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게 목적? '밀양 신상폭로' 유튜버 구독자 9배 늘었다

이영근 2024. 6. 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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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 신상을 20년 만에 공개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유튜브 썸네일의 여성은 배우 천우희. 천우희는 밀양 사건을 모티프로 제작한 영화 '한공주'에서 피해자 역할을 맡았다. 사진 유튜브 채널 나락보관소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이 온라인상에서 신상이 폭로된 뒤 다니던 대기업에서 임시발령 조치를 받았다. A씨의 신상은 지난 5일 유튜브 채널 ‘전투토끼’를 통해 공개됐다. 전투토끼는 ‘밀양 세 번째 공개 가해자 OOO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있었네?’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A씨의 이름, 나이, 사진과 직장 등을 공개했다.

A씨가 다닌 대기업은 그가 현재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임시발령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해당 기업 관계자는 “법적 절차에 따라 조사중이며 사실관계에 따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했다.

밀양 사건은 2004년 경남 밀양에서 남학생 44명이 여중생 1명을 1년간 지속해서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다. 지난 1일 유튜브 채널 ‘나락보관소’에서 가해자 신상을 폭로하면서 20년 만에 사건이 재점화됐다. 해당 유튜브는 6일 공기업에 다닌다며 한 명의 신상을 추가로 공개하는 등 닷새 만에 가해자 4명의 신상을 공개했다.

당시 사건 가해자 44명 중 10명이 재판에 넘겨졌지만 5명은 장·단기 소년원송치(7호·6호) 처분, 5명은 보호관찰 처분과 사회봉사명령을 받는 등 단 한 명도 정식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공분을 샀다.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가 일하는 곳으로 알려진 경북 청도 한 국밥집이 5일 결국 철거됐다. 사진 유튜브 채널 매일신문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가해자는 물론 관련자까지 뭇매를 맞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B씨를 채용한 경북 청도의 국밥집은 논란이 불거진 지 일주일도 안 된 5일 폐업했다. 식당 업주는 “잘못된 직원, 조카 B씨 채용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정말 죄송하고 송구스럽다”는 사과문을 남겼다.

또 다른 가해자로 지목된 C씨는 다니던 수입차 딜러사에서 해고조치됐다. 이 회사는 4일 공식 인스태그램을 통해 “당사는 해당 사안을 매우 엄중하게 인지하여 해당자를 해고 조치했다”고 밝혔다.

사건 당시 가해자를 옹호한 경찰공무원 D씨의 신상 역시 폭로됐다. D씨는 경찰이 되기 전인 2004년 가해자의 SNS(미니홈피) 방명록에 “잘 해결됐나? 듣기로는 3명인가 빼고 다 나오긴 나왔다더니만. X도 못생겼다던데 그 X들. 고생했다”고 적었다. 이에 D씨가 근무한 경찰서 홈페이지에 비난 글이 쇄도하고 있다. 유튜브 나락보관소는 “가해자 44명의 신상을 모두 공개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아닌 사인(私人)이 범죄자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사적 제재에 나선 데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최근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범죄자나 이슈가 된 인물의 신상을 여과없이 공개하고 공분을 자아낸 뒤 구독자를 끌어모으는 사례가 늘면서다.

지난해 8월 서울 압구정에서 마약류에 취한 채 운전하다 20대 여성을 치어 숨지게 한 이른바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이 대표적이다. 해당 사건 가해자 신모(28)씨의 신상을 폭로한 유튜브 채널 ‘카라큘라 미디어’는 128만 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이번 밀양 사건을 계기로 나락보관소의 구독자 수는 약 5만명→44만명까지 급상승했다.

2004년 발생한 밀양 성폭행 사건의 피의자 어머니가 한 방송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피해자와 가족에게 2차 가해 발언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전문가 사이에선 “사법 불신과 자극적 정보로 수익을 올리려는 유튜버의 속성이 결합돼 나타난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적 제재에 열광하는 대중의 심리 기저엔 피해자 회복은 요원한데 가해자 처벌은 미미한 기존 수사와 재판 시스템에 대한 분노와 답답함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명예훼손 등 형사처분 위험에도 유튜버가 신상 폭로를 이어가는 것은 그래도 ‘남는 장사’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사적 제재에는 잘못된 정보가 유포되거나 피해자 2차 가해를 유발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실제 무고한 피해자가 나오기도 했다. 밀양에서 네일숍을 운영 중이라고 밝힌 여성은 5일 한 맘카페에 글을 올려 “저는 밀양 성폭행 사건으로 거론된 인물의 여자친구가 아니다”라며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마녀사냥으로 아무 상관 없는 제 지인이나 영업에 큰 피해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어제 진정서를 제출하고 법적 조치를 시작했다”고 했다.

밀양 사건 피해자 지원단체인 한국성폭력상담소는 5일 “유튜브 ‘나락 보관소’가 2004년 사건 피해자(가족) 측의 동의를 구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이어 “피해자의 일상 회복, 피해자의 의사 존중과 거리가 먼, 갑자기 등장한 일방적 영상 업로드와 조회 수 경주에 당황스러움과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근본적으론 범죄 피해자 지원을 강화해야 응보·보복만을 강조하는 여론이 누그러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윤호 석좌교수는 “현행 형사 사법 체계에서 피해자는 잊힌 존재”라며 “반성문을 수십 번 내거나 공탁금을 걸었다고 감형을 해주는 가해자 중심의 사법 체계 전반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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