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삼성…R&D 조직 ‘주64시간 근무제’
삼성전자 사실상 비상경영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며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한 지 31주년이 되는 가운데, 삼성전자 내부에선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임원이 주 6일 근무에 나선 것에 이어 일부 조직에선 주당 64시간 근무제도 시행 중이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 연구개발직과 모바일경험(MX)사업부 일부에서 주 64시간 특별연장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법정 근로시간 40시간과 연장근로 시간 12시간을 더해 주 5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하지만 연구개발 분야와 같은 특수 직종이나 국가경쟁력 강화 등을 위해 경우에 따라 근로자 동의와 고용노동부의 인가를 거쳐 주 64시간 근무제를 도입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최대 3개월 동안 하루 8시간, 주당 40시간과 같은 제한을 두지 않고 최대 주 64시간 이내까지 초과 근무가 가능하다. 해당 부서 직원은 연장 근로 동의서에 서명하고 주 64시간 근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7일은 이건희 선대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을 한지 31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선대회장은 “삼성은 잘못하면 암 말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며 품질 중심 경영을 강조했다. 라인 생산 중단을 불사할 정도로 품질을 강조했고 인사제도 개선, 정보 인프라 구축, 창의적 조직문화 조성 등 내부 체질 개선도 강도 높게 이행했다. 삼성전자는 이를 계기로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삼성전자 내·외부에서는 최근 당면한 위기가 신경영 선언과 견줄 정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의 실적을 이끌어 오던 반도체 부문은 지난해 15조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최근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 통과 논란도 있었을 만큼 삼성전자의 고대역폭메모리(HBM)는 경쟁사보다 대응이 늦었다는 평가다. 모바일 부문은 지난해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에서 애플에 1위를 내줬고 중국의 스마트폰의 공세도 여전하다. TV·가전 역시 지난 1분기 LG전자 영업이익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삼성은 사실상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임원을 상대로 주 6일 근무제가 확산하는 게 대표적이다. 그동안 삼성전자 개발·지원 등 일부 부서 임원이 주 6일 근무를 해왔는데, 전자 관계사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최근 반도체 수장을 전영현 부회장으로 교체한 것도 비슷한 이유로 해석된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 노조는 7일 창사 이래 첫 파업에 돌입한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 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지난달 29일 “공정하고 투명하게 임금제도를 개선하고,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성과급을 지급하라”며 파업을 선언했다. 노조는 조합원들에게 7일 하루 연차를 소진할 것을 권고했다. 현충일에 이어 이틀간 업무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단체 행동에 나선다는 것이다. 전삼노 조합원 수는 2만8000여명으로 삼성전자 전체 직원의 22% 수준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1만명에 못 미쳤으나 성과급에 대한 불만이 커지며 조합원 수가 급증했다.
다만 삼성전자 초기업 노조는 “직원의 근로조건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상급단체(민주노총) 가입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파업을 비판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신경영 선언 때는 임원뿐만 아니라 직원도 모두 합심하는 분위기였는데, 전사적으로 위기 극복에 나서야 할 시점에 파업이 진행되는 게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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