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공개에 폐업·해고…밀양사건 가해자 ‘사적제재’ 논란
온라인상에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돼 신상이 공개된 남성 A씨가 다니던 대기업에서 업무 배제 조처됐다. 지난 5일 유튜브 채널 ‘전투토끼’는 A씨 사진과 이름·나이·직장 등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대기업 측은 6일 “(A씨가)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밀양 사건은 2004년 경남 밀양에서 남학생 44명이 여중생 1명을 1년간 지속해서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다. 지난 1일 유튜브 채널 ‘나락보관소’가 한 가해자 신상을 공개하면서 20년 만에 사건이 소환됐다. ‘나락보관소’는 6일까지 4명의 신상을 공개했다. 사건 발생 당시 가해자 44명 중 10명이 재판에 넘겨졌지만, 5명은 장·단기 소년원 송치(7호·6호), 5명은 80시간 사회봉사명령 처분에 그쳤다.
신상이 공개된 가해자와 주변 사람들로 피해는 번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B씨를 채용한 경북 청도의 국밥집은 논란이 불거진 뒤 폐업했다. 또 다른 가해자로 지목된 C씨는 다니던 수입차 딜러사에서 해고됐다. 사건 당시 가해자를 옹호했던 경찰공무원 D씨 신상도 공개됐다. D씨는 경찰이 되기 전인 사건 당시 가해자 미니홈피 방명록에 “고생했다”며 근황을 물었다. ‘나락보관소’ 측은 “가해자 44명 신상을 모두 공개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이번 일로 개인이 범죄자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등의 사적 제재 문제가 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최근 유튜브나 소셜미디어에서는 범죄자나 이슈가 된 인물의 신상을 마구잡이로 공개한 뒤 대중의 공분을 일으켜 구독자 및 팔로워를 늘리는 사례가 급증했다. 실제로 이번 밀양 사건을 계기로 ‘나락보관소’ 구독자 수는 5만에서 44만으로 급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사법 불신과 유튜버의 상업성이 결합해 나타난 현상으로 분석한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적 제재에 열광하는 대중의 심리 기저엔 피해자 회복은 요원한데 가해자 처벌은 미미한 기존 수사와 재판 시스템에 대한 분노가 깔렸다”고 말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명예훼손 등 형사처분 위험에도 유튜버가 신상 폭로를 이어가는 건 ‘그래도 남는 장사’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근본적으론 범죄 피해자 지원을 강화해야 응보·보복에 환호하는 여론이 누그러질 수 있다. 이윤호 교수는 “가해자 중심의 사법 체계 전반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적 제재에는 잘못된 정보의 유포나 피해자 2차 가해 등의 위험이 도사린다. 밀양 사건 가해자의 여자친구로 지목된 밀양의 한 네일숍 운영자는 5일 관련 내용을 부인하며 “아무 상관 없는 제 지인이나 영업에 큰 피해가 되고 있다”며 “법적 조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밀양 사건 피해자 지원단체인 한국성폭력상담소도 “‘나락 보관소’가 피해자(가족) 측 동의를 구했다고 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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