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성폭행, 44명 미완의 처벌… 심판 기회 잡은 유튜버들

김진욱 2024. 6. 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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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재 우려 속 가해자 신상 공개 이어져
무고한 피해자 생겨도 ‘폭로 지지’ 여론 강해
“‘응당한 심판’ 요구 여론에 대한 고민 필요”

2004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신상 정보가 잇달아 공개되고 있다. 지난 1일 사회적 논란이나 이슈 중심에 있는 인물 신상을 폭로하는 한 유튜브 채널이 국밥집에서 일하는 가해자의 신상을 폭로한 것을 시작으로 6일까지 5명의 정보가 공개됐다. 폭로 영상은 무차별적으로 퍼지며 가해자 본인뿐 아니라 그들의 직장 등에도 비난 여론이 쇄도했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신상 공개된 인물이 직장에서 해고되는 등 실질적 영향력이 확인됐다.

‘사적 제재’ 논란 속에 사실과 다른 정보로 무고한 피해자마저 확인됐지만 온라인상에서 신상 폭로는 여전히 큰 지지를 얻고 있다. 사건 당시 가해자 44명 중 누구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은 사실이 무차별적 폭로전의 불씨가 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피해자도 원치 않는 20년만의 심판론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차분히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의 구현’을 앞세운 일부 폭로 유튜버들만 여론의 분노를 기회 삼아 이익을 얻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무고 사고, 피해자 측 반발에도… 계속 이어지는 신상 공개
6일 나락 보관소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 란을 통해 밀양 사건의 가해자인 A씨를 추가 공개했다. 밀양 사건 관련 네 번째 폭로다. 나락 보관소는 앞서 “피해자 가족과 합의해 가해자 44명의 신상을 모두 알릴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나락 보관소는 A씨에 대해 1986년생으로 밀양 사건의 왼팔 격이라고 소개하며 “해병대 부사관으로 근무하다 여러 건의 사고를 쳐 쫓겨났다”고 전했다. A씨는 지금도 밀양에 거주 중이라며 재직 중인 직장을 공개하고 그와 관련된 추가 영상을 게재하겠다고 예고했다.

이 채널은 지난 1일 밀양 사건의 주동자 중 한 사람인 B씨가 경북 청도군에서 친척과 함께 국밥집을 운영하고 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후 이 국밥집 건물이 불법으로 지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다른 누리꾼에 의해 알려지며 결국 철거됐다. 지난 3일에는 다른 가해자 C씨가 한 수입차 판매 업체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까발렸다. 해당 업체는 C씨를 해고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도 발생했다. 나락 보관소는 C씨 폭로 이후 ‘밀양 사건 가해자 중 한 사람의 여자친구가 운영하는 곳’이라며 한 네일숍을 공개했는데 실제로는 관련이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알려지기 전 일부 누리꾼이 이 가게 온라인 게시판에 몰려가 악성 댓글을 다는 등 피해가 벌어졌다. 해당 숍 사장은 온라인상에 “가해자의 여자친구가 아니다. 더 이상 이 같은 마녀사냥으로 인한 피해가 없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무고한 피해가 발생했는데도 상황은 이어졌다. 지난 5일엔 다른 유튜브 채널인 ‘전투토끼’에서도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는 가해자 신상이 폭로됐다. 이 남성이 다니는 회사는 사실관계 확인을 하겠다며 임시 발령 조치를 내렸다.

급기야 밀양 사건 피해자 지원 단체 중 한 곳인 한국성폭력상담소도 지난 5일 보도자료를 내고 “나락 보관소는 피해자 가족이 (신상 공개에) 동의했다는 공지를 삭제하고 오인되는 상황을 바로 잡으라”고 비판했다. 피해자 측이 가해자 44명의 신상을 모두 공개하는 데 동의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락 보관소는 오히려 “피해자 가족끼리도 내부 의견이 달라 충돌이 나고 있다는 것을 아느냐”면서 밀양 사건이 벌어진 뒤 20년 동안 무엇을 하다 뒤늦게 나타나 한쪽의 얘기만 듣고 여론몰이를 한다는 취지로 불쾌감을 표했다. 이를 두고 “피해자의 안위보다 자신의 콘텐츠 조회 수와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 늘리기에만 매진하는 것 같다”는 비판 여론이 제기되자 이 글은 삭제됐다.

‘가해자 44명 모두 전과가 없다’는 분노가 낳은 사적 제재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인물에 대한 신상공개를 하는 행위는 형법 및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소지가 크고 사실이 아닐 경우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신상털기식 여론 심판이 계속되는 데는 ‘정의 구현’이라는 명분이 작용한다.

특히 이번에 논란이 된 밀양 사건의 경우 직·간접적으로 개입된 가해자 44명 중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은 사람이 없다는 인식이 분노의 원인이 됐다. 당시 검찰은 2005년 4월 성폭행에 직접 가담한 10명은 기소하고 20명에게는 ‘보호 처분’을 내려 전과가 남지 않는 소년부로 송치했다. 13명은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이름이 공소장에 오르지 않아 공소권이 없다’는 이유로 풀어줬다. 1명은 다른 사건에 연루돼 창원지검으로 이송됐다. 그나마 기소된 10명마저도 법원에서 소년부 송치 결정이 내려졌다.

당시 재판부는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사건으로 (가해자들의)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면서도 “현재 고등학생으로서 대학 진학이나 취업이 결정된 상태이고 인격이 미성숙한 소년으로서 교화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밝혔다. 소년부에 송치된 20명 중 4명은 소년원 1년 처분을, 16명은 봉사 활동과 교화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가해자 중 1명은 사건이 벌어진 지 14년 뒤인 2018년 재판부가 선처했던 교화 가능성이 무색하게 불법 사채업을 하다 구속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0년 전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는 인식이 무차별적 폭로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 신상공개라는 방식을 통해 구현하는 정의가 정작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오히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성폭력상담소도 “피해자의 일상 회복과 거리가 먼, 갑자기 등장한 일방적인 영상 업로드와 조회 수 경주가 당황스럽다”고 지적했다.

특히 여론의 공분을 이용해 이익을 얻으려는 일부 유튜버들의 주머니만 채우는 일이라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실제 유튜브 채널 나락보관소는 밀양 사건 신상공개를 시작한 지난 1일 6만명 수준이던 채널 구독자수가 6일 만에 44만명을 돌파했고, 업로드한 동영상 55개의 누적조회 수도 2000만회를 넘어섰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관계자는 “사법부의 실제 처벌 수준이 국민이 생각하는 수준에 못 미칠 경우 이 간극을 사적 제재로 채우려는 움직임이나 이를 지지하는 여론이 생길 수 있다. 현 상황의 첫 번째 원인은 사법부의 처벌이 너무 약했기 때문으로 보인다”면서도 “사적 제재는 본래 의도와 다르게 상업적으로 악용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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