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왜 종교범이 아닌 정치범으로 처형됐을까
‘유월절 전날에 유대인은 나사렛 예수를 거짓 선지자로서 나무에 매달았다.’ 유대교 구전 율법을 집대성한 문헌 ‘미쉬나’ 산헤드린 항목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장면이다. 당대 사회·문화를 고려한다면 ‘거짓 선지자’와 ‘나무’는 한 문장에 같이 쓰기 어색한 표현이다. 거짓 선지자는 율법을 어기거나 신성모독을 범한 종교범에 해당하는 죄목이고 나무에 죄수를 매다는 십자가형은 로마 제국이 정치범을 처형하던 방식이다. 이들 죄수를 주관하는 기관도 각기 달랐다. 종교범은 유대 사회의 종교·사법기구인 산헤드린 공회가, 정치범은 로마 총독이 직접 재판을 주관했다.
예수는 왜 종교범의 죄목으로 정치범이 받는 형벌을 받았을까. ‘로마 제국과 유대 사회 내 정치 세력의 복잡한 셈법이 작용한 결과’라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총신대와 고려대에서 신학과 헬레니즘을, 영국 애버딘대 박사 과정에서 신·구약 중간사를 연구한 저자는 “유대 집권층인 산헤드린 공회는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예수를 처리하기 위해 예수를 정치범으로 만들었다”고 본다. 유대 민중에게 메시아로 떠오르는 예수를 직접 처리하기엔 위험 부담이 따르므로 정치범으로 몰아 로마 총독이 처리하도록 술수를 꾸몄다는 의미다.(요 11:47~53) 당대 로마 총독인 빌라도도 나름의 셈법이 있었다. 유대 역사가 필론의 기록에 따르면 빌라도는 뇌물 수수, 성전 금고 강탈 등 로마법에 어긋나는 행정을 펼쳤다. 만일 산헤드린 공회가 이를 폭로한다면 빌라도의 위치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두 세력의 이해관계와 제자의 배반 때문에 예수는 제국에 항거한 반란자로 십자가에 못 박힌다. 인간의 음험한 계략을 수단 삼아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사건이다. 저자는 “세기의 재판 배후에서 벌어진 공모가 지금도 현실에서 벌어지는 건 아닌지” 돌아본다. “이 시대 종교인이 그 옛날 종교인보다 더 거룩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인지, 기대가 빗나가면 등을 돌리는 팬인지 구별하기 어렵게 된 것은 아닐까요.”
책은 유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저작을 중심으로 유대 문헌의 관점에서 신·구약 중간사를 집중 조명한다. 이 분야를 20년 가까이 연구한 저자는 해당 기간을 ‘구약의 예언이 어떻게 신약에서 성취됐는지 그 과정과 결과를 확인하는 시기’로 정의한다. 학술 용어로 ‘제2성전기’로 불리는 구약과 신약 사이 500년(BC 516년~AD 70년)의 실체를 이해할 때 하나님 존재에 대한 확신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도 세울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예루살렘 멸망(BC 586년) 후 바벨론 포로기로 시작해 마카비 전쟁(BC 167년)과 유대 1·2차 전쟁(AD 70·135년)을 돌아본 뒤 예수의 십자가 처형으로 끝맺는 책은 신약성경 속 비유와 사례를 실감 나게 읽어낼 수 있는 단서를 여럿 제공한다.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이 대표적이다. 예수가 성전 입구의 환전상을 내쫓은 건 매매 자체가 불경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데나리온 고드란트 등 당대 통화를 거부하고 성전용 화폐인 ‘세겔’만 고집하며 폭리를 취하는 이들을 크게 책망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과부의 두 렙돈’(눅 21:1~6)은 악한 종교인을 질책하는 본문이다. 과부의 전부였던 두 렙돈으로 가장 싼 속죄 제물인 산비둘기도 구할 수 없었다. 해당 본문에서 예수는 제 기능을 상실한 성전이 무너질 것을 경고하는데 이 예언은 유대 1차 전쟁에서 완벽히 성취된다.
세종대 교수진을 대상으로 지난해 강연한 내용을 엮은 책은 현재 2쇄 인쇄에 들어갔다. 저자 유튜브 계정에 올려진 강연 30개의 누적 조회 수도 100만여 회에 달한다. 유대를 둘러싼 각종 왕조와 대제사장, 역사적 사건 등 일반에 낯선 인명과 지명이 적잖지만 인내심을 갖고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유대 문화에 익숙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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