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하는 척’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기자 시절, 디지털 보도와 관련해 해외 전문가의 강의를 받은 적이 있다. 그는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가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남미의 어느 언론사에 갔는데 한 기자가 웃으며 말하더라. ‘우린 일하는 척 하고, 회사는 월급을 주는 척 한다’고.”
영화 ‘젠틀맨’은 이러한 ‘하는 척 하기’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이야기는 유럽에 마리화나 제국을 건설한 마약왕 미키 피어슨이 은퇴를 결심하면서 시작된다.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돈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들이 달려들고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암흑 속으로 빠져든다.
사태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미키는 단호하게 말한다. “정글의 왕이 되고 싶다면 왕처럼 구는 것으론 부족하다. 왕이 되어야 하고 그 어떤 의심도 없게 해야 한다.” 왜냐고? “의심은 혼란과 죽음을 초래하니까.”
실제로 겉모습만 봐서는 하는 척 하는 것인지, 진짜 하려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차이점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면 웹툰 ‘미생’에 등장했던 ‘사업놀이’를 떠올리면 된다. “기획서를 쓰는 데 만족하고 그 이상의 노력을 안 한다”면 ‘하는 척’ 하는 것이다.
당신은 ‘하는 척이라도 하는 것’이 ‘아예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하는 척만 하다 보면 그 생활 자체가 습성으로 굳어져 사람의 내면을 망가뜨린다. 그런 자기 모습에 스스로도 속아 넘어간다. 진짜 애를 써 봐야만 실패해도 얻는 게 있다. 하는 척 하다가 실패하면 특별히 아쉬움도 없고, 배우는 것도 없다.
노력하는 척, 책임지는 척, 반성하는 척…. 그렇게 소중한 시간들을 ‘척’으로 보내면 결국 껍데기만 남게 된다.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아야 한다. 그 사이 중간선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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