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전공의 범법자 취급…해결 안 되면 17일부터 휴진"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이하 서울의대 비대위)는 6일 “전체 교수 총회와 설문 결과를 종합해 필수 부서를 제외한 전체 휴진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휴진 시작일은 6월 17일이며, 전공의를 향한 행정처분이 완전히 취소되고 이번 의료 사태의 정상화를 위한 합리적 조치가 시행되지 않는다면 해당일부터 진료를 중단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의대 비대위는 지난 3일부터 6일까지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서울시보라매병원,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등 4개 병원 전체 교수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이날 발표했다.
서울의대 비대위는 보도자료를 배포해 “정부가 모든 전공의에 대해 진료 유지명령과 업무 개시 명령을 완전히 취소하고 정부가 자기결정권 박탈 시도로 현 사태가 악화한 데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시적인 조처를 할 때까지 전면 휴진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응급실, 중환자실 등 필수 부서는 휴진에서 제외된다”고 서울의대 비대위는 설명했다.
비대위는 1·2차로 나눠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비대위 측은 “휴진 방식에 다양한 의견이 있어 가장 다수 의견을 바탕으로 조사를 추가 시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 전체 대상자 1475명 중 939명이 답한 1차 설문조사(‘전공의 행정처분 예고와 관련한 교수 행동 방향’)에서는 63.4%가 ‘휴진을 포함한 강경 투쟁’에 찬성했다. ‘휴진 방식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물은 2차 조사에서는 750명이 응답했는데, ‘응급실·중환자실 등 필수 부서를 제외한 전체 휴진’에 참여하겠다는 이가 68.4%였다.
비대위는 ‘전체 휴진을 결의하며’라는 결의문에서 “면허정지 처분을 중단한다고 하나 전공의들은 사직서 제출 후 이달 3일까지 업무를 하지 않은 것이 여전히 그들의 범법행위로 남아있다”고 했다. 이어 “정부는 아직도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개인 자유를 박탈하는 게 정당하다고 말하며 강제 노동을 거부한 젊은이로 취급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비대위의 이날 결정은 정부가 의정 갈등의 ‘출구전략’으로 제시한 방안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어서 향후 다른 의대 교수 단체와 총파업(전면 휴진)을 준비 중인 대한의사협회(의협)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정부는 지난 4일 전공의와 소속 수련병원에 내린 진료유지명령, 업무개시명령,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 등 각종 명령을 철회하고 병원에 복귀하는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처분 절차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전공의들이 병원에 복귀할 수 있는 ‘퇴로’를 마련하고 각 병원장에겐 사직서를 낸 전공의들의 개별 의사를 확인해 상담·설득해서 병원에 돌아올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출구전략을 발표하면서 “현장의 의료진은 지쳐가고 있고, 중증질환자의 고통의 커지는 상황에서 전공의 복귀를 위한 정책 변경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의대 비대위의 이날 결정은 정부의 출구전략이 미흡하다는 의료계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서울의대 비대위 관계자는 “많은 교수가 죄 없는 전공의를 여전히 범죄자 취급하고 죄도 없는 이들을 사면해준다는 생색을 내는데 분노하고 있다”라며 “매우 격렬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의협은 12만9200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총파업 찬반을 묻는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오후 6시 기준 투표율은 45%(5만8910명)로 찬반 비율은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의료계에서는 투표한 인원은 대부분 찬성표를 던졌을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의협 관계자는 “서울대 결정이 의협에 영향이 없을 순 없다”며 “교수님들이 결정했는데 의협이 수수방관할 수는 없고 소통도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협 관계자는 “날짜나 방식은 추후 회의를 통해 결정할 테지만, 전면 휴진 여부를 두고 같이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의협은 9일 전국의사대표자대회에서 구체적인 투쟁 방향을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휴진을 결정한 서울대 비대위는 전국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의 주축이다. 전국의대교수 비대위는 7일 총회를 연다. 전국의대교수 비대위 관계자는 “휴진 관련 구체적인 논의는 아직 없으나 의협 결정에 따르기로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서 전국 19개 의대가 소속된 전국의대교수 비대위와 전국 40개 의대가 참여하는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의협 단체행동에 함께하기로 뜻을 모았다.
서울의대 비대위는 환자를 향해서는 “진정으로 죄송하다. 환자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평생 의업에 종사해온 저희에겐 견딜 수 없는 일”이라고 사과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오는 17일 이후 병원 진료를 받는 환자라면 정부의 무도한 처사가 취소될 때까지 병원 진료를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휴진이 진짜 시작할지나 지속 여부에 대해선 정부에 달렸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서울의대 비대위는 결의문의 마지막에 “정부가 이제라도 국민의 자기결정권 박탈 시도를 중단하고 이번 의료사태의 정상화를 위한 합리적인 조치를 취한다면저희는 휴진을 할 의사가 없다. 부디 저희가 오늘 결의한 휴진이 실행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강희경 비대위원장(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신장분과 교수)은 ‘합리적인 조처’에 대해 “전공의들의 자기결정권 존중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처분 가능성이 있으니 각종 명령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취소’해달라는 요구”라고 설명했다.
서울의대 비대위의 이날 결정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7일 오전 있을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회의에서 대응 방향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혜선·황수연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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