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과학단지 가보니…대만 반도체의 길을 닦은 건 '팹리스'

김형민 2024. 6. 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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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과학단지 르포
수도 타이베이서 약 한 시간 거리
TSMC 등 384개 업체 위치
기술 박물관, 반도체 발전상 전시
리얼텍·미디어텍 등 팹리스 설계 칩 전시
인재 이탈 막기 위해 인프라도 신경
일본 등 외국인 관광객 증가

지난 5일 대만 수도 타이베이시에서 기차를 타고 약 40분을 달려 도착한 신주역. 이곳에서 택시를 타고 20분을 더 가니 신주과학단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만 반도체 기업들이 모여 함께 연구개발하는 거점이자, 인재들이 배출되는 요람이다. TSMC 등 대만을 대표하는 기업 16개와 연구개발 시설 등 총 384개 업체들이 이곳에 있다. 신주에 세운 TSMC 공장 약 20개는 이 단지에서 불과 15~20분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어 수시로 연계할 수 있다. 최적의 장소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단지 안팎은 반도체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 정부가 경기도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세우기로 한 전후 과정에서 본보기로 지목되기도 했다.

단지 곳곳을 돌아보면 대만 반도체의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보인다. 1980년 12월15일 정부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이곳에는 대만 반도체의 역사를 기록, 보존하는 ‘기술 박물관’도 있다. 이곳 전시물들을 살펴보면서 대만 반도체의 힘은 바로 ‘팹리스’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신주과학단지 내 기술박물관에는 리얼텍, 미디어텍 등 대만 팹리스들이 만든 칩 제품들이 초입 부분에 많이 전시돼 있다. 사진=김형민 기자

파운드리 1위 이전 팹리스 있었다

기술 박물관 전시는 예상과 달랐다. 대만의 자랑과 같은 TSMC 관련 장비와 자료들이 즐비할 것 같았지만, 실제론 극히 적었다. 대만 반도체 전체 역사를 훑어주는 연표에서 ‘1987년 TSMC 설립’이란 문구가 있는 게 전부였다.

박물관을 접수한 기업들은 대부분 팹리스였다.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 박물관 내 설명란은 "대만의 대표적인 팹리스 기업들이 성과를 내면서 대만 반도체의 길이 열렸다"는 취지의 내용으로 가득했다. 리얼텍, 미디어텍, 노바텍 등에 의해 만들어진 칩들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전시돼 있었다. 결국 대만이 TSMC를 앞세워 세계 파운드리 시장 1위에 오르기 전 그 발판을 만든 것은 팹리스라는 걸 알려주려는 듯했다. 박물관 밖, 단지 안을 쭉 둘러보면 그곳에서도 작은 신생 팹리스 기업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팹리스는 대만 반도체의 저력을 가장 아래에서 만드는 ‘언성 히어로’와도 같은 위치에 있는 것으로 이해됐다.

신주과학단지 기술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미디어텍의 5G 모바일 플랫폼. 사진=김형민 기자
일본 공장기계 제조기업 로체가 만든 로봇팔이 신주과학단지 기술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관람객이 직접 시연도 해볼 수 있다. 오른쪽 화면에 수동/구동 작동 버튼을 누르면 반도체 웨이퍼를 연상시키는 원반 10개를 로봇팔이 좌우에 배분한다. 사진=김형민 기자

팹리스는 파운드리를 강하게 한 계기가 됐다. 현지에서 만난 전문가들과 관계자들에 따르면 팹리스가 활성화되면 반도체 설계에 대한 업계의 전반적인 이해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설계를 잘 이해하면 실제 제품을 위탁받아 생산하는 파운드리에서도 고객사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이 역시도 강해질 수 있다.

박물관에는 일본 공장기계 제조기업 ‘로체’가 만든 로봇팔이 눈길을 끌었다. 박물관 관계자는 "대만 파운드리 공장에서도 쓰고 있는 로봇팔"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를 연상시키는 원반 10개를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원하는 개수만큼 배열해보는 체험이다. 수동이 아닌 자동으로 설정하면 스스로 알아서 좌우를 똑같이 배분한다. 이 관계자는 "과거는 물론 현재도 파운드리 공장에선 일본산 로봇팔을 많이 쓴다"고 했다.

신주과학단지 내에 위치한 생활관. 단지에서 일하는 직원, 연구원 등이 여기에서 생활한다. 사진=김형민 기자
신주과학단지 생활관에 있는 편의시설들을 안내해 놓은 표지판. 직원, 연구원들이 무료한 생활로 지치지 않도록 최대한 많은 편의시설을 유치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김형민 기자

사람이 자산…생활 인프라에도 신경

대만은 한창 부흥하고 있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사업이 인력난에 빠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는 분위기다. 우청원 대만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 주임위원(장관급)이 지난 5일 입법원(국회)에서 한 ‘AI 추진현황과 미래 향방’과 관련한 업무 보고에서 AI 인재 부족에 대비해 매년 4000~5000명에 달하는 AI 전문 인재를 양성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TSMC 이사회가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해 주요 대학교와 고등학교에 약 40억 대만달러(약 1699억원)를 기부하기로 결정한 것도 그렇다.

신주과학단지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읽힌다.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교육센터를 크게 짓는 한편, 이탈을 막기 위해 좋은 생활 인프라를 갖추는 데도 힘을 쓰고 있다. 하나의 소도시처럼 만들려 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것은 대부분 다 있다. 신주에 연고지가 없는 직원들이 거주할 수 있는 생활관을 낮으면서도 넓게 만들었다. 생활관 안에는 직원들이 여가를 보낼 수 있는 휴식공간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생활관 바로 옆에는 레크리에이션 센터를 둬서 직원들이 언제든지 가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해놨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신주과학단지 내 전시 박물관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김형민 기자

관광코스된 신주과학단지

이곳에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몰린다. 과학단지 관계자는 "정확한 통계는 확인해봐야겠지만, 최근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온다"고 말했다. 대만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필수 관광 코스’가 되고 있다고 한다. 기술 박물관을 갔을 때도 일본인 관광객 약 10명이 단체로 전시물들을 보고 있었다. 이들은 대만의 기술 발전상을 보고 놀라워 하며 서로 아는 지식을 갖고 그 자리에서 토론도 했다. 일본 관광객들을 인솔한 가이드는 "요즘 일본 여행사들 사이에선 대만 관광 때 신주과학단지를 새로 포함시키거나 관광 시간을 더욱 늘리는 추세"라고 말했다.

신주=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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