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민경배 (5) 6·25 터져 서울이 발칵… 인민군 횡포에 온몸이 오싹

서울 내려와 중앙중학교 3학년 편입
일생 죽마고우로 지낸 오재식과 만남
고2 때 서울 점령한 북한 인민군들이
국군 총살 장면 목격, 공포에 휩싸여

6·25 전쟁 당시 포 소리에 귀를 막고 있는 아이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중앙중학교 교사로는 김형석 선생님 외에 주시경의 아들 주왕산 선생님, 당대 유명한 미술가 이종홍 선생님, 그리고 서예가로 유명한 일중 김충현의 계씨(동생)도 계셨다. 이 시기는 나에게 보람과 감격이 가득한 학교생활로 기억된다.

오재식과 나는 일생 죽마고우처럼 지냈다. 그는 서울대 문리대 졸업 후 미국 예일대에 유학하고 귀국 후 기독학생운동(KSCF)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오재식은 경동교회 강원용 목사의 신인회 소속이었다. 그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교회협의회(WCC) 본부 국장까지 승진하고, 김형석 교수님과 김선도 광림교회 감독님의 추천으로 월드비전(World Vision) 회장을 오랫동안 맡았다. 그는 북한에 여러 차례 다녔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전 문화관광부 장관 김성재와 자주 연락하며 북한에 다녀오곤 했다. 그의 임종에는 김성재가 가까이 있었다. 사실 오재식은 강원용 목사의 최측근으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과 막역한 사이였다. 그러나 중앙에서의 인연 덕분에 김형석 교수의 추천으로 보수계의 월드비전 회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북한에서 피란 온 우리 집 생활은 매우 힘들었다. 집을 청파동에서 문배동으로 옮기면서 아버지는 집안에서 잉크를 만들어 파는 일을 하셨다. 그러다가 1950년 내가 중앙고등학교 2학년 때 6·25가 터졌다.

당시 북한의 남침으로 서울이 사흘 만에 점령되자 온 세상이 뒤집혔다. 인민군의 모습도 무서웠지만 빨간 완장을 찬 좌익 청년들이 몰려다니며 반동분자들을 색출해 현장에서 몽둥이로 패고 죽이는 일들이 벌어졌다.

중앙고 2학년 때 일이다. 학교에서는 급히 3명씩 팀을 짜서 학교를 지키는 당번을 서게 했다. 나는 6월 27일 당번을 서게 됐다. 그런데 그날 오후 하늘에서는 북한 비행기가 서울 상공을 휘젓고 날아다녔다. 일종의 위협 시위였다. 뻥 뚫린 서울의 하늘, 전투기 하나 없었던 남한. 그러고도 북진설인가.

오후 늦게 미아리 쪽에서 대포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전선의 국군 4개 사단이 전멸하고 있었다. 대포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리 셋은 그야말로 오싹한 두려움에 전신을 떨었다. 마침내 학교에서 집에 가도 된다는 지시가 있었다. 나는 문배동 집에 전차를 타고 빨리 달려갔다.

그다음 날 6월 28일 수도 서울에 북한 인민군이 마침내 입성했다. 여군도 많았다. 그들은 곳곳에 깔렸고 빨간 완장을 찬 청년들은 몽둥이를 들고 천하를 휘젓고 다녔다. 이태원 용산 지하 갱도에 숨어있던 국군들은 갈 곳이 없어 불려 나와 시민들 앞에서 그저 간단히 쉽게 총살되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봤다. 온몸이 떨렸다. 더구나 우리는 북한 피란민이 아닌가. 여차하면 간단히 처형될 처지였다.

7월 2일 주일 아침이었다. 아버지와 형님은 먼저 청파동 청암교회로 가고 나는 좀 늦게 혼자서 뒤따라 원효로 2가 길거리에서 큰길에 이르렀다. 그때 미국 공군기가 갑자기 나타나 서울의 공업지대인 용산 문배동 원효로 일대를 공습하기 시작했다. 아침 10시 30분쯤 교회 가는 시간대였다. 나는 길가에서 미군 B29 폭격기 공습의 사이렌 소리를 듣자마자 길가의 집 아래 숨었다. 그 순간의 긴장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정리=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