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판사 지정에 플리바게닝까지… 사법체계 흔드는 특검법들

김재환 2024. 6. 7.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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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기 발의에 ‘입법권 남용’ 비판


정치권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특별검사법 발의에 나서면서 제한적으로 운용돼야 할 특검법이 남용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일부 특검법은 전담 영장 법관 지정 요청, 자수·자백 시 형 감경·면제 등 법 체계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법조계에선 정쟁 목적으로 남발되는 특검법이 사법질서 혼란을 부르고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제22대 국회 개원 후 현재까지 특검법 5건이 발의됐다. 개원 첫날 검찰 출신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비위 의혹을 수사하는 특검법을 발의했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은 ‘채상병 사건 외압 의혹’ 특검법을 제출했다. 검찰 재직 시 윤석열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던 이성윤 민주당 의원은 이른바 ‘김건희 종합 특검법’과 ‘대북송금 사건 검찰 회유 의혹 특검법’을 잇따라 발의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문재인 전 대통령 배우자 김정숙 여사 외유성 순방 의혹 특검법으로 맞불을 놨다.

국회 개원 후 단기간에 특검법 발의가 집중된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 21대 국회에는 5년간 총 20건의 특검법이 제출됐다. 대선을 앞둔 시점부터 집중 발의됐다. 지난 2022년 3월부터 21대 국회 종료까지 발의된 특검법만 17건이다. 상대 진영 공격을 위해 여야가 경쟁하듯 특검법을 발의하는 모습이다. 국민적 의혹 사건을 기존 수사기관이 제대로 수사하지 못할 때 한정적으로 도입되는 특검법의 취지가 퇴색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채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했고, 지난 1월 국방부 등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했다. 공수처는 최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및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들을 소환조사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동운 공수처장도 지난 4일 “진실을 파헤칠 때까지 조사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특검법이 통과되면 공수처 수사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오히려 진상규명이 늦춰질 수 있다.


김정숙 여사의 ‘인도 타지마할 외유성 출장 의혹’은 지난해 12월 고발장이 접수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배당돼 있다. 문재인정부를 겨냥한 사건인 만큼 검찰이 현 정부의 외압을 받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한동훈 특검법의 수사 대상 중 하나인 고발사주 사건 연루 의혹은 공수처가 이미 2022년 5월 한 전 위원장을 무혐의로 결론 낸 사안이다. 대북송금 특검법에 명시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 대한 ‘검찰 회유’ 의혹의 경우 이 전 부지사의 일방 주장 외에 구체적 증거는 드러나지 않았다.

특검 활동 경력이 있는 법조인은 “기존 수사가 종료된 게 아니고, 정치적 외압으로 수사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위중한 상황으로 보기도 어렵다”며 “국회도 국정조사 권한이 있는데 그런 절차를 밟지 않고 특검법부터 내는 건 성급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특검 출신 변호사도 “특검의 무게감은 남다르다”며 “기존 수사기관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뿐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할 때 제한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권이 특검법을 밀어붙여 통과시킬 경우 사법 체계에 혼란이 예상된다. 대표적 사례가 김 여사 특검법이다. 이성윤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특검이 사건의 체포·구속, 압수수색 등 영장심사를 전담하는 법관을 지정해 달라고 관할 법원장에 요청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됐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전담 법관을 지정하는 법원장의 정치 성향 등이 논란이 될 수 있다”며 “사법부 독립 보장 차원에서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영장 결과에 따라 전담 법관이 여론의 ‘좌표 찍기’를 당할 수 있고, 독립적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특검이 공소제기한 사건 재판을 전담재판부가 맡아야 하고, 집중심리해야 한다는 규정도 법원의 법률사무 권한을 침해한다는 지적이다.

우리 형사소송법이 인정하지 않는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유죄협상제도) 규정을 삽입한 것도 문제로 꼽힌다. 특검 수사대상 사건과 관련해 자백하거나 자수해 피의자가 된 사람의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하는 내용이다. 대북송금 특검법에도 이 같은 조항이 담겼다. 지방의 한 검찰 간부는 “같은 혐의로 수사받아도 특검에서 자백하면 형을 면제받고, 다른 수사기관에서 했으면 처벌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모든 피의자라면 동등하게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채상병 특검법의 특검 임명 강행 조항도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법안은 대통령이 국회에서 후보자를 추천받고 특검을 임명하지 않으면 후보자 중 나이가 많은 사람을 특검으로 임명하도록 했다. 국회가 입법권으로 대통령의 임명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국회가 특검법을 정쟁 수단으로 삼지 않고 신중하게 발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정치권에서 기존 수사기관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공수처를 만든 것 아닌가”라며 “그것마저 믿기 어렵다는 이유로 특검을 내세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 미진이 아닌 수사 내용에 대한 불신으로 특검법을 발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수사가 끝났다면 법원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면서 “국회가 수사권까지 행사하려 한다면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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