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갈등은 자신에게 질문하라는 신호
찾으려 하면 좌절하기 일쑤
내게 먼저 물은 뒤 경청하길
얼마 전부터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사춘기 아들과의 관계로 힘들어하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 상담심리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아가씨가 상담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가 왜 상담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런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 아가씨는 우리 부부를 차분히 설득했다. “언니도 아들이랑 싸울 때 열받는 부분이 분명 있죠?” “네.” “대개 화가 날 때는 실은 상대방의 행동 중에 내가 못 참는 부분이 있다는 거거든요. 그걸 알게 되면 나를 이해할 수도 있고 상대방과도 잘 지낼 수 있어요.” 맞는 말이었다.
첫 상담 날도 여전히 나는 문제가 없는데 무슨 얘기를 할까를 고민했다. 그런데 상담사 선생님과 대화를 하다가 앵무새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집의 반려조 앵무새 초록이는 아주 똑똑한 친구다. 사람으로 따지면 2~3세 정도의 지능이라고 한다. 기억력이 좋은데, 자기한테 잘못한 사람은 반드시 기억했다가 밖으로 나왔을 때 날아가서 날카로운 부리로 물어버린다. 처음에는 내 어깨에 올라가서 얌전히 앉아 있던 친구였는데, 언제부터 새장 앞에만 가도 털을 곤두세우고 나를 물려고 덤빈다. 서운한 나는 원인이 뭘까를 이리저리 생각해봤다. 내가 새장에 초록이를 잡아넣는 사람이라서 그런가? 내가 뭐 잘못한 게 있었을까. 이 얘기를 하면서 나는 무심코 “저희 앵무새가 저에게 ‘앙심’을 품어서요”라고 했다. 상담 선생님께서 나를 막아섰다. “잠시만요. 앵무새가 정말 ‘앙심’을 품었을까요?” 앵무새는 그냥 내가 귀찮았을 수도 있고, 나를 만날 때마다 털을 고르고 싶었을 수도 있고, 물려고 달려들 때 내가 무서워서 지르는 비명 때문에 겁에 질려 본인이 먼저 공격하는 자세를 취했을 수도 있다. 상대의 반응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는 것이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 가운데 자녀와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 나는 좋은 방향으로 지도하는데, 왜 저 아이는 이해를 못 하지? 왜 말을 안 듣지? 등 갈등의 원인을 상대방에게서 찾으려고 하면 좌절되고 상황은 서로를 향한 비난으로 끝나고 만다. 부모는 머리로는 자녀가 사춘기라서 그렇다고 인정을 한다. 하지만 실제 가슴속에는 자녀를 향한 기대와 자녀에게 존중받고 싶은 욕구 등이 뒤섞이면서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나와 아이의 갈등을 살펴보면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아이가 내가 한 말에 따르지 않고 행동하지 않을 때다. 속옷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팽개칠 때라든지, 양치질하라고 여러 번 말해도 아들이 반응이 없을 때다. 그때마다 나는 아이가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했고 고통스러웠다. 다시 질문이 들어왔다. “아드님이 정말 어머님을 무시하는 걸까요? 물어본 적 있으세요?” “아니요.” 물어보지도 않고 속단한 것이었다. 상담 후 아들에게 엄마의 말에 반응이 없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놀랍게도 아들은 엄마를 무시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귀찮아서 그냥 모른 척한 거라고 했다. 실제 코치로 활동하면서 많은 리더에게 질문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경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가까운 사이에서는 코치의 모자를 벗고 아들에 대해 기대와 안타까운 마음이 섞인 엄마의 모자를 썼던 것이다.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직관을 발휘해 추진력 있게 일하는 걸 중요하게 여겼다. 이런 성공 경험이 쌓여서 커리어가 되었지만 섣부른 판단과 추진력은 관계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갈등이 있을 때 나의 어떤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걸까를 살펴보고, 상대방에게도 행동의 이유를 적극적으로 물어야 한다. 그다음에 들어야 한다.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해서 들어야 한다. 나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지하기보다는 다른 이의 얘기를 먼저 듣는 것. 이것이 바로 관계 회복의 지름길이라 믿는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부터 시작해 보려 한다. 관계의 회복에 대한 실마리를 조금 찾은 느낌이다.
정다정 메타 인스타그램 홍보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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