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학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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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은 번역이다.
학문은 사물을 때로는 점으로, 때로는 온도로, 때로는 질량으로, 때로는 곡선으로, 때로는 밀도나 부피나 길이로 번역한다.
번역은 학문이 영원히 닿지 못하는 사실에 다가가는 방법이다.
자연의 모든 사물에는 그런 무한소수 같은 미지수가 적어도 하나씩은 있어서 학문을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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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은 번역이다. 학문은 사물을 때로는 점으로, 때로는 온도로, 때로는 질량으로, 때로는 곡선으로, 때로는 밀도나 부피나 길이로 번역한다. 번역은 학문이 영원히 닿지 못하는 사실에 다가가는 방법이다. 번역의 기술과 기구의 발달만큼 사실에 다가간다. 학문은 생물이다. 지속적인 변화는 학문의 속성이다. 그래서 학문은 의미나 가치보다 새로움을 선호한다.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은’ 아테네 학자들이 유력한 증인이다. 학문은 편집이다. 인간은 어떠한 대상이든 전부를 동시에 직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쪼개고 분석하고 종합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우리가 관찰하는 자연은 진정한 자연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자연의 인간적인 재구성일 뿐’이라고 했다.
학문은 타협이다. 어떠한 대상에 대해서도 그 근원을 모르기 때문이다. 시간의 시작과 끝, 극미시 세계의 끝과 극거시 세계의 끝을 비롯한 모든 사물과 현상의 근원은 사람에게 감추어져 있다. 학문은 사소한 비순환 무한소수 앞에서도 동공이 흔들리고 전신이 마비된다. 자연의 모든 사물에는 그런 무한소수 같은 미지수가 적어도 하나씩은 있어서 학문을 괴롭힌다. 그래서 학문은 살기 위해서 적당한 소수점 이하의 세계를 제거해야 한다. 그런 타협이 민망해서 이따금 수리의 안내를 받고 추정의 손을 뻗어 시간과 공간과 사물의 근원을 더듬지만 언제나 망막하다.
학문은 개념화다. 사람은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것, 애매한 것보다 분명한 것, 다양한 것보다 단일한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사과는 지구촌의 사과 전체의 지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과를 안다고 자부한다. 이는 사전이 제공한 자만이다. 사과라는 사물의 공통적인 특징들을 찾고 개념을 산출하는 것은 개별 사과들의 고유성을 무시해야 가능하다. 고유성을 존중하면 할수록 개념의 권위는 떨어진다. 다양한 개념들의 더 단순화된 개념은 수학이다. 자연의 과도한 수학화, 수학의 보편화 문제를 유럽 학문의 위기라고 본 후설의 평가는 지금도 유효하고 필요하다.
학문은 사람의 산물이다. 불완전한 사람의 손에서 나왔기 때문에 발생하는 자신의 불확실성, 불명료성, 불안정성, 가변성 등의 한계를 학문은 인정해야 한다. 지식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전제와 조건들, 추정과 짐작과 타협, 번역과 생략들 안에 미묘한 비약과 오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을 불변의 진리로 여기거나 모든 것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판결자로 여기거나 학문의 손이 닿으면 모든 게 더 좋아지고 더 정확하고 확실하고 객관적인 것이 된다는 학문의 과도한 자의식은 다 지적인 허영이다. 지식은 본질상 교만하게 한다. 그래서 책을 읽든지, 설교나 강연을 듣든지, 대화를 나누든지, 모두 부분적인 것을 희미하게 아는 사람들이 그 출처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부여되는 분량 그 이상의 권위 부여는 자제해야 한다. 바울에 의하면(고전13:8), 지식은 영원하지 않고 폐하여질 것으로 분류된다. 폐함의 주기는 세월이 흐를수록 짧아진다. 그런데도 태초의 사람과 동일하게 영원한 신을 대적하려 하거나 신과 같아지려 하거나 신의 권위를 취하려는 학문의 무의식적 성향 혹은 광기를 우리는 잘 다스려야 한다.
하나님은 만유 가운데서, 만유 위에서, 만유에 충만하신 중에 사물의 심장과 폐부까지 전부를 아는 분이다. 사물의 기원과 본질과 기능과 방식과 목적, 만물의 알파와 오메가가 그분 앞에선 벌거벗듯 드러난다. 이런 하나님의 지극히 객관적인 계시만이 인간성에 뿌리 둔 학문의 한계와 부작용을 극복한다.
한병수 전주대 교수·선교신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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