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나는 오물 풍선 [강주안의 시시각각]

강주안 2024. 6. 7.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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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안 논설위원

배설물과 쓰레기를 가득 실은 풍선 수백 개가 비무장지대 위를 날아오던 날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을 눈여겨봤다. 지상과 지하 주차장을 겸비한 아파트 단지의 경우 평소엔 지상 주차장이 붐빈다. 그러나 이날은 지상이 한산했다. 한반도 상공을 종단하는 배설물이 만에 하나 떨어질까 염려한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양을 출발한 ‘똥탄’이 철새처럼 휴전선을 넘었다.”
조용연 전 울산경찰청장은 북한의 오물 풍선을 경찰관 사이에서 회자했던 ‘똥탄’(배설물을 담은 비닐봉지)에 비유했다. 1989년 집회 현장에 등장한 ‘똥탄’의 위력을 그는 “돌탄에 끄떡도 하지 않던 진압부대 경찰은 똥탄 몇 발에 혼비백산 무너졌다”고 SNS에 소개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 신도시 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원주민들이 선택한 ‘최후의 병기’였다고 한다.
당시 시위 진압부대 현장 지휘관이었던 조 전 청장의 기동화(워커) 앞에도 똥탄이 떨어져 터졌다. “철수” 명령이 떨어지고서도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철망 버스에 탄 부대원들의 고통은 코를 막아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며 “버스 안을 초토화했다”고 했다. 그는 “똥탄의 트라우마는 오래 남아서 지금도 그 역한 냄새가 여기저기 묻어나는 듯하다”며 오물 풍선을 원망했다.

북한이 지난 28일 밤부터 내려보낸 ‘오물 풍선’이 29일 전국 곳곳에서 발견됐다. 이날 경기도 용인의 밭에서 발견된 풍선. [뉴스1] 북한이 살포한 대남전단 추정 미상물체 잔해들이 전국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29일 오전 대남전단 풍선으로 추정되는 잔해가 경기 용인시 이동읍 송전리에서 발견됐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기자들에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현재까지 강원, 경기, 경상, 전라, 충청 등 전국에서 150여 개의 대남전단이 발견됐다″라고 밝혔다. (독자 제공) 2024.5.29. [뉴스1]

이번에도 배설물은 강렬했다. 남북 이슈를 오물 풍선이 뒤덮었다. 각계 전문가들은 “실패한 선전전”(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인류는 배설물을 일종의 생화학 무기로 사용해 왔다”(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는 의견을 제시하며 사태 진단에 분주하다. 대공 업무 베테랑 사이에선 예사롭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공 베테랑 “고도로 계산된 도발”


한 전직 대공 수사 간부는 “북한에서 보낸 풍선이 경상도와 전라도까지 날아갔다”며 “언제든 남한 전역을 상대로 생화학 테러를 저지를 수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 그는 “풍선이 공중에서 폭발하지 않고 온전히 착지한 것도 북한의 의도”라며 “삐라처럼 하늘에서 터지게 하면 오물이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이 불분명해진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남 갈등을 노렸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어제 탈북자 단체가 나훈아·임영웅 영상 등을 담아 북한으로 띄운 대북 전단에 대해 통일부는 막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북 전단 살포로 촉발된 대남 오물 투척에는 양자에 다 문제가 있다"는 양비론을 내놨다.


남남 갈등 촉발에 테러 데이터 축적


‘대북 확성기 재개’가 두려워 북한이 오물 풍선을 중단했다는 일부 견해에 대해 베테랑들은 고개를 젓는다. “원하는 목적을 이미 달성했기 때문으로 보이며 언제든 다시 보낼 수 있다”고 전망한다. 풍선 적재물로 배설물 등을 택한 이유를 묻자 “그리 위험한 물질은 아니라고 안심시켜 두면 ‘늑대와 소년’ 효과로 훗날 생화학 테러를 시도할 때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대북 전단을 띄울 땐 평양 도달 여부 등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많지만, 북한은 언론 보도만으로도 자신들이 보낸 풍선이 서울 무슨 동에 어떤 상태로 떨어졌는지 세밀히 분석할 수 있다.

장석광 전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는 “북한은 5~6월에 풍선을 띄우면 어디까지 가는지 등에 대한 데이터를 상세히 축적했을 것”이라며 “북한은 70년 이상 일관된 전략으로 대남 공작을 추진해 왔다”고 설명한다. 북한의 대남 요원은 30~40년 이상 같은 업무만 맡기 때문에 ‘일회성 해프닝’ 같은 도발은 없다고 단언한다. 탈북자의 대북 전단 살포나 확성기 재개 같은 남한의 대응은 이미 그들의 시나리오에 들어 있을 확률이 크다는 얘기다.


모호한 대북 정책에 배설물 걱정만


그렇다면 우리 정부에도 북한의 행동을 예측하는 능력과 긴 안목의 대응 전략이 준비돼 있는 것일까. 세부 전술은 차치하고 윤석열 정부 대북정책의 요체는 무엇인가. 임기 반환점이 다가오는데도 그걸 잘 모르겠다. 그러니 배설물을 뒤집어쓸까 노심초사하며 차를 지하로 옮겨야 한다.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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