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든 일상에 지구가 병든다
토마스 브루더만 지음, 추미란 옮김
동녘, 312쪽, 1만8000원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쓰레기를 분리수거한다. 음식물 쓰레기는 따로 배출한다. 폐건전지도 뒷산에 버리는 게 아니라 별도의 수거함에 모아 놓는다. 우리는 대체로 친환경적으로 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상의 행동이 저절로 기후친화적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대체로 여행을 할 때 기차가 아니라 편하게 자가용으로 이동한다. 때로는 비행기를 이용해 해외여행에 나선다. 자가용 자동차로 1㎞ 가는 데 100명 당 약 21㎏을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비행기는 100㎞ 가는 데 100명당 43㎏이 나온다. 이에 비해 기차는 미미하다. 호주산 와인을 마시고 미국산 소고기도 자주 먹는다. 온라인 쇼핑은 일상이 돼 있다. 우리가 매일 하는 이런 행동들은 기후 파괴적이다.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선량한 기후파괴자’가 된다.
책은 지구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결국 기후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우리의 모순을 지적하고 그 모순을 합리화하려는 변명들을 조목조목 따진다. 분석의 도구는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의 다양한 개념들이다.
가장 흔한 변명 거리 중 하나가 ‘기후 보호가 나한테 뭘 해주는데’라는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 즐기며 살자는 욜로족은 기후변화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호주산 소고기 스테이크와 해외여행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이들에게는 ‘한번 사는 인생’이라는 말이 유용한 변명이 된다. 비교적 분별 있는 행동을 하고 경제적 효율을 중시하는 사람들도 기후 파괴적이 될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고 비용도 덜 든다면 기후 보호는 이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는 기후 친화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기후 파괴적으로 행동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그다지 느끼지 않는다. 행동이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이라는 것에 불편한 느낌(인지 부조화)을 가져도 인정하려 들지 않고 변명거리들을 찾아낸다. 책에 등장하는 창의적 변명을 소개하면 이렇다. “마트에서 아르헨티나산 냉동 소고기를 들고 생각한다. 이 소는 어차피 도살됐고, 팔려고 내놓은 것인데 내가 사지 않아도 누군가가 사겠지.” “운동하러 가는 길, 자전거를 탈 수도 있지만 굳이 자동차를 몰고 가면서 생각한다. 자동차도 가끔 달려줘야지, 안 그러면 고장 나.”
기후 파괴적 행동에 대한 흔한 변명 중 하나는 ‘이번만’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시점할인’(먼 미래에 받을 보상은 가까운 미래에 받을 보상보다 그 가치를 낮게 여기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좋은 것은 바로 지금, 불편한 것은 나중에 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시점할인을 영리하게만 이용하면 유익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가솔린 엔진의 전면 금지 같은 정책은 ‘휘발유 중독자’들에게 지금 당장이 아니라면 10년 안에 실행하든 15년 또는 20년 뒤에 하든 시점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정치인들은 표 잃을 걱정 없이 5년이나 10년 앞서서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
저자는 ‘어떤 상황에 관해 기존의 그림에 맞지 않는 정보는 거부되거나 재해석된다’는 확증편향 개념을 이용해 기후변화 부정자들의 주장을 설명한다. 이례적인 폭염이라도 평소 환경을 의식하는 사람에게만 기후변화의 신호가 될 뿐이고, 기후변화 부정자는 “여름에는 당연히 더운 것 아니냐”는 반응만 나올 뿐이다. 이들은 100년 만의 이상 기후도 사실은 늘 있었던 일인데 예전에는 단지 보도가 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음모론도 제기한다.
평소 친환경적으로 산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일 년에 한 번 장거리 여행에 비행기를 타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단 한 번의 장거리 비행이 평생 전기를 아끼고, 쓰레기를 분리 수거하고, 천 가방을 사용해서 아끼는 탄소량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방출한다는 사실은 기꺼이 무시한다”고 지적한다.
개개인의 문제들을 지적했지만 저자는 전반적인 기후 친화적인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사회 곳곳에 있는 시스템 오류를 바로잡기를 권한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 유럽의 항공사들은 텅 빈 비행기를 수없이 날려야 했다. 시간 당 비행기 운항 가능 횟수를 정해 놓은 슬롯 규칙이 문제였다. 항공사들은 운항 가능 횟수의 최소 80%를 이용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슬롯 자체를 잃기 때문에 빈 비행기를 날릴 수밖에 없었다. 기후 친화적으로 살려고 했던 사람들도 “나 혼자 비행기를 안 탄다고 무슨 소용이냐”고 한탄했다.
미래가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기후 친화적인 규범들이 정착된다면 개개인도 당연히 기후 친화적인 결정과 행동에 거부감 없이 나설 수 있다. 저자는 “새로운 사회적 관습은 인구의 4분의 1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금세 보편화한다”면서 “우리 4명 중 1명이 기후보호를 가장 중요한 일로 삼는다면 이미 문제는 많이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대학에서 환경시스템과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환경운동가이자 인간행동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 책은 환경을 위해 본문은 재생지를 사용했고, 콩기름 비율을 높인 잉크로 인쇄했다.
·편안하게 소파에 앉아서 읽을 수 있지만 읽는 내내 부끄러워진다
·다양한 심리학과 행동경제학 개념을 배울 수 있다
·소개된 사례들이 유럽의 것들이라 우리 상황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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