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밀러, 성별을 넘어 선택과 가치를 말하다
[김성호 기자]
누군가는 그리 하는 것을 왜 다른 누구는 저리 하는가. 이것은 삶을 대하는 나의 오랜 관심이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곳간에서 양심이 난다고.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는 소식은 그와는 딴판이 아닌가. 가득 찬 곳간 가진 어느 부자가 남의 주머니를 터는 일이 수시로 보도된다. 세금을 피하고 경영권을 유지하려 온갖 위법과 탈법을 저지르는 이들이 있다. 보통 사람은 평생 벌어도 갖지 못할 부를 쌓아두고서 동료며 친구, 심지어는 가족 간에 혈투를 벌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과연 이들을 두고 곳간에서 양심이 났다고 말할 수가 있는 걸까.
또 그 반대는 얼마나 많은가. 폐지를 줍고, 채소를 팔고, 김밥을 말아가며 모은 돈으로 장학금을 기부하는 이들이 우리 곁에 얼마든지 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이가 하루에 십년 벌 돈을 벌어들이는 이보다 양심 있는 때가 많다. 그러나 어떤 이가 쉽게 곳간에서 양심난다 떠들어대니 뭘 모르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양심조차 곳간에서 난다고들 믿어버리고야 만 것이다.
▲ 퓨리오사 포스터 |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
선택으로 보여지는 인간, 선택을 말하다
말하자면 어떤 이는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다. 곳간이 비어도, 사흘을 굶어도 양심과 품격을 지켜낸다. 세상이 멸망해도, 문명이 무너져도, 그리하여 야만이 고개를 치켜들고, 비겁이 변명조차 않을 때도, 누군가는 제 삶을 부끄럽지 않은 곳에 두고자 한다.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는 선택을 말한다. 인간을 다른 인간과 다르게 하는, 머문 곳에 맞게 살아가지 않는, 박차고 일어서 거침없이 나아가는 이들의 선택을 말한다. 조지 밀러의 네 번째 <매드 맥스> 시리즈의 스핀오프 격으로 제작된 영화는, 지난 시리즈에서 인상적으로 등장한 여전사 퓨리오사의 감춰진 이야기를 한 편 영화로써 풀어낸다.
영화의 시작, 퓨리오사(아역: 알릴라 브라운 분, 성인: 안야 테일러 조이 분)는 아직 어린티를 벗지 못한 소녀다. 또래 아이의 걱정에도 아랑곳 않고 탐스런 열매를 따는 그녀의 뒤로 도적 떼처럼 보이는 사내들이 몇 나타난다. 바이크를 타고 다니며 되는 대로 빼앗고 훔치는 부랑자들 눈에 띈다면 소녀들이 무사할 리 없다.
▲ 퓨리오사 스틸컷 |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
떡잎부터 남다른 퓨리오사 탄생기
영화는 그로부터 퓨리오사가 <매드 맥스> 시리즈의 여전사로 거듭나기까지 마주했던 고난의 행로를 그린다. 납치된 퓨리오사를 뒤쫓아 왔던 그녀의 엄마가 무참하게 살해되고, 퓨리오사를 납치한 일당의 수장 디멘투스(크리스 헴스워스 분)에게 고초를 겪으며, 황무지에 굴기한 세 개 세력 가운데 제일이라 할 수 있는 시타델의 지배자 임모탄 조(리치 험 분)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일들을 겪었던 것이다.
여자아이로, 특히나 예쁘장한 태가 나기 시작하는 여자로서 퓨리오사는 일찌감치 여성성을 드러내지 않기를 선택했다. 전작이 그렸듯 시타델의 임모탄은 정상적인 아이를 낳지 못해 고통 받는 지도자로, 건강한 처녀들을 모아다가 제 아이를 임신해 낳게 하는 이가 아니던가. 자칫 그의 눈에 들었다간 아이를 낳는 도구쯤으로 전락할 수 있고, 그가 아니라도 다른 누구에게 붙들려 고난을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그리하여 퓨리오사는 얼굴에 검정을 묻히고 머리를 짧게 깎아 여성성을 가린 채로 살아간다.
누구도 믿지 못하고 모두를 의심하는 퓨리오사다. 그럴 밖에 없는 것이, 저를 지키려다 제 엄마가 죽는 모습을 눈앞에서 본 그녀다. 저와 제 엄마가 끝끝내 지키려 했던 것은 맑은 물이 흐르고 나무가 열매를 잔뜩 맺는 비옥한 땅이다. 황무지에서 사는 모두가 그를 알게 되면 탐낼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도 이를 알릴 수 없다. 괜한 위험을 키울까 누구와도 관계를 갖지 않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 퓨리오사 스틸컷 |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
오해의 지점들을 부순 조지 밀러
잭은 여러모로 남과 다르다. 스스로 말하건대 군인이었던 부모의 가르침을 받들어 올바른 가치를 갖고 살려 하는 이다. 갈 곳 없이 죽을 지경에 처한 퓨리오사를 거두고, 그녀에게 생존에 필요한 온갖 기술을 전수한 것도 바로 그다.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해지는 마음, 퓨리오사는 제 어릴 적 부족의 인사법으로 그와 머리를 마주 잡는다. 그리고 함께 시타델을 벗어난 미래를 기약한다.
영화는 거듭하여 남들이 하지 않을 법한 선택을 감행하는 잭과 퓨리오사, 또 그들과 가까운 이들의 선택을 인상적으로 잡아낸다. 제 죽음을 알면서도 워 리그를 고칠 튜브를 건네는 사내의 모습을, 오로지 잭을 살리기 위해 죽을 수 있는 길을 돌아가는 퓨리오사를, 또 퓨리오사를 살리려 위험 가운데 뛰어들었던 그녀의 어머니를 비추는 것이다. 왜 이들은 다른 이와 다른 선택을 내리는가. 어떠한 이득도 바라지 않고 기꺼이 위험 가운데 저를 몰아넣는가 말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전작 <매드 맥스>에서 퓨리오사가 한 선택들이 하나하나 풀려나간다. 어째서 이토록 황량한 대지 가운데 퓨리오사는 타인을 위해 제 몸을 내던졌는지가 드러난다. <매드 맥스>와 관련하여 편협한 잣대에 억지로 끼워맞추었던 온갖 해석들, 이를테면 남성성은 타인을 해하고 여성성은 타인을 보듬는다는 식의 해석이 무용하다는 사실을 알도록 한다.
▲ 퓨리오사 스틸컷 |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
중요한 건 선택과 가치
뿐인가. 디멘투스가 제게 대항하는 이들을 죽이는 장면에서도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디멘투스는 대든 이 가운데 우두머리를 붙들어 마치 능지처참을 하듯이 그 사지를 몇 대 바이크에 나누어 묶는다. 그리고는 반란을 일으키려던 무리의 추종자들에게 각 바이크를 두고 싸우도록 한다. 오로지 바이크를 차지하는 자만 생존하는 싸움, 영화는 바로 얼마 전 동료였던 이들을 무참하게 살해하고 한 여자가 바이크를 쟁취하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잡아낸다.
시타델 아래 굴을 파고 살며 약한 이들을 죽이고 그 사체를 먹는 이들은 또 어떠한가. 구더기 핀 사체를 써는 이가 할머니가 아닌 할아버지였다면 담긴 의미가 바뀌는가.
중요한 것은 성별이 아니다. 퓨리오사가 남성인 잭에게 거두어지고 배워나가며 성장한다고 해서 그녀가 못해지지 않는다. 반대로 잭이 아닌 제 어머니로부터 모든 것을 받았다고 해서 더 위대해지는 것도 아니다. 소위 브리더라 불리는 착취당하는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워보이라 불리는 인간병기 사내들 역시 세뇌되고 착취당한다.
또 한편으로 살펴보면 임모탄 조 역시 답 없는 세상에서 헤매는 독재자일 뿐이다. 매 순간 앞장서 위협에 맞서는 전편 <매드 맥스> 속 그의 모습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발견한다 해도 전혀 틀리지 않은 해석일 수 있다. 누구도 그저 위대할 수만은 없는 지옥도 가운데서 그래도 인간다움을 쌓아올리는 이의 모습, 영화가 주목하려는 건 그와 같은 선택이다.
퓨리오사는 제가 만난 모든 것을 자양분 삼아 오늘의 여전사에 이르렀다. 제 어머니가 남긴 좋은 것, 즉 황무지를 비옥하게 하는 사명을 받고서 제 사람들의 터전을 지키는 전사로서 살았다. 좋든 싫든 그녀가 디멘투스에게 큰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고, 멋진 사내이자 마초 그 자체였던 잭으로부터 비로소 진정한 전사가 되는 법을 배워나간 것 또한 사실이다.
그 가운데 성별은 무슨 역할을 하는가. 보다 중요한 것은 선택이고, 그 선택의 근저에 깔린 가치가 아닌가. 조지 밀러가 <퓨리오사>를 통해 내보이고자 한 것이 바로 이것일 테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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