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선 최저임금 차등적용? 정부·재계의 교묘한 속임수 [소셜 코리아]

조현실 2024. 6. 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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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코리아] 차등적용하는 업종 대부분 '국가 최저임금'보다 높아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조현실]

2025년 최저임금을 결정할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심의가 본격화했다. 올해 최임위의 주요 안건은 ▲ 최저임금액 결정단위 ▲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적용 ▲ 최저임금 수준 ▲ 최저임금 적용 확대, 이렇게 4가지로 압축된다.

이 중에서도 '업종별 차등적용' 문제가 올해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업종별 차등적용은 경영계가 최임위 심의 때마다 내놓는 단골메뉴 중 하나다. 그런데 올해 초 한국은행이 '외국인 가사도우미 차별적용'을 이슈로 띄우고, 여기에 경영계뿐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까지 옹호하고 나서면서 핫이슈로 급부상하게 됐다. 특히 지난해 최임위에서는 공익위원들의 반대로 차등적용 안이 부결됐으나 올해는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들이 참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정부와 경영계가 주장하는 '업종별 차등적용'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사용자의 임금 지불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최저임금이 사업장의 경영 악화를 부추긴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러한 경영 악화 등을 고려하여 주요 선진국들에서는 이미 최저임금을 차등적용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가지 주장 모두 '거짓'이다.

영업비용 중 '인건비' 비중은 매우 미미
 
 경영계는 ‘최저임금 미만율’이 가장 높은 음식·숙박업, 편의점업, 택시 운송업에 대해 우선적으로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시행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 셔터스톡
 
우선, '경영 악화'의 주 원인이 최저임금, 즉 인건비 문제가 맞는지 살펴봐야 한다. 경영계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최저임금 미만율'이 높은 이유가 최저임금 인상(인건비 상승)에 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미만율이 가장 높은 음식·숙박업, 편의점업, 택시 운송업의 3개 업종에 우선적으로 최저임금 차등적용 제도를 시행할 것을 주장한다. 여기서 말한 '최저임금 미만율'이란 최저임금 미만을 받고 있는 임금노동자의 비율을 말한다.

그런데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제출한 연구 보고서 '최저임금 사업의 종류별 적용 관련 기초통계 연구'를 보면, 그간 정부·경영계가 해온 주장과는 상반된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다. 경영계가 지목한 3개 업종의 전체 영업비용 중 실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임차료를 포함한 기타 영업비용에 비하면 매우 미미한 수준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편의점업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5.8%에 불과했던 반면, 임차료 및 기타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94.1%나 됐다. 음식·숙박업 역시 인건비 비중은 22.4%, 임차료 및 기타비용은 77.3%였다. 택시 운송업의 경우 인건비 비중은 41.0%, 임차료 및 기타비용 비중은 59.0%였다. 이 중 택시 기사가 실질적으로 얻는 '영업이익'을 따져 보면, 전체 영업비용 1040만 원 중 LPG 등 연료비가 580만 원으로 절반이 넘었고, 그 외 자동차 할부금이 220만 원, 자동차 보험료가 130만 원을 차지하고 있었다. 결국 본인의 인건비로 가져가는 금액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제출한 또 다른 보고서 '최저임금 적용 효과에 관한 실태조사 분석 보고서'에서는, 경영 사정이 악화된 이유로 원자재 가격 상승(61.38%)이 가장 높게 나타났고, 그다음으로 제품·서비스에 대한 수요 감소(49.32%), 인건비 상승(42.11%), 임차료 상승(6.07%) 순으로 나타났다.

경영계가 진정으로 영세사업장의 경영 악화를 우려했다면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대기업들의 납품단가를 조정하던가 협력업체의 인건비 변동분을 원청업체가 보전해 주는 방식을 내놓는 것이 오히려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다음으로는 해외 국가들에서 최저임금 차등적용 제도를 도입한 취지와 배경이 무엇이며, 실제 최저임금 수준을 어떻게 책정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 '주요 국가의 최저임금제도'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41개(OECD 회원국 26개, 비회원국 15개) 중 국가 최저임금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업종별 또는 지역별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11개 국가에 불과하다. 또한 이들 국가 대부분은 국가 최저임금보다 업종별·지역별 최저임금을 더 높게 책정하고 있다.

독일과 벨기에, 호주의 경우 단체협약을 통해 업종별 최저임금을 정하고 있는데, 모두 국가 최저임금보다 높다. 특히 독일은 업종별 최저임금이 국가 최저임금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루마니아, 아일랜드, 체코의 경우는 특정 직업 또는 직군을 구분하여 최저임금을 정하고 있는데, 해당 업종과 직군에 대해 가산된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다. 루마니아는 건설산업을 촉진시키고 숙련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업종별 차등적용을 도입했다. 취지 자체가 '임금 상향'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아일랜드도 계약청소, 보안, 조기교육·보육 분야에 대해 최저임금을 가산하여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영계의 주장은 일부 업종 및 지역의 최저임금을 국가 최저임금보다 낮추려는 것이어서, 이처럼 해외의 최저임금 차등적용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취지라고 볼 수 있다.
 
▲ 업종별·지역별 차등적용 국가 자료: 최저임금위원회 ‘주요국가의 최저임금제도’ 등 자료를 바탕으로 필자가 재구성
ⓒ 조현실
 
ILO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매우 예외적"

마지막으로 최저임금 차등적용 제도에 대한 국제 기준 및 추세는 어떠한지 추가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현재 국제노동기구(ILO)의 187개 회원국 중 90%의 국가에서 최저임금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만큼 '차등적용' 이슈 역시 한국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ILO 및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같은 국제기구에서는 객관적으로 타당한 이유에 근거하지 않은 노동자 그룹 간 임금 차별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특히 여성·외국인·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임금차별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는 ILO 제111호 협약(고용 및 직업상의 차별에 관한 협약)에 위배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차등적용 도입 여부는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서 고려해야 하는 것"이며, 복잡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단순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차등적용을 도입하는 경우 업종이나 지역 구분의 기준이 되는 통계의 질이 보장되고, 제도를 운영하기 위한 행정집행 역량 등을 갖춰야 한다는 점 등을 전제로 제시했다.

이러한 기준에서 보면 현재 우리의 조건은 업종이나 지역을 구분할 합리적 기준, 이를 판단할 객관적 통계조차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수렴 및 협의, 결정 절차 등 제도 운용을 위한 논의도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또한 37년간 단일한 최저임금제도를 시행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5명 중 1명은 월 200만 원도 안 되는 임금을 받고 있으며,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여기에 차등적용 제도까지 시행한다면 결국 근로조건이 가장 취약한 업종부터 차등화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타겟으로 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ILO에서 우려하는 여성·외국인 등 취약층에 대한 차별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임금하향' 위한 차등적용은 제도 취지와 달라
 
 내년도 최저임금을 심의할 최저임금위원회 첫 전원회의가 열린 지난 5월 2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근로자위원인 전지현 전국돌봄서비스노조 위원장이 "최저임금 차등 적용 결사반대"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있다.
ⓒ 연합뉴스
 
하나의 제도가 변하지 않고 고정될 필요는 없다. 최저임금제도 역시 필요에 따라 다양한 개선안이 등장해야 하고 사회적 합의를 위한 토론도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최저임금제도는 국가가 입법적 행위를 통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임금을 강제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어떤 경우라도 그 고유한 목적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지난 2018년 쟁점이 되었던 최저임금 산입범위 문제나 지금의 차등적용 문제는 모두 사용자의 지불 능력에 맞춰 주장되고 논의되고 있다. 즉, 경영계가 주장하는 최저임금 제도 개편 논의는 출발점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특히 업종별 차등적용은 최저임금 하향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최저임금제도의 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따라서 최임위 심의과정은 지금의 최저임금제도를 '보완'하려는 목적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1만 원을 넘기냐 마냐, 업종에 차별을 두냐 마냐가 아니라 사용자의 인건비 부담은 줄이면서 노동자의 실소득 증대로 이어질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임금 인상에 따른 조세 및 보조금 정책들은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나아가 최저임금을 넘어 생활임금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해 더 생산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조현실 /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 비상임 연구위원
ⓒ 조현실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조현실 박사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설 민주노동연구원 비상임 연구위원입니다. '청소년 노동권'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청소년·청년 노동과 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 현안 전반에 대해 연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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