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우리 사회 인사보상시스템 재정립해야
임용된 지 5년이 안 된 공무원 중 1만3000여명이 지난해 사직했다. 이 중 3000여명은 1년 차에 그만뒀다. 4년 새 2배 가까이 증가한 숫자다. 한국행정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고시 출신 20대 공무원의 73%, 30대는 53%가 기회가 생기면 이직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나랏일을 맡아 한다는 자긍심보다 대통령실과 국회의 뒤치다꺼리만 한다는 인식이 크다고 한다. 소신 있게 일하면 밀려나고, 윗선의 요구를 잘 수행하면 나중에 감사대상이 되어 감옥에 갈 수 있으니 복지부동이 최고라고 자조한다. 과거 열정으로 청사에서 밤을 밝히던 중앙부처 공무원은 민간기업으로 떠나고, 지역 일꾼인 지방공무원 역시 공직을 포기하는 추세가 늘고 있다. 한때 93.3대 1이었던 9급 공무원 공채 경쟁률은 올해 21.8대 1로 32년 만의 최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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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 수시 바뀌고 정치는 헛바퀴
관료시스템마저 무너져선 안 돼
우리 사회 인재·자원 흐름 정하는
인사 보상 및 가격체계 바뀌어야
」
공직을 금세 포기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낮은 급여라고 한다. 9급 초임 공무원의 기본급은 187만원으로 내년엔 병장 월급보다 낮게 된다. “나중에 아이 교육을 시키지 못할 것 같았다”는 공무원의 호소가 과장이 아니다. 수당을 못 받는 초과근무가 일상이고, 행사 의전을 위해 동원되며 민원인의 행패도 다반사다. 그러니 MZ 공무원들 사이엔 “우리가 공노비냐”는 불만이 나온다. 안정적 직장으로 선망의 대상이던 공무원이 버티기 힘든 직업이 되고 있는 것이다(중앙일보 3월 26일자 사설).
젊은 직원들의 이탈은 과거 최고 직장이라 불리던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 금융 공공기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은의 경우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중도 퇴사한 직원이 311명으로, 이 중 2030세대가 43%를 차지한다. 2014년부터 2021년까지 금감원을 떠난 MZ세대는 매년 소수에 불과했지만, 지난 두 해에는 두 자릿수 퇴사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툭하면 공공부문 임금동결로 대응하다 보니 비슷한 능력과 자격을 요하는 민간부문과의 보수격차는 점점 확대되어 왔다.
대학등록금은 16년째 동결되어 교수들의 처우 수준도 상대적으로 점차 열악해져 민간부문에서 수요가 높은 분야나 첨단분야에는 교수채용이 어렵게 되었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학자들을 대학으로 유치하기는 더더욱 어려워졌다. 첨단 학과를 신설해도 교수 지원자가 없어 매 학기 공고를 반복하고, 도서관의 전자저널은 구독 중지되고 있다. 기존 교수들은 점점 더 대외활동으로 수입을 메우려 하고 발품 파는 일에 시간을 보낸다. 네트워크를 쌓고 이름을 알려야 외부강연, 사외이사나 자문위원 등을 보다 쉽게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의 현실은 연구성과를 많이 내는 우수한 학자들에게 봉급이나 연구비를 더 많이 지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그럴 재원도 부족하다. 연구로 경쟁하게 해야 대학이 대학다워지고, 학문이 발전하며 사회 전반의 지식수준이 높아진다. 우수한 학자를 유치해 치열한 연구를 거친 정제된 지식에서 나오는 교육이 고등교육의 정수며, 그것이 사회의 지식수준을 끌어간다.
2024학년도 우리나라 대학생 한 명의 평균 등록금은 연간 682만원, 월 단위로 환산하면 57만원으로, 2023년 서울 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63만원보다 낮고 같은 해 전국 유아 영어학원의 월평균 교습비 110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그렇다고 다른 선진국처럼 정부의 대학재정지원이 막대하거나 개인의 기부가 일상화된 것도 아니다. 대학의 국제경쟁력 약화는 당연한 결과다. 매년 발표되는 세계대학평가에서 우리 대학 순위는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특히 미래 산업경쟁력을 주도할 AI, 반도체, 이차전지 관련 학문 분야에서 국내 최상위 대학들 순위가 중국뿐 아니라 인도나 말레이시아 대학보다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가 다냐고 할지 모르지만, 교수나 공무원도 부모로서 남들처럼 아이들 학원에 보내고 가족들을 넉넉히 부양하고 싶어 한다. 곧 민간부문으로 옮겨 고액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정무직 고위공직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사회가 직업공무원이나 공공부문 종사자들의 가족에게까지 희생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는 공직자에게 과거와 같이 명예나 자긍심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세상은 많이 투명해졌고, 더 물질적이 되었다. 그 결과는 공공부문 서비스 질의 저하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관료 시스템, 학계, 공공부문이 오늘과 같이 서서히 무너지면 이 나라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가? 기업과 시장과 외국인 투자자들만이 나라를 끌고 가도 되는 것인가? 정권은 수시로 바뀌고 정치는 미망에 빠진 지금, 관료 시스템과 지식사회마저 무너져서는 안 된다. 나라는 안에서 먼저 무너진 다음에 침략을 받는다고 했다. 공공부문의 혁신과 더불어 인사보상시스템, 인재와 자원의 흐름을 결정하는 우리 사회 가격체계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이는 전반적 구조개혁을 요하며, 이를 추진할 수 있는 국가지배구조의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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