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동해석유,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김동표 2024. 6. 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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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산유국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나라가 들썩인 한 주였다.

정부 발표와는 전혀 다른 결과, 또는 기대(최대 140억배럴)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가 나올 때의 후폭풍은 꽤 클 것이다.

민주당에서도 "이런 중대한 발표에 '천공의 그림자'가 보인다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동해 석유 소식은 다소 황당한 감이 있어, '천공설'을 웃어만 넘기기엔 맘속에 살짝 걸리는 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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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산유국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나라가 들썩인 한 주였다.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정부 공식 발표가 지난 3일 나왔다. 자랑스러운 한우에 이어 한유(韓油)를 보유하게 됐다는 해학, 베네수엘라·나이지리아·네덜란드처럼 ‘자원의 저주’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경계론, 김칫국 마시지 말라는 일침까지 아우러졌다.

주변을 둘러보면 일체의 의구심 없이 발표 내용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진짜라면 나쁠 것 없는 소식이지만, 그래도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것이 세간의 인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정부 발표와는 전혀 다른 결과, 또는 기대(최대 140억배럴)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가 나올 때의 후폭풍은 꽤 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온국민을 놀라게 하는, 위험성 큰 깜짝 발표를 굳이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열린 결말은 불필요한 음모론의 불씨마저 됐다. 발표가 나오자마자 수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오픈채팅방에서는 ‘천공’이라는 이름을 찾아볼 수 있었다. 역술인이라는 천공이 "우리도 산유국이 될 수 있다"고 강의한 영상과 영상 캡처본이 온라인상에서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에서도 "이런 중대한 발표에 ‘천공의 그림자’가 보인다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고 했다.

그간 ‘천공’이라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무시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2017년 3월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정부가 그렇게는 운영되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다. 그런데 동해 석유 소식은 다소 황당한 감이 있어, ‘천공설’을 웃어만 넘기기엔 맘속에 살짝 걸리는 게 있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그는 어떻게 미리 알았을까. 그의 유튜브 채널에서 직접 영상을 살펴봤다. 지난달 16일자로 업로드된 영상의 제목은 ‘금을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할 수 있는지’다. 그 영상의 주제는 ‘한국에 석유가 묻혀 있을까’라는 따위의 것이 아니었다. 영상은 한 참석자의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 질문은 ‘앞으로 금을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할 수 있는지, 금의 가치가 계속 상승할 수 있는지, 귀금속을 소장하면 에너지가 돌아 일이 잘 풀리는지 궁금합니다’이다. 대답하는 입에선 별말이 다 나온다. "한국이 10년 안에 국민소득 10만달러, 20만달러를 찍고 세계 1위 국가가 된다" "한반도 아래에는 지구상의 모든 보물이 다 묻혀 있다" 등등. 논란이 된 발언도 그 과정에서 슬쩍 나온다.

기본적으로 이 유튜브 채널은 정치, 경제, 사회, 과학 등 유튜버라면 누구나 다룰 법한 주제를 막 다룬다. 미·중 관계, 코로나19, 인공지능(AI), 의정 갈등, 교권 추락, 태권도, 이직, 결혼, 중국 온라인 쇼핑 플랫폼, 숏폼 콘텐츠, 선거 분석까지. 올라온 영상 개수만 1만3000여개다. 몇 부로 나누어진 것들을 합친다 해도 수천개의 주제에 대해서 떠든 내용이 올라와 있다. 여기서 ‘자원’ ‘석유’에 대한 언급이 겹치는 건 아주 특별한 일이라 보기 어렵다. 아무 말이나 하다 보니 아무것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영상 촬영일자는 1월14일이다. ‘천공의 말이 있은 후 불과 2주 후에 정부 발표가 나왔다 ’는 식의 주장은, 음모론의 드라마적 장치에 불과하다. 그는 너무나 많은 주제에 관해, 너무도 많이 떠들어놨기 때문에, 정부와 그의 주장이 겹칠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향후 정부의 중대 발표가 나오면 그의 유튜브를 뒤져 ‘천공의 그림자’를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 잘못이지만, 두 번 속으면 바보, 세 번이면 공범이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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