정부 혹은 정부로부터 은행업 허가를 받은 대출 기관에서 생성한 화폐라면 현재 수중의 화폐뿐 아니라 미래에 그 화폐를 지불하겠다는 약속도 돈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취급하는 것이 법정통화 제도의 근본적인 특징이라고 규정한다. 다시 말해 신용을 바탕으로 화폐가 만들어지고 통화량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아모스 교수는 "중앙은행 뿐 아니라 모든 대출 기관도 대출을 통해 통화량을 늘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며 "법정화폐의 경우 신용 대출만 이뤄지면 통화가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누군가가 은행에 가서 100만달러 대출을 요청하고 은행이 승인하면 그 자체로 100만달러라는 새로운 돈이 생성된다. 은행이 100만달러라는 숫자를 장부에 적기만 하면 새로운 돈이 생성되는 것이다. 금이나 비트코인을 얻기 위해서는 채굴을 해야 하는데 법정화폐의 경우 대출을 하는 순간 채굴이 이뤄지는 셈이다. 개인이 집을 살 때도 대출을 받아 사고, 회사도 대출을 받아 투자를 한다. 그러다 보니 세상이 빚으로 돌아가게 된다. 또 돈이 개인에게서 정부로 가게 된다. 왜냐하면 정부가 돈을 막 찍어내면서 통화량이 늘어나니까 개인이 가진 돈은 계속 평가절하된다. 반면 정부는 점점 더 돈이 많아진다. 돈을 막 만들어내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부가 개인에게서 정부로 이전되는 셈인데, 정부의 권력이 더 강해지는 이유가 바로 이 법정통화 때문이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누구나 쉽게 대출을 받고 그래서 통화량이 늘면서 화폐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모스 교수는 "가만히 눈 감고 도둑질 당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계속해서 평가절하되는 달러를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달러와 같은 법정통화 가치의 지속적인 하락은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단적으로 최근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현상을 꼽았다.
"사람들이 애도 낳지 않고 가족을 이루려고 하지 않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저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정부가 돈을 계속 많이 찍어내기 때문에 저축을 해도 시간이 지났을 때 그 돈의 가치가 확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아모스 교수에게 법정통화는 정부가 무제한으로 지출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는 도구일 뿐이다.
실제 법정통화는 막대한 전쟁 비용을 마련해야 했던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영국과 미국 등은 1차 세계대전 때 막대한 전비 마련을 위해 잇달아 금본위제를 포기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달러를 기축통화로 채택하는 브레턴우즈 체제가 마련됐지만 미국은 베트남 전쟁 중 다시 금 태환 포기를 선언했다. 금이 있는 만큼 돈을 찍어낸다는 원칙을 버린 것이다.
아모스 교수는 결국 법정통화 본위제는 정부들이 금 태환 의무를 사실상 이행할 수 없게 되자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고 지적한다. 막대한 전비 탓에 파산 위기에 직면한 중앙은행들이 내놓은 고육지책으로, 정치와 화폐가 결합해 불가피하게 나타난 지정학적 결과이며 법정통화의 역사는 곧 정부가 채무 불이행에 대처해 온 역사라고 꼬집는다. 따라서 건전화폐를 공급하겠다거나 국제 결제를 용이하게 하고자 의도적으로 설계된 기술도 아니고, 통화, 거래, 은행 업무 측면에서 사용자 경험을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지 않았다고 아모스 교수는 지적한다. 심지어 그는 현금과 신용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정확한 통화량을 측정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일갈한다. 책에서 아모스 교수는 법정통화를 "전 세계의 금융 및 통화 서비스를 독점하는 부채 기반의 중앙 집중식 장부를 강제로 구현한 기술"이라고 규정한다.
아모스 교수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이후 각국이 금 태환을 포기하면서 이후 달러와 파운드 가치는 둘 다 금 대비 95% 이상 떨어졌다고 설명한다. 그는 "1971년 베트남전쟁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금 1온스를 35달러로 교환해주던 금 태환을 포기하면서 법정통화가 안착한 지난 50년 동안 달러 평가절하 흐름이 한 번도 바뀌지 않았고 비트코인은 지난 10년 동안 계속 절상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아모스 교수는 공급량이 무한정으로 늘어나는 법정통화와 달리 비트코인의 숫자는 2100만개로 정해져 있으며 이를 아무도 바꿀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1비트코인은 1억사토시를 뜻한다며 현재 비트코인이 일상에서 쓰이고 있는 엘살바도르에서는 커피 한 잔에 몇 사토시라는 식으로 계산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아모스 교수는 장기적으로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 자산을 결국 비트코인이 모두 대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지금 전 세계의 현금자산 총 규모가 약 300조달러다. 비트코인의 가치는 1조달러밖에 안 된다. 나는 궁극적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300조달러의 현금 자산 수요를 비트코인이 대체할 것이라고 믿는다."
더 피아트 스탠다드 | 사이페딘 아모스 지음 | 임경은 옮김 | 다산북스 | 512쪽 | 3만8000원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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