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의 치료가 쌓여 그날이 옵니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반복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나아지는 기쁨

'언어재활사의 말 이야기'는 15년 넘게 언어재활사로 일하며 경험한 이야기들로, 언어치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글입니다. <기자말>

[황명화 기자]

급성기 환자들을 주로 만나다 보면 유난히 치료사를 힘들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너무 많이 잠을 잔다거나, 내가 뭐라 말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한다거나 욕설을 하고 폭력적으로 군다거나 하는 등의. 그러나 그들도 결국에는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건 이러나 저러나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치료를 받았기 때문이다. 치료사는 환자가 '나는 안 돼, 나는 못할 거야' 하는 생각에 머물러 있지 못하게 다양한 치료적 접근을 통해서 치료를 하고, 이렇게 반복하는 과정에서 환자들은 멈추지 않고 점점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분명 더 좋아질 것 같은데 이상하게 자꾸 졸고, 집중도 못하고, 이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수행이 잘 안 되는 환자가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머리에 물이 찬 거였다. 치료실에서 치료 상황의 변화에 대한 보고를 받은 의료진이 이 상태에 대해 진단하고 물을 빼내었다.

그러자 환자는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다시 회복의 길로 나아갔다. 머리에 찬 물을 뺏기 때문에 수행력이 더 좋아진 것도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고 치료를 지속한 반복의 힘만큼 좋은 게 없단 생각이 든다.
 

▲ 치료받는 환자 치료받는 환자 ⓒ 황명화

 
치료가 매번 좋아지고 달라지는 게 눈에 띄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하루하루의 치료는 확연한 변화가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그보다는 안 되는 걸 하라 하고, 쉬고 싶은데 하게 하는, 힘들고 어려우며 때로는 지루하기까지 한 반복의 연속이다. 이런 반복의 연속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느 날 언제 그랬냐는 듯 변화가 보인다.

"정말 많이 좋아지셨어요~"
"아니에요. 아직 저는 잘..."
"어제는 이 활동이 잘 안 되었는데 오늘은 다 맞추셨잖아요. 이건 분명 달라진 거예요."

내가 아무리 응원과 지지를 보내도 이전과는 다르고, 생각과는 다른 자신의 모습에 위축되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절대 그럴 필요가 없다. 작은 진전이 쌓여서 어느덧 예전의 모습이 되돌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환자가 작은 진전들 속에 있을 때는 그저 버겁고 힘든 시간으로만 여겨진다. 과연 끝이 있을까? 나는 아프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런 의구심들이 하려는 열정과 하려는 마음을 갉아먹는다. 그 의구심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치료사는 면밀히 살피고 적절한 자극을 주고, 때론 과할 정도의 칭찬과 응원도 해주어야 한다.

나는 보호자와 상담하게 될 때 환자의 상태에 대한 설명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편이다. 환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어떤 점이 어떻게 좋아졌는지, 어떻게 다르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세세히 설명한다. 물론 이런 이해가 가능한 정도의 이해력을 가진 환자에게로 제한되지만 말이다.

이렇게 세세한 설명을 하는 것은 눈의 띄는 변화가 하루아침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치료의 진전 정도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꼼꼼히 변화를 감지하고 설명도 해 주는 것이다. 

아직 자신의 변화 정도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환자에게 그동안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반복한 결과가 바로 오늘이라고 말했다. 언어치료에서의 활동은 지식 습득보다는 일상생활을 잘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데 그 목적을 둔다. 그래서 한 개를 맞고 틀리고의 개념보다는 과정이 너무 중요하다. 하지만 힘드니까, 어려우니까 환자들은 이 과정에 대한 중요함을 자주 망각한다.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데 굳이 자는 사람을 깨워가며, 화내는 사람의 화를 다 받아내고, 말이 안 통하는 상황을 인내하면서 치료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그것이 내 일이기도 하고, 환자를 위한 진짜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반복은 어렵고, 한 것을 또 하고 또 하는 것은 더 어렵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견디어 낸 결실은 달다.

지금이 힘들다고 멈추고 포기하겠다고 생각하지 말길 바란다. 빗물이 낙숫돌을 뚫듯이 반복의 힘은 생각보다 더 세고 강하다. 반복만이 어느 날 갑자기 안 되던 활동을 되게 만들어 나를 변화시켜 줄 수 있다. 그러니 치료사를 믿고 계속 나아가시길.내가 모르는 걸 그가 알고 손잡고 가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해 있을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