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AI 교과서 도입은 학습평가 혁신 위한 ‘빌드업’ 과정”
내년 3월 전국 초·중·고교에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된다. AI가 국방, 금융, 법률, 의료 등으로 영역을 끝없이 확장하고 있는데, 이제 공교육 영역으로도 넘어오는 것이다. 주요 교육 선진국에서는 이미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해 지역 단위 혹은 학교 단위, 교실 단위에서 AI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국가 단위에서 AI가 도입되는 사례는 한국이 처음이다.
내년 AI 교과서 도입을 위해 뛰고 있는 정제영 한국교육학술정보원(케리스) 원장을 지난 4일 만났다. 케리스는 AI 교과서 도입의 핵심 역할을 맡은 교육부 산하 기관이다. 그는 AI 교과서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정점으로 하는 현행 평가 체제를 바꿀 ‘게임 체인저’라고 생각한다. 그의 저서 ‘AI 교육 혁명’에서는 AI를 활용한 평가가 수능을 대체할 수 있고 꼭 그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AI 교과서 도입은 교육 혁신을 위한 ‘빌드업(예비 작업)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케리스는 어떤 기관인가. 그리고 최대 현안은.
“초·중·고교에서 사용되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나이스’와 교육재정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K-에듀파인’, 유치원 입학관리시스템 ‘처음학교로’ 등을 운영한다. 연구자를 위한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도 담당한다. 유치원부터 초·중등학교, 고등교육기관을 정보화 측면에서 서포트하는 기관이다. 가장 큰 현안이라면 역시 내년 도입되는 AI 교과서다. 물론 나이스 등 기존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게 제1 책무다. 서비스가 원활하지 않으면 학교 현장에 끼치는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AI 교과서 준비 현황은.
“현재 교과서 제작사들이 교과서를 만들고 있으며 마무리 단계다. 오는 8월 교과서가 나오면 검정 절차를 밟게 되고, 11월에는 통과한 교과서를 공개해 학교가 교과서를 선정하는 절차에 들어가고, 학생들은 내년 3월부터 수학과 영어, 정보, 국어(특수교육) 과목을 AI 교과서로 공부한다.”
-저서 ‘AI 교육 혁명’에서 AI가 수능을 대체한다고 했다.
“당장 수능을 대체할 수는 없다. AI 교과서 도입은 이를 위한 ‘빌드업’ 과정이다. 일단 AI 교과서가 현장에 도입되면 수업과 평가에서 혁신이 일어날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 결과는 데이터로 수집·축적된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학습 포트폴리오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초·중·고교에서 학생 개인이 어떤 공부를 해 왔고 어떤 성취를 이뤘는지) 포트폴리오를 대입 전형자료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면 수능을 대체할 수 있다고 본다. 수능이란 평가 수단이 있고, AI가 축적해놓은 학습 포트폴리오라는 다른 수단이 있는데 뭐가 더 타당한 평가인지 논의의 장이 열릴 것으로 생각한다.”
-AI가 학생의 학습 과정 전반을 기록·축적하고 이를 모아 대학에 제공해 전형 요소로 활용한다는 구상인가.
“수능은 공정할 수는 있지만 타당한 평가는 아니다. 역량과 인성 같은 요소를 전부 배제하고 단순히 문제풀이 잘하는 아이가 리더가 되는데, 우리 미래를 위해 옳은지 의문이다. 교육학자로서 문제 제기를 넘어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책무가 있는데 AI에서 가능성을 봤다. AI 교과서가 안착하면 평가에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 평가에는 세 단계가 있다. 진단·형성·총괄 평가인데, 우리 학교 현장은 총괄평가만 이뤄지고 있다. 중1을 예로 들면 초등 6년 과정을 아이들이 다 이해한 거로 간주하고 진도를 뺀다. 진단이 안 된 상태에서 아이들이 어떤 과정을 밟고 있는지 형성평가도 건너뛰어 총괄평가로 넘어가 ‘넌 잘했다’ ‘넌 못했다’로 규정한다. 사교육이 활개 치게 된 근본 원인으로 생각한다. AI 교과서 도입으로 진단과 형성, 총괄 평가가 온전하게 이뤄지는 평가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축적한 결과를 국민에게 보여드리고 ‘수능 대신 이런 방식은 어떤가요’라고 내놓는 것이다.”
-교사들의 반응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다. AI 교과서 도입은 ‘곱셈’이다. AI 교과서와 인프라와 장비, 교사, 학생 등 각 파트를 곱해 결과값을 내는 것인데 하나라도 ‘0’이 되면 결과값도 ‘0’이 된다는 얘기다. 특히 교사가 ‘내 교실에선 안 쓴다’고 하면 정책 효과는 ‘0’이 된다. 그래서 내년 3월까지 교사들의 마음을 얻는 것에 집중하려 한다. AI 교과서가 ‘학생 한 명 한 명을 위한 맞춤형 교육’이란 교육적 이상을 실현하게 해주는 유용한 도구란 점을 어필하고 있다. 교사들은 초임 때는 이런 교육적 이상과 그렇지 못한 학교 현실 속에서 갈등하다 4~5년차 이후 ‘학교는 원래 그런 곳’이라며 포기하곤 한다. AI 교과서가 안착한 교실에 학생 20명이 있다고 가정하면 학생 수준별로 20개의 교육과정이 돌아가는 것이고 이를 20명의 AI 조교가 교사를 서포트한다. 아직 일부이긴 해도 교사 호응은 커지고 있다고 본다. 학생 한 명 한 명을 위한 교육이란 이상을 품은 교사에게 AI 교과서는 매력적인 도구일 것이다.”
-AI 교과서를 만든 민간 개발사로 학습 데이터가 공유되므로 사교육 상품 개발에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AI 교과서를 둘러싼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다. AI 교과서를 위한 서버와 제작사 자체 사교육 상품을 위한 서버는 분리되며 서버 간 데이터 이동은 철저히 제한된다. 각 업체의 AI 교과서를 고도화하기 위한 데이터는 저희(케리스)가 비식별 처리 등 데이터를 정제해 AI 교과서 고도화 용도로만 제공하게 된다. AI 교과서를 통해 교실에서 만들어진 데이터를 사교육 서비스에 활용하는 것은 범죄가 된다. 또 다른 오해가 AI 디지털 교과서로만 수업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주로 (디지털 과몰입을 우려하는) 학부모들이 이런 걱정을 하시는데, AI로만 수업하는 실험은 미국에서 진행된 적 있고 실패로 판가름 났다. AI 교과서는 수업의 한 요소다. (미래형 수업은) 교사와 학생이 주도하게 되고 AI 교과서를 활용하기도, 다른 교재로 공부할 수도 있다. 팀 프로젝트와 토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구=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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